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공식행사가 마무리되고 대학본부 앞 천막 농성장엔 특별한 '우군'도 찾아왔다. 서울대 공대위에서 투쟁을 이끌고 있는 교수들과 평소 친분이 있던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현장에 찾아 이들을 응원했다.
▲ 천막 농성장을 찾은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 그는 "교수님들 의견이 합리적이고 타당하다고 본다"며 "서울대 법인화법은 재고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프레시안(이경희) |
김상곤 교육감은 "법인화 문제에 대한 교수님들의 의견에 공감한다"라며 "논의·토론 등 의견 수렴도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법인화가 통과된 건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곤 교육감이 오자 자연스럽게 화두는 서울대 법인화를 넘어 우리 교육 전반에 관한 것으로 옮겨졌다. 이들은 법인화 등 고등교육 문제뿐만 아니라 경기도 교육감이 겪는 소송, 경기도의 평준화 문제까지 이주호 교과부 장관 체제 아래서 우리 교육이 희망을 잃어 가고 있다고 개탄했다.
법인화 반대 동문모임 총장에 면담 신청하자 "출장간다"
최갑수 '서울대학교 법인화 반대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 상임대표(서양사학과)는 이날 열린 행사들을 돌아보며 "법인화 반대를 위해 이제 어느 정도 모양이 갖춰졌다"고 평가했다. 학생, 교수, 시민·노동단체뿐만 아니라 동문들도 뜻을 같이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날 3시에 '서울대의 법인화를 걱정하는 동문모임'을 대표해 83학번 졸업생 4명(사회학과 이건범, 수학과 최철호, 산업공학과 장유식, 언어학과 남택범)이 총장실을 항의 방문했다. 이들은 동문 326명의 이름으로 '법인화 법안이 서울대 발전에 어떻게 기여할 거라고 생각하는지', '법인화 후 등록금 인상할 거라는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 총 5문항의 공개질의서를 들고 총장실을 찾았다. 질의서에 이름을 올린 이들은 대부분 박종철 기념사업회, 김세진·이재호 기념사업회, 김상진 기념사업회, 이공회 등 동문단체의 회원들이다.
▲ 동문 4명이 총장실을 항의 방문 했지만 총장은 자리에 없었다. ⓒ프레시안(이경희) |
총장과의 만남은 성사되지 못했다. 이두동 기획과장에게 질의서를 전달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이들은 "이미 두 차례 공식 문서를 보내 총장님께 면담을 신청했지만, 학교 측 답변은 '할 말이 있으면 총동창회를 통하라, 이번 주 내내 (총장님은) 해외 출장을 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에 와서는 총장은 금요일(18일)부터 출장을 간다고 말을 바꿨다"라고 말했다.
총장은 그 시각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장에 참석 중이었고 이들이 "오늘 중으로 만나볼 수 있느냐"고 묻자 학교 관계자는 "행사 후 외부 일정 때문에 총장실에 들어오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이들은 이두동 과장에게 "총장이 면담을 회피하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말하는 한편 "총동창회가 모든 동문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닌데 총동창회를 통해 입장을 전달하라는 것에 불쾌했다"라고 항의했다. 실제로 서울대 총동창회 측은 법인화를 찬성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인화 후 비정규직 교수 더 많아질 것
공대위는 동문들의 항의 방문에 앞서 2시에 '국립대 법인화 저지·대학등록금인하·교육공공성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공동행동)' 출범 및 서울대 법인화 저지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열었다. 연대의 범위와 논의의 폭을 넓히고자 만든 공동행동은 서울대와 정부에 책임 있는 고등교육 정책을 요구했다. 또한 서울대 법인화법과 관련해서는 "한국 고등교육을 대재앙에 빠트릴, 고등교육의 구제역이 될 법안"이라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프레시안(이경희) |
특히 이 자리에서 비정규교수노조도 힘을 합하기로 연대의 뜻을 내비쳤다. 비정규교수노조 임순광 사무처장은 "법인화는 기업논리로 대학을 이끌어 비정규교수를 양산하고 정규직 교수도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다. 정부가 나서서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비정규교수 노조가 있는 전남대, 부산대, 경북대도 법인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며 "국립대 법인화 저지 앞장서겠다"라고 굳은 의지를 내비쳤다.
비정규교수노조는 최근 조선대와 경북대를 상대로 '교육·연구 환경과 처우개선'과 관련해 파업했고 조선대를 상대로는 단식투쟁을 해오다 지난 14일 학 측과 협약을 맺으며 마무리됐다. 그는 영남대에선 학 측이 용역 깡패를 동원해 비정규교수를 내몰았던 것을 예로 들며 "상황이 이런데 법인화까지 되면 어떻게 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법인화 후 총장에게 권력이 많아지면 효율성을 위해 비정규 교수가 많아져 교원 신분이 더 불안정해진다는 것이다.
최갑수 공대위 대표 역시 이런 사정을 들으며 "서울대가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하고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대 법인화를 막기 위해선 "서울대가 마지노선"
4시에는 우희종, 한정숙 교수 등 법인화 반대를 지지하는 교수들과 학생, 동문, 직원 등이 모여 법인화 반대 문화제를 열었다. 이들은 행사를 마치며 법인화 반대를 위해 앞으로도 힘쓸 것을 다짐하는 문구를 적어 총장실을 향해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 서울대 법인화에 반대하며 총장실을 향해 종이 비행기를 날리고 있다. ⓒ프레시안(이경희) |
이 자리에 참석한 서양사학과 한정숙 교수는 "구성원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인데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됐다는 일도 창피하지만, 대학이 가만히 있었다는 게 더욱 모욕적이다"라고 말했다. 수의학과 우희종 교수도 "의학전문대학원, 치의학전문대학원은 수많은 논의 했음에도 실패하고 학부제로 복귀하는데 이렇게 중요한 법인화를 충분히 상의하지 않고 날치기 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라며 "당장 폐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오늘 출범한 공동행동은 앞으로 국회 앞 1인 시위와 시민사회 1만인 선언, 대규모 집회 등 여러 가지 활동을 계획 중이다. 그러나 관건은 '동력'이라고 공동행동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그래서 김상곤 교육감과 둘러앉은 교수들은 오늘 신입생 오티 얘기를 꺼내며 "신입생들에게 홍보가 많이 됐으면 좋겠다. 학생들이 관심을 가지고 봄이 오면 많이들 참여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15일로 서울대 법인화를 반대하는 본관 앞 천막 농성이 57일째를 맞았다. 다행히 18일 개회하는 임시국회에서 여야는 지난해 12월 강행처리한 6개 법안에 대해 해당 상임위원회에 상정, 재논의하기로 합의해 공대위는 내심 희망을 걸어보고 있다. 그러나 서울대 법인화법이 폐기되지 않으면 서울대 민교협, 공무원노조, 대학노조, 총학생회, 서울대의 법인화를 걱정하는 동문들로 구성된 공대위는 또다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야 한다. 공대위는 앞으로 다른 교수, 시민 단체 등 외부의 참여도 늘려가며 반대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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