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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Factory.75] 가장 아름답고 잔인한 전화벨소리, 단막오페라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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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Factory.75] 가장 아름답고 잔인한 전화벨소리, 단막오페라 '목소리'

[공연리뷰&프리뷰] 국립오페라단이 선보인 프랑스 모노오페라

피아노, 의자, 테이블,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인 오래된 전화기가 전부다. 모두 어둡다. 그러나 충분하다. 극도로 절제된 이 적막의 무대에서 예리하게 꿈틀대는 것은 어느 여인의 불안한 내면과 선율로 죽음을 이야기하는 피아노 건반이다. 텅 빈, 검은 여백의 공간은 몸서리쳐지는 여자의 외로움을 무한 확장시킨다. 관객은 소프라노의 흔들리는 눈동자, 미세한 손의 떨림을 통해 예견된 파국의 냄새를 맡는다. 사랑과 이별 그 어디즈음에서 방황하는 소프라노의 노래는 행복과 절망, 환희와 절규, 삶과 죽음의 지점을 부드럽게, 때로는 극단적으로 오간다.

▲ ⓒ미레이유 들륑슈(국립오페라단 제공)
장 콕토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 모노오페라 '목소리'는 헤어진 '그'와의 원활하지 못한 통화만을 주시한다. 서사는 단순하나 표출되기 직전의 여러 감정들이 숨을 죽이고 보일 듯 말듯 약한 인간을 조종한다. 오페라 '목소리'는 절대 고독의 그녀와 그 옆에 놓인 피아노 연주로만 채워진다. 피아노는 수단이 아닌, 또 다른 '그녀'로 등장해 여자와 천국과 지옥을 동행한다. 피아노의 날카로운 높은 음과 비장하며 혼란스러운 낮은 음이 휘몰아치는 여인의 정신과 함께한다. 둘은 별개의 아름다움이자 완벽한 하나다. 이는 오페라의 어두운 모든 것과 조화를 이루며 궁극의 비극으로 치닫는다.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나 현실적 접촉이 불가능한 차가움의 상태에서 전화는 가장 친절하면서도 냉정한 수단이다. 그녀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전화기에 집착한다. 전화벨소리 역시 피아노로 연주된다. 가장 아름답고 잔인한 전화벨이다. 높은 곳에서 울리는 간단한 두 개의 이 음은 놀랍게도 극단적으로 어두운 죽음을 담고 있다. 우리는 전화기 저쪽,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그러나 느낀다. 목소리를 통해서만 존재를 확인하고 확인받을 수 있는 인간의 가엾음을 때로는 예기치 않은 혼선이 조롱한다. 소통은 쉽사리 이뤄지지 않는다.

끊기고 울리기를 반복하는 전화는 지금 이 순간 여인의 전부다. 고독의 힘은 강력하다. 절규하는 소프라노의 고음이 잠자던 밤을 가른다. 무의식적으로 신발 한 짝을 벗는 그녀의 불균형 상태가 지속된다. 그의 목소리로 자신을 감싸기 위해 전화선으로 자신의 목을 감는 여자는 섬뜩한 만큼 애처롭다. 마지막 내뱉은 그녀의 숨이 드디어 종착지를 찾은 피아노의 짧은 화음과 만나며 비극을 완성시킨다. 외로움에 고립된 한 여인의 다양한 감정은 소프라노 미레이유 들륑슈(Mireille Delunsch)와 연주자 앙투완 팔록(Antoine Palloc)으로 인해 완벽해졌다.

국립오페라단(예술감독 이소영)은 국내초연 예정작인 프랑스 작곡가 프란시스 풀랑(Francis Poulenc)의 오페라 '카르멜회 수녀들의 대화' 공연에 앞서, 일반인들에게 낯선 프랑스 오페라의 이해를 높이고자 4일 동안 '프랑스 오페라 워크샵'을 실시했다. 이후 14일, 프란시스 풀랑의 단막오페라 '목소리'를 선보였다. 40분간의 짧지만 강렬했던 이 체험은 오페라의 색채가 한없이 검은 만큼 관객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소프라노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으니 양해 바란다'는 공연 전 안내멘트가 민망해질 정도로 미레이유 들륑슈는 노련했다. 그녀의 아픔이 오히려 주인공의 괴로움을 효과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보일만큼, 그녀는,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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