이 공구에서 임금과 장비 임대료가 체불된 노동자만 100명이 넘고 액수도 14억 원에 육박하는 상황이지만, 하청업체는 이미 지난 3일 부도를 낸 상태다. 그러는 사이 장비를 굴리느라 들어간 기름값, 고액의 장비 할부금은 고스란히 노동자들의 몫이 됐다. 특수고용노동자인 이들은 단 몇 개월의 체불이 생겨도 금세 신용불량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 금강 살리기 사업 현장. ⓒ이상엽 |
문제는 장비 하나 굴리지 않고 하청업체를 통해 공사를 해온 원청업체가 4대강 사업을 시작할 당시 정부로부터 '선급금' 227억 원을 받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중 실제 하청업체에게 지급된 돈은 전체의 4분의1에도 못 미치는 41억 원에 불과하다.
결국 체불 금액의 수십 배에 이르는 금액을 고스란히 원청업체가 챙기고도, 하청은 부도까지 맞은 상황이 된 것이다. 국고금관리법 제35조에 따르면, 선급금은 '노임 지급 및 자재 확보에 우선적으로 사용돼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임금도 받지 못하고 꼬박 3개월을 일해온 노동자들은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국건설노동조합 강찬구 조직부장은 "대형 건설사가 선급금 명목으로 수백억 원을 챙겨 돈놀이를 하고 있는 동안, 현장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들은 임금까지 떼이는 상황이 된 것"이라며 "지역경기 활성화를 위해 지급하는 선급금은 토건재벌의 배불리기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뿐, 실제 4대강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선급금은커녕 임금조차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제는 이 같은 사례가 비단 금강 1공구에서 벌어지는 일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8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건설노조가 공개한 '4대강 공구별 선급금 지급 실적'을 보면, 정부가 4대강 사업 전 건설업체에 지급한 선급금 1조3000억 원 중 노동자들에게 돌아간 몫은 단 한 푼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선급금 1조3천억은 어디로? 대기업 70%, 중소기업 30%, 노동자는 '0'원
국토해양부의 '4대강 선급금 지급내역'을 보면, 정부는 지난해 4대강 사업 예산 3조6000억 원 중 36%에 해당하는 1조3000억 원을 원청 대기업에 선급금 형식으로 지급했다. 평균 4개월치 공사비를 미리 지급한 것이다.
선급금이란 미리 돈을 지급하지 않으면 사업에 지장을 가져올 우려가 있을 때 미리 지급하는 국고 금액으로, 국고금관리법 제35조엔 '노임 지급 및 자재 확보에 우선 사용되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4대강 공구 158개 사업장 중 중소하청업체가 받은 선급금은 3700억 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전체 선급금의 71%에 해당하는 9300억 원이 고스란히 대형 원청업체의 몫으로 돌아간 것이다.
경실련이 이 중 59개 사업장의 선급금 지급 실적을 분석한 결과, 원청이 받은 선급금과 하청에게 지급된 금액의 차액수는 엄청났다. 서울지방국토관리청으로부터 한강 4공구 사업을 발주받아 시행하는 S물산의 경우, 554억 원을 선급금으로 받았지만 이 중 하청업체에게 지급된 금액은 18%인 약 98억 원에 불과했다.
ⓒ경실련 |
아예 하청업체에게 선급금을 한 푼도 지급하지 않은 사업장도 있었다. 경상북도로부터 낙동강 39공구 사업을 발주받아 시행하는 N종합건설의 경우, 선급금 29억 원 중 하청에게 지급된 금액은 한 푼도 없었고, 낙동강 45-1공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경실련 김성달 부동산·국책사업팀장은 "선급금 같은 예산 조기 집행의 취지는 어려운 지역 경기를 살리고 지역업체를 비롯한 중소하청업체와 실제 공사에 참여하는 건설노동자에게 예산을 미리 집행해 실질적 경기활성화 효과를 보기 위한 것"이라며 "그러나 국가가 국민 혈세에 빚까지 얻어 지급한 선급금은 결국 토건재벌의 금고 속에서 그들의 이윤 창출만을 위해 사용되고 있었다"고 꼬집었다.
4대강 재벌건설사, '선급금 사용계획'대로 집행조차 안 해
더 심각한 문제는 원청업체가 선급금 지급요청 시 정부에 제출한 '선급금 사용계획서'대로 하청업체에 선급금을 지급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경실련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입수한 원청 대기업의 '선급금 사용 계획'과 실제 지급내역을 비교한 결과, 13개 공구의 원청 대기업은 사용 계획의 56%만 실제 이행했으며, 공구당 평균 133억 원을 유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성달 국장은 "선급금을 정부에 제출한 계획대로 지급하지 않은 것은 하도급법 위반 가능성이 높고, 신속하게 이러한 불공정 행위에 대해 정부 차원의 조사가 진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지난해 낙동강 살리기 사업 현장의 모습. ⓒ조우혜 |
'땡전 한 푼' 못 받는 4대강 건설 노동자, '신용 불량' 나락으로
4대강 사업이 대부분 하도급 구조를 통해 진행되는 상황에서, 하청업체에게 돌아가는 선급금이 적거나 없다는 것은 현장 노동자들의 상황이 더욱 열악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건설노조 박대규 건설기계분과위원장은 "토건 재벌은 공사를 끝내기도 전에 막대한 자금을 미리 제공받지만, 건설 노동자들은 땀 흘려 일한 대가조차 45일에서 60일이 지난 후 지급받는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박 위원장은 "기계노동자의 경우 그나마도 대부분을 하청 어음으로 지급받고 있으며, 부실한 중소하청업체가 부도가 날 경우 일한 대가를 모두 날리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결국 4대강 사업에 투입된 대기업은 선급금의 이자 수익만으로도 막대한 부가 소득을 얻지만, 건설노동자와 장비업자들은 어음할인료까지 부담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임금 체불 역시 비일비재하다. 건설 현장 관계자들에 따르면, 중소하청업체가 부도가 날 경우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대부분 체불액의 40~50% 정도만 돌려받는 실정이다. 이는 덤프, 굴삭기 등의 차량유지비에 턱없이 모자라는 비용으로, 유류비·보험료·장비 할부금 등을 감안하면 노동자들은 일을 하면서도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된다.
현재 건설노조가 파악하고 있는 4대강 사업 공구 중 임금 체불이 발생한 현장만해도 금강 1공구를 포함해 10곳이 넘는다. 건설노조 송찬흡 대구경북건설기계지부장은 "임대료를 받지 못해 자신의 신용카드로 유류비를 결재한 건설노동자들은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경실련 고계현 사무총장은 "조사 결과, 선급금 명목으로 지급된 국민 혈세 1조3000억 원 중 노동자의 몫은 한 푼도 없었다"며 "정부는 국민의 혈세를 재벌 금고 불리기에 쓸 것이 아니라 올해 예산 조기집행 계획을 철회하고 직접 지급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밖에도 경실련과 건설노조는 △4대강 대형건설사의 선급금 유용 여부에 대해 조사할 것 △선급금 관리 미흡 실태를 파악하고 관계자를 문책할 것 △현장 건설 노동자를 위한 직접시공제와 직접지불제, 공정임금제를 시행할 것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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