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입법권과 예산의정권이란 양축에 존재근거를 둔다. 다시 말해 법을 만들거나 고치는 입법권과 함께 나라살림을 살피는 예산의정권을 가진 국민대표기관이다. 예산의정권이란 세입의 범위와 세출의 용도를 심의하여 확정하는 권한이다. 이 권한은 예산심의를 통해 정부의 경제-사회정책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예산심의의 중요성에 비춰 1년에 한번 열리는 정기국회를 흔히 예산국회라고 부른다. 헌법 54조2항에 따라 정부는 국회에 새해 예산안을 10월 2일까지 제출해야 하고 국회는 60일간의 심의를 거쳐 12월2일까지 의결해야 한다. 하지만 국회는 이 법정시한을 거의 지키지 않고 정기국회가 끝난 다음 12월중 임시국회를 열어 의결하는 잘못된 관행이 고착화되었다. 그래도 대부분의 경우 합의처리했다는 점에서 큰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50명으로 구성된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정부예산안을 먼저 계수조정소위원회를 통해 심사한 다음 본회의에서 의결한다. 그런데 한나라당이 7일 저녁 돌연 계수조정소위원회의 심사를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이튼 날인 8일 오전 한나라당은 예결위 회의장을 본청 245호로 옮기고 보좌진과 당직자들을 동원해 야당의원들의 진입을 봉쇄한 채 전체회의를 열었다. 한나라당이 단독으로 연 예결위는 예산안을 6분만에 날치기하고 곧바로 박희태 의장이 본회의에 직권상정했다. 박 의장은 이에 앞서 질서유지권을 발동해 예산부수법안 14개와 파병안 등 10건의 안건을 8일 오전까지 심사를 마치도록 시한을 지정했다. 한나라당은 8일 오후 욕설과 고함이 난무한 가운데 의장석을 점거하고 있던 야당의원들을 몸싸움으로 끌어내고 예산안과 주요안건을 단독으로 날치기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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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처리된 예산규모는 정부안 309조5518억 원에서 4951억 원 줄어든 309조567억 원이다. 민주당이 4대강 사업 예산중에서 6조7000억 원을 삭감하도록 요구했으나 날치기를 통해 9조3300억 원으로 거의 다 살려냈다. 국회파탄의 뇌관은 바로 여기에 있다. 4대강 사업은 야4당, 4대 종단과 함께 많은 국민들이 반대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관련법을 위반하고 반대여론을 묵살한 채 4대강 사업을 강행하다보니 예산심사 과정에서 국민저항이 더 커질까 두려워 날치기를 강행했을 것이다. 청와대의 돌격대를 자임하고 나선 한나라당 의원들이 앞을 다퉈 국회를 난투장으로 만들고 그 틈을 타서 박희태 의장이 예결위 심사도 마치지 않은 예산안을 직권상정해 날치기한 것이다.
이런 와중에도 이른바 여당실세들은 막판까지 챙길 것은 다 챙겼다. '대통령 형님 이상득', '경제실세 강만수', '국회의장 박희태' 등이 지역구 선심예산, 민원성 예산을 무려 4613억 원이나 챙겼다. 예결위 계수조정소위 위원인 김광림 한나라당 의원 등이 '총대'를 매고 심사과정에 밀어 넣었다는 것이다. 3년 연속 예산안 날치기 덕에 챙긴 '대통령 형님예산'이 2009년 4370억 원, 2010년 4359억 원, 2011년 1790억 원 등 무려 1조원이나 된다. 이것은 세금 도둑질이나 다름없는 짓이다. 그 탓인지 서민 타령을 일삼던 한나라당이 본색을 드러냈다. 심사과정에는 소외계층 예산, 서민-복지예산을 증액한다고 떠벌리더니 막상 막판에는 몇 푼 되지 않던 액수를 삭둑삭둑 잘라냈다. 보육시설 미이용 아동 양육수당 지원, 유영아 필수예방접종 지원, 산모신생아 도우미 지원, 방과후 돌봄 서비스, 장애인 연금, 장애인 사회활동지원 등등 말이다. 이명박 정권이 내건 '친서민'이란 한낱 헛된 정치구호임을 자백한 꼴이다.
