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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의 후진성 드러낸 '조순형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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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국정치의 후진성 드러낸 '조순형 현상'

[조순형 현상 냉정하게 읽기] '趙의 귀환'이 '민심에 의한 탄핵'?

7.26 재보궐 선거의 최대 하이라이트는 단연 민주당 조순형 전 의원의 국회 재입성이다. '탄핵 주역'의 정치복귀라는 흥미 요인과 함께 '정치권 새판짜기'로 이어질 것이냐는 '조순형 후폭풍'이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에 호응하듯 일부 보수언론은 27일 조 당선자의 귀환을 "민심에 의한 탄핵"이라고 규정했다. 조 당선자 역시 당선 직후 "탄핵의 정당성이 인정됐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참여한 저를 포함해 16대 국회의원들에게 훼손된 명예의 회복과 정치적 복권의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과연 그런가?

탄핵이 정당했다?

반드시 돌아봐야 할 것은 2004년 3월12일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 무소속 국회의원 193 명이 노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시킨 배경이다. 그 구심은 두말할 나위 없이 조순형 민주당, 최병렬 한나라당 당시 대표였다. 이들은 왜 취임한 지 1년밖에 안된 대통령을 끌어내리려고 했던 것일까.

그럴싸한 정황을 토대로 두 사람의 개인적인 '욕심'이 작용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큰 정치 흐름과는 다소 동떨어진 지엽적인 얘기다. 정치권 안팎에서 일반화된 분석은 한 달 뒤에 있을 2004년 4.15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정치적 계산'이 바탕이 됐다는 것이다.

당시 민주당은 매우 초라한 처지였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판세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양강 구도로 고착돼 갔다. 그대로는 '분당의 책임자'라고 몰아붙인 '배신당(열린우리당)'에게마저 밀려 정통성의 뿌리까지 빼앗길 판이었다. 이들은 취임 1년 만에 30%대로 내려앉을 정도로 허약한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미숙을 반전의 호기로 삼았다.

마침 노 대통령이 선거 개입 논란의 빌미를 제공했다. 노 대통령이 2004년 2월 열린우리당 초선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선관위의 공명선거 협조요청에 대해 "대통령의 활동이 가능한 범위를 묻고 싶다"고 발언한 것. 조순형 대표는 이를 "선거운동 개입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라고 몰아붙였다.

비슷한 시기, 노 대통령이 방송기자 클럽 회견에서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말이 나오자마자 조 대표는 "탄핵안 발의가 불가피하다는 법률 검토를 이미 끝냈다"고 대응해 가파른 상황 진전을 예고했다.

그러나 당시 62석에 불과한 민주당의 독자적인 힘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자연히 144명을 거느린 거대야당 한나라당에게 추파를 보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 사이에 '적의 적은 동지'가 되는 단순논리는 간단히 성립됐다. 한나라당도 다급한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당시 검찰수사에서 800억 원 대의 불법대선자금이 드러나 한창 '차떼기 당'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지지율은 곤두박질쳤다. 총선을 책임져야 할 입장인 최병렬 대표는 타개책을 고심하던 끝에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강수를 통해 지지층 결집을 도모했다.

그 정서적 밑바탕에는 보수기득권 세력이 도무지 인정할 수 없는 상고(商高) 출신의 비주류 인사에게 두번씩이나 패할 수 있느냐는 억하심정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또한 야당 입장에서는 '앞으로 4년을 더 기다려야 하느냐'는 조급증이 발동돼 탄핵의 공감대는 급속히 확산됐다.

이런 맥락이 대통령 탄핵안 가결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일을 양당이 감행하게 된 토양이었다. 2년5개월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탄핵안 발의를 최초로 공론화시키고 그 이후의 국면을 주도한 장본인이었던 조순형 당선자가 "탄핵의 정당성이 인정됐다"며 탄핵 주역들의 명예회복과 정치적 복권을 당당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을 과연 현 시점에서 어떻게 봐야 할까.

'조순형 당선'은 노대통령에 대한 민심의 탄핵?

우선 이렇게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탄핵 주역의 당선이 조순형 당선자 본인의 표현과 같이 곧 "민심에 의한 탄핵"이라고 평가되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적어도 노무현 정권 하에서 조순형 당선자는 '탄핵'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정치인 중의 한 사람인 것은 틀림없다. 그래서 시민들이 성북을 선거에 주목한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냉정히 얘기하자면 '조순형 당선'의 요인은 '탄핵'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지난 7월3일 실시된 민주당 자체조사에 따르면 조순형 후보의 지지도는 28.4%에 그쳐 42.0%의 한나라당 최수영 후보와의 격차가 상당했다. 17~18일 실시된 <글로벌리서치> 조사에서도 양측의 격차는 11%포인트였다.

선거 판세가 반전된 것은 23일. 민주당 자체조사 결과 조 후보가 1.2%포인트 차이로 역전에 성공했고, 24일에는 2.3%포인트 차이로 격차를 조금씩 벌려 나갔다. 선거 전날 발표된 <더피플> 조사에서는 양측의 격차가 4.5%포인트로 더 벌어졌다. 이같은 추세대로라면 조 당선자의 '역전승'은 이미 떼어놓은 당상이었다.

