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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5만원 쓰고 10만원 장례비 모으는 쪽방촌 홀몸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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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5만원 쓰고 10만원 장례비 모으는 쪽방촌 홀몸 노인

[르포] '저승길 노잣돈' 마저 버거운 이들

"이 세상 떠나는 길에도 적지 않이 들어가는 돈, 여러분은 어떻게 대비해두셨습니까?"
"보험 들어 뒀지. 장례식 같은 걸로 자식들에게 경제적으로 부담 줄까봐. 자식들이 내 보험금 받으면 부담을 덜 수 있잖아."
"요즘 같은 때 애들이 내 장지 마련할 돈이 어디 있겠어. 보험금 받아서 내 장지 마련하는데 보태면 좋잖아."
"어떻습니까. 인생의 깔끔한 마무리를 위해 사망시 사망보험금을 일시금으로 드리는 OOOO보험."


배우 이순재 씨가 등장하는 한 보험회사의 광고다. 자막으로 이미 16만8089만 건이 넘게 가입했다는 홍보 문구도 나온다. 인생을 마무리할 즈음에는 누구나 편히 누울 자리를 걱정한다. 예부터 장례는 관·혼·상·제 중 가장 중한 예법이었다. 그러나 독거노인 100만 가구 넘어선 현대사회. 누구보다 고된 삶을 살았을 어르신들이 변변한 저승길 갈 노잣돈 조차 마련하지 못해 먹을 거 먹지 않고 입을 입지 않으며 쌈짓돈을 모으고 있다. 그 현장을 들여다 봤다.<편집자>

영등포 하면 떠오르는 것들은 더는 재래시장이나 기차역 등이 아니다. 재래시장과 역을 비집고선 거대한 백화점은 이제 영등포의 또 다른 상징이 돼가고 있다. 그러나 어쩐지 이들의 모습이 조화롭지 못하고 이질적이다. 백화점 안과 밖에 철저히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1호선 영등포역에서 '영등포 파출소' 방향 출구로 나오면 오른쪽에는 거대한 백화점이 위용을 뽐낸다. 그러나 왼쪽으로 단 100m만 걸어가도 허름한 건물들이 즐비하다. '광야교회'에서 운영하는 노숙인 무료 급식소에는 배식을 받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져 있다. 이들을 비집고 미로 같은 좁은 골목을 헤집고 들어가면 '쪽방촌'이 나온다. 방을 쪼개고 쪼개 애써 '쪽방'을 만든 이곳에는 허름한 5층 정도 건물에 몰려 사는 사람들도 있고, 기와나 판자를 얹은 낡은 단독 건물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도 있다.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이곳 쪽방촌은 6,70년대 달동네를 연상시킨다.

▲ 이 중 일부는 철거가 이뤄졌다. ⓒ 다음카페 '영등포 쪽방 사람들'

광야교회가 '홈리스 센터'를 운영하는 덕에 교회 근처에 노숙인들 수십 명이 몰려 있는 것을 보면 그나마 쪽방이라도 가진 이들은 다행인지 모른다. 그러나 쪽방에 사는 쪽방촌 사람들은 삶을 '살고' 있다기보다 근근이 '견디고' 있다고 해야 할 만큼 궁핍하다.

한두 평짜리 방에서나마 살 수 있는 이유는 이들이 대부분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이기 때문이다. 어느 드라마에 나와 화제가 됐던 '불행자랑놀이'를 해보자면 쪽방에 사는 이들 중 좀 더 안쓰러운 이들은 홀몸 노인이다. 광야교회에서 '쪽방 상담소'를 운영하는 김형욱 상담소장은 쪽방에 사는 520가구 620여 명 중 홀몸노인은 130여 명 정도 된다고 밝혔다. 이들 중 집주인 50명 정도를 빼면 80명 정도의 노인들이 쪽방에서 쓸쓸히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

한 달에 10만 원씩 장례비 모으는 기초수급 생활자 할머니

아흔이 넘은 김미정(가명) 할머니는 한 달에 5만 원으로 생활하며 장례비를 모으고 있다. "한 500만 원이면 되지 않겠어요?"라고 말하는 할머니 목소리엔 씁쓸함이 묻어 있었다. 정부에서 나오는 43만 원에 교회에서 주는 후원금 6만 원 정도를 하면 약 50만 원 정도가 할머니 수중에 들어온다. 이 중 방세는 월 15만 원이다. 10만 원씩은 장례비에 쓰려고 모으고 있다. 남은 돈으로 한 달을 살아가기도 빠듯할 텐데 할머니가 용돈으로 쓰는 비용은 5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 방 한쪽 비닐봉지 속에 곱게 묶어 놓은 과자가 할머니가 먹는 유일한 간식인 듯 보였다.

그나마 장례비라도 모을 수 있게 된 건 쪽방 상담소를 통해서 잘못된 행정을 바로 잡았기 때문이다. 할머니에게 아들, 딸이 있다는 이유로 나라에서 나오는 돈은 방세에도 못 미치는 12만 원이 전부였다. 하지만 호적에 올라와 있는 자식들은 사실 할머니를 모실 형편이 못된다.

북에서 살다 춘천으로 내려온 할머니는 자식을 낳지 못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작은 부인을 들였고 그 사이에 딸이 태어났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일찍 죽고 작은 부인은 딸을 김 할머니에게 맡긴 채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갔다. 결국 김 할머니는 딸을 호적에 올리고 키웠다.