예산안 날치기에 묻어서 쟁점법안-안건을 무더기 처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대표적 예가 친수구역활용특별법이다. 4대강 살리기가 아니라 4대강 죽이기라는 반대여론이 갈수록 드세지고 있다. 이 판국에 그것도 모자라는지 4대강 주변의 난개발을 법적으로 보장하겠다는 것이 이 법이다. 아랍에미리트 파병동의안까지 끼워 넣었다. 아랍에미리트 파병은 과거의 월남 파병이나 아프가니스탄 파병과는 성격이 다르다. 미군이 주둔하는 현실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에 참전하라는 요구를 정권 차원에서 거부하기란 어렵다. 이와 달리 아랍에미리트 파병은 원전수출과 관련한 상업적 성격을 지녔다. 용병이란 소리가 나올만하다. 헌법이 규정한 국제평화와는 무관하다는 점에서 위헌 소지마저 있다. 친수법도 파병도 국민적 논의를 묵살해 내용을 아는 국민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국민여론 따위는 필요 없다는 고압적 자세다.
예산안 날치기는 언론악법 날치기와 닮은꼴이다. 작년 7월 22일 김형오 당시 국회의장이 여론수렴 절차도 거치지 않고 소관 상임위에 상정되지도 않은 신문법-방송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직권상정했다. 그 다음 한나라당이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재투표, 대리투표라는 불법적 수단까지 동원해 언론악법을 날치기 처리했다. 당시 국민여론 수렴은 물론이고 국회 차원의 논의조차 생략하여 대부분 한나라당 의원들이 법안내용을 모르는 상태였다. 재투표, 대리투표는 불법이다. 초등학생도 잘 아는 사실이다. 헌법재판소도 두 차례에 걸쳐 절차상 위법성을 인정하고 국회에서 재논의하라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 국회가 입법철차를 다시 밟으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권은 위법상태에서 언론악법을 강제로 시행하고 있다. 친정권 신문 조-중-동에게 방송사업권을 주기 위해 종합편성채널 사업자 선정작업을 강행하는 것이다.
2009년 언론악법 파동도 2010년 예산안 파동도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이란 직권남용에서 발단됐다. 국회법 제85조 2항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에 대해 엄격한 단서를 달고 있다. "위원회가 이유 없이 (의장이 지정한 )심사기간 내에 심사를 마치지 아니한 때"에만 직권상정을 발동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해당 상임위가 민주적 절차를 지키지 않은 채 객관적으로 직무를 유기한 사실이 명백한 경우에 국한한다는 뜻으로 봐야 한다. 따라서 언론악법과 예산안 날치기를 위한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은 반의회적 작태이며 국회를 청와대의 하수인으로 전락시키는 행위다.
국민의 이익과 의사를 묵살하고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를 청와대의 꼭두각시로 만든데 대해 국회의장은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 국민주권을 도둑질한 죄다. 국가예산을 지역구 선심용으로 가로챈 것은 세금 도둑질이나 다름없다. 마땅히 물러나야 한다. TV, 자동차 등 공산품도 불량제품은 리콜이라는 이름으로 회수한다.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익에만 눈이 먼 불량 국회의원도 이제 소환해야 한다. 엉터리 국회가 국민소환제를 도입하지 않아 제도적으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민주시민들이 일어서 국민주권과 국민세금을 도둑질한 불량 국회의원들을 잡아내자. 그 옛날 고대 그리스에서도 토기 파편에 탐관과 오리의 이름을 적어내 국외로 추방하던 제도가 있었다. 도편추방(陶片追放-ostracism)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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