판세가 뒤집어진 원인은 21일 보도를 통해 알려진 한나라당의 수해 골프 파문으로밖에 설명이 안된다. 여기에 한나라당 소속 광명시장의 호남 비하 발언까지 겹쳤다. 추이로 미루어 보건데 결과는 나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선거가 치러진 4곳 중 왜 유독 성북을에서만 이런 효과가 나왔느냐는 반론이 있다. 그러나 지역적 특수성을 이해하면 어렵지 않게 해결된다. 성북을은 열린우리당 신계륜 전 의원의 지역구였다. 열린우리당의 전통적인 강세 지역으로, 한나라당의 기반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곳이다. 한나라당 소속 의원이 낙마해 치러진 다른 3곳과는 유권자 성향이 다르다는 것이다.

정치컨설팅 회사인 민기획의 박성민 대표는 "성북을에선 수해 골프 문제뿐만 아니라 광명시장의 호남 비하 발언이 실질적인 표의 흐름에 영향을 미쳤다. 성북이 영향을 크게 입었던 것은 그 곳에 호남 사람들이 많다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그는 "호남 유권자들의 투표성향 상 이들은 대세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지만, 대세에 영향을 주면 반드시 움직인다"며 이같이 설명했다.

이와 함께 조 당선자의 보수적 성향을 득표 요인으로 꼽는 분석도 있다. <더피플> 관계자는 선거 전날 "조 후보는 정치경력 상 50대 이상의 한나라당 지지층도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귀띔했다. 한나라당에서 이탈한 표가 조 후보 쪽으로 이동할 수 있는 통로가 넓었던 셈이다.

이 같은 분석을 요약하면 조 당선자가 선거전 내내 '탄핵 비판론'을 정면돌파하려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탄핵 이슈가 유권자들의 표심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조 당선자가 스스로에게 탄핵의 면죄부를 부여한 것은 자가당착이거나 혹은 조 당선자 개인의 희망사항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5.31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의 반노(反盧) 감정이 재확인됐다 하더라도 이것이 탄핵의 정당성과 직결된 것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조순형 효과'는 파괴력 있나?

이제 관심은 '조순형 현상'이 얼마나 확산될 것이냐는 것이다. 이 역시 민주당이 가진 정계개편 추동력의 크기와 결부시켜 보면 부풀려진 측면이 다분하다.

민주당은 조 당선자의 당선이 확정된 26일 밤 "민주당발(發) 정계개편이 국민의 명령"이라고 주장했다. 한화갑 대표는 27일 국립현충원을 방문해 "우리가 스스로 자임하든 강요를 받든 한국정치에서 민주당의 역할은 시작됐다"고 정계개편을 향한 집요한 의지를 확인했다.

조 당선자의 국회 복귀라는 '불씨'를 살려 열린우리당, 고건 전 총리 등을 포함하는 정계개편의 중심이 되겠다는 것이다. 조 당선자와 민주당이 선거기간 중 '비노(非盧)-반(反)한나라', 혹은 '반노(反盧)-비(非)한나라' 등의 전선 구축을 모색한 것도 선거 이후를 대비한 포석으로 해석됐다.

물론 민주당이 손에 쥔 '조순형 카드'를 정확히 조준해 던지고 여기에 지리멸렬한 열린우리당이 호응만 해준다면 정치권 새판짜기의 그림은 얼마든지 다양한 시나리오로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정계개편의 주도권을 잡았다"는 자화자찬은 사실 '정치적 오버'다. 정치권 이합집산기를 앞두고 민주당의 협상력이 일정부분 상승한 측면은 인정되나, 원내 제1당인 집권여당과의 힘의 불균형성을 과소평가한 레토릭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렇다 할 대권주자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반노감정에 편승할 수밖에 없는 민주당은 여전히 대권경쟁의 외곽지역에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 내부적으로는 고집스러울 정도로 원칙론자인 조 당선자가 정치공학에서 출발한 한화갑 대표의 정계개편 구상을 그대로 동의해 줄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두 사람의 정치 스타일 상 오히려 민주당 내 충돌 요인으로 상황이 반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조순형 띄우기, 왜?

이렇게 볼 때 '탄핵의 추억'과 정계개편에 대한 정치권 일각의 희망이 적당히 버무려져 포장된 '조순형 현상'의 실제 알맹이는 그다지 크지 않다.

오히려 탄핵 주역의 당선을 계기로 정치권 일각과 보수언론의 대대적인 '조순형 띄우기'의 바탕에는 노 대통령의 식물화, 나아가 차기 대선을 겨냥한 의도가 가미돼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정치권 밖에선 '조순형 현상'을 매우 야박하게 풀이하고 있다는 점도 유념해 둘 부분이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탄핵은 법적으로나 국민의 선택으로나 대단히 큰 정치적 잘못이었다"며 "조순형 개인은 자신의 잘못을 여전히 인정하지 않는 것 같고, 그럼으로써 한국정치 전체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한나라당 독주를 조순형 당선자와 민주당이 막는다는 말 차제가 잘 성립되지 않는다. 스스로 문제가 많은 사람이 또 다른 문제를 막는다는 논리가 과연 정치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조순형 당선자와 민주당의 '비노(非盧)-반(反)한나라' 전략을 비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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