▲ 김 할머니 댁의 작은 벽. ⓒ프레시안(이경희)
이후 서울로 와 한 달에 5만 원을 받고 식모살이를 했다. 일은 힘들고 생활은 빠듯했다. 그만두고 싶어도 5만 원이 아쉬웠다. 그렇게 모은 돈도 아들을 입양하면서 다 써버렸다. 그렇게 김 할머니 호적엔 친자식이 아니지만 두 명이 올라와 있다.

그러나 가난과 질곡의 삶은 그대로 자녀들에게 세습되어 자식들도 평탄한 삶을 살지는 못했다. 딸은 결혼에 실패했고 가진 돈을 다 잃었다. 지금은 캐나다로 시집가 살고 있다고 했으나 연락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들 집에 얹혀살았지만, 아들은 비정하게도 집에서 나가 달라고 할머니를 몰아붙였다. 그때 할머니 나이 일흔 하나였다.

택시를 탔다. 죽을 참이었다. 한강까지 가달라고 했다. 갈 곳이 없으니 한강 물에 빠져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를 눈치챈 택시 기사가 할머니를 파출소에 데려다 줬다. 파출소에서 구청으로, 구청에서 쪽방촌 근처의 광야교회로 옮겨졌다. 할머니는 "목사님 덕분에 이렇게 살고 있다"며 연신 목사님, 목사님 했다. 정부마저 팽개 친 할머니를 민간단체가 살린 것이다.

자식(부양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노령연금만 한 달에 12만 원 받던 시절, 교회 사무실에 부탁해 유전자 검사를 했다. 결국 친 자식이 아님을 입증해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을 얻어 돈을 더 받을 수 있게 됐다.

할머니가 죽으면 아들이 올 것이다. 그래도 할머니는 죽은 후 자식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장례비를 모은다. 아들은 당뇨에 걸려 일을 못하고 며느리가 노점상을 해 돈을 번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을 버린 매정한 아들인데도 오히려 아들 걱정에 한숨이었다.

시신 처리 공짜로 해 준다는 말에 병원에…

예순 아홉의 이정근(가명) 할아버지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젊어 보였다. 머리는 검은색으로 염색했고 비좁은 방이지만 물건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한 때는 양복점, 이발소 등을 하면 살았지만 지금은 수중에 남은 돈이 없다. 어디에 다 쓰셨냐고 물으니 "딸린 처자식이 없으니 흥청망청 썼지 뭐"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할아버지는 단 한 번도 결혼을 한 적이 없다.

가족은 경기도 시흥과 인천에 사는 두 명의 누님이 전부다. 연락은 가끔 하지만 왕래는 거의 하지 않는다. 역시 기초생활 수급자인 할아버지는 35만 원 기초생활 비용과 9만 원의 노령연금을 받는다. 이 중 방세는 22만 원이다. 남은 돈으로 빠듯하게 생활하지만 믹스 커피도 사놓고 가끔 손님들에게 대접도 한다. 보온병에 있던 뜨거운 물을 부어 기자에게도 커피 한 잔을 내놓았다.

죽음에 대한 대비는 어떻게 하시냐고 물으니 별다른 계획도 없고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고 했다. "죽으면 누이들이 오겠죠"라고 허허실실 웃었지만 사실 그도 시신 처리를 공짜로 해 준다는 소문을 듣고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찾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정확한 정보는 아니었던지 그건 없던 일이 됐다.

서울시 무연고자 올해 9월 현재 194명

기초생활 수급자에게 나라에서 지급하는 장례비는 50만 원이다. 그러나 비용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시신을 포기하는 사례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노숙인이나 쪽방촌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집을 나온 지 오래돼 가족과 연락이 두절된 사람들이다. 그래서 사망 후 관할 구청에서 열심히 연고자를 찾아도 모르는 척하거나 혹은 장례 치를 돈이 없어 시신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에서 숨졌지만 연락되는 가족이 없거나 가족이 있어도 장례비용이 없어 시신포기 각서를 쓴 사례는 올해 9월 현재 194건에 이른다. 상조회사, 종교단체 등이 무연고 독거노인들을 위해 무료 장례 봉사를 하기도 하지만, 이들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이들이 많다.

영등포 사회 복지과 김성수 주임도 무연고자 처리 담당을 오래 하며 여러 가지 안타까운 사례들을 많이 접했다. 작년 6월엔 노숙인 한 명이 죽었다. 날씨가 너무 추워 청량리역 화장실에서 불을 피웠다가 불이 옮겨붙어 영등포에 있는 한 병원으로 실려 갔다. 병원 치료를 계속 받았지만 결국 목숨을 잃었다. 김 주임이 절차에 따라 가족인 누나와 어머니를 찾았지만 "병원비와 장례비를 감당할 수 없다"며 이들은 시신을 포기했다.

이처럼 '무연고 변사자'가 발생하면 행정당국은 절차에 따라 세금으로 장례를 치러준다. 경찰이 유족을 못 찾으면 관할 구청이 신문 공고와 내부 공고를 내 가족을 찾는다. 한 달간 시신을 병원에 보관한 채 찾지만 한 달이 지나도 유족이 나타나지 않으면 시신을 화장한 후 파주 용미리 납골당 '무연고 추모의 집'에 10년간 보관한다. 10년이 지나도 찾는 이가 없으면 집단 매장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무연고 변사자 발생건수는 08년 250건, 09년 219건, 2010년 9월 기준 194건이다. 마지막 가는 길마저 배웅 받지 못한 채 슬픈 저승길을 오르는 이들이 여전히 많은 슬픈 세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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