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경기도 양평 우벚고개에 굿소리가 울려 퍼진 이유는?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경기도 양평 우벚고개에 굿소리가 울려 퍼진 이유는?

[현장] '항일 의병 천도제' 연 <만다라> 작가 김성동

"제상 한 번 차리지도 못해 죽어…. 어머니, 아버지, 해방 조국 되거든 다시 올라요. 무릎 꿇고 큰 절 한 번 올리지 못하고, 사랑하는 임도 놓고, 간다.. 간다.. 나는 간다."

지난 29일, 구슬픈 무당의 소리가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가현리의 우벚고개를 떠돌았다. 100년도 훨씬 전, 이곳에서 스러져간 젊은이들의 울음소리가 그대로 되살아나는 것 같은 애잔한 소리였다. '항왜(일)의병 천도제'는 민족샤먼이라는 오우열 씨의 진혼굿으로 시작됐다.

이날 천도제를 주관한 <만다라>의 작가 김성동(63)씨는 우벚고개가 항일 의병전쟁으로 죽어간 농사꾼, 승병 등이 떠도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죽어간 이들의 대다수는 보통의 장삼이사들이었을 터. 평범한 이들이 스러져간 우벚고개는 이제 2차선 도로가 생기려 하고 있고, 조그마한 터널도 뚫렸다.

▲ 항일의병 추도제가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가현리 우벚고개에서 열렸다. ⓒ프레시안(이경희)

산화한 항일의병에게 제를 올리는 작가

김 씨의 설명에 따르면 우벚고개는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1895년 '을미사변'과 1907년 군대 해산 뒤 번져나간 항일 의병전쟁 때의 격전지이다. 용문사, 상원사 등 3개 사찰의 승병과 의병이 의기투합해 만든 연합군은 한때 특수 훈련을 받은 정예군 대대병력을 궤멸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기관포까지 동원한 일제에 승리를 거두기는 무리였다.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의병들은 그 후 두물머리 쪽에서 황해·평안도 쪽으로, 제천, 충주 쪽으로 뻗어 나갔다. 일부는 만주로 가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에 가담했다. 그렇게 죽은 이들이 피의 절규를 내뿜는 동안 조선의 시대는 가고 새 나라가 시작됐다. 하지만 그 후로도 우벚고개는 6·25전쟁이라는 또 다른 비극을 만나 눈을 감지 못하고 산천을 떠도는 수많은 원혼들을 낳은 슬픈 곳이 되었다.

작가 김성동 씨가 '죽어도 죽지 못하고 떠도는' 의병들을 위로하게 된 이유를 추적해 들어가면 2007년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실린 <무섭고 슬픈 이야기>라는 제목의 단편을 만나게 된다.

▲ 천도제 의미를 설명하고 있는 김성동 작가. ⓒ프레시안(이경희)

7~8년 전 가현리 우벚고개 근처에 '비사란야(非寺蘭若)'라는 비석을 세우고 살고 있는 김성동 씨는 자신을 반승반속이라고 소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윗도리는 셔츠에 조끼 차림이었고 바지만 승복이었다. '절 아닌 절에 중 아닌 중이 살고 있다'는 이곳에서 김성동 씨는 '분이'라는 여성을 만났다고 했다. <무섭고 슬픈 이야기>는 그 이야기를 담고 있다.

김성동 작가의 분신이기도 한 소설 속 이 중생은 어느 날 만난 무명 치마저고리에 댕기머리를 한 맨발의 분이를 만난다. 귀신이 아닌가 화들짝 놀라지만, 분이는 100년 전 의병전쟁에 나갔다 숨진 '판돌이'를 아직도 기다리는 애달픈 사연을 가진 여성이다.

"꼭 온다구 했거든요. 반드시 꼭 살아서 돌아오겠다구 나하구 언약을 했단 말이어요. 꼭 온다구."

분이는 소설 속 반승반속 이 중생을 '승병'으로 오해하고 우벚고개에서 패한 뒤 제천 쪽으로 간 의병들 소식을 애타게 묻는다. 소설은 분이와 이 중생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잊힌 우리 역사의 비극을 드러낸다. 분이는 망령이겠지만 잊히지 않는 우리 역사처럼 생생하다.

노동자들이 죽어나가고 농민이 농약을 마시는데, 문학은?

이렇게 생생해서일까. 김성동 작가는 소설에 나온 기묘한 여성 분이를 분명히 만났다고 했다. 작가 자신이 실제로 만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김성동 씨 자신에게는 무의미할 것이다. 그는 근현대사의 질곡을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오늘 천도제까지 열게 된 것이 "역사적 필연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남조선노동당 충남지부를 맡았던 아버지가 남한 단독정부 수립 후 대전 형무소로 잡혀가 6·25 발발 직후 사상범이란 이유로 처형되고, 김 씨는 12년간 도망가다 시피 절에 들어가 살았다.

▲ '고루살이 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최용탁 씨가 분향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이경희)
회갑을 맞은 후론 "내가 이제 노인이 됐구나"라고 느낀 김 씨는 "이제는 얘기를 하자"고 결심하고 오늘의 천도제를 기획하게 됐다. 아버지를 진혼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했지만 차차 외연을 넓혀 이제는 아버지와 같이 비극적 삶을 산 이들을 위로하고 현실을 냉철히 비판하는 글을 쓰는 것을 필연이라고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또 하나의 결심이 있다면 의병 정신을 이어받아 시대를 각성하게 할 글들을 앞으로 더욱 치열하게 써 나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날 '고루살이 문학' 선언식도 같이 열렸다. 후배 작가인 김응교·이시백·안재성·조선희·최용탁 등이 뜻을 함께했다.

이들은 고루살이 문학 선언문에서 "노동자들이 죽어나가고 농민들이 농약을 마시고, 생활고에 몰린 일가족이 집단자살을 해도, 오늘의 문학은 눈멀고 귀먹은 사람처럼 다른 세상을 이야기 하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서사의 불모지가 되어버린 한국 문학의 영토"에서 이들은 "오늘의 현실을 읽어내고 사람들에게 보다 나은 사회에 대한 꿈과 의지를 심어주는 문학을 다시 세우자"고 다짐했다.

이들은 또 "평등세상과 민족해방을 위해 싸웠던 영령들과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던진 열사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며 "기득권을 버리고 약자와 민주주의를 위해 온 몸을 던진 수많은 학생들, 탐욕스런 자본에 맞서 처참하게 산화해간 노동자와 농민들의 어기찬 정신을 이어 이 적막한 장막을 찢어버릴 비수 한 자루를 벼리려 한다"고 말했다.

사업 비용은 김성동 씨의 미발표 원고 <김성동의 현대사 아리랑>의 인세를 녹색평론사로부터 미리 받아 충당했으며, 이날 '고루살이 문학상' 1회 수상작으로 최용탁 씨의 <즐거운 읍내>를 선정해 시상했다.

이날 천도제가 열리는 것을 알고 서울 잠실에서 찾아온 엄효순(51) 씨는 "학교에서 국사를 가르치다 퇴직했는데 그때는 의병이 훌륭하다고만 가르쳤다"고 회고했다. 그는 "그런데 천도제에 와 보니 그 당시 의병들이 한 남자로서, 아들로서 얼마나 아팠을까 돌이켜 보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그 정신을 이어가는 이 분들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고루살이에 참여한 김응교 시인은 "앞으로 고루살이는 개별적 작품 중심으로 나가면서 동인지 식으로 같이 책도 내고, 서로를 북돋아 주며 작품활동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