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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에는 세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운명을 되돌리기 위해 부모를 죽인 괴물을 찾아가 복수했으나 결국 죽은 괴물어미의 울음을 체험하므로 해소가 아닌 비극의 반복만이 남게 된 첫 번째 이야기는 배우의 입으로, 백화점 사장아들과 결혼해 눈 세 개 달린 아이를 낳은 후 불륜에 빠진 여자, 그 사실을 경찰에 신고하기 위해 가던 중 쓰레기 청소차에 치어 죽게 된 남편의 두 번째 이야기는 설명과 함께 막간극으로 선보인다. 연극의 '본문'이라 할 수 있는 세 번째 상황은 이전의 이야기에서 보였던 상징과 포장이 없다. 오징어와 소주를 사이에 두고 앉은 두 친구의 술안주는 사람만을 태우는 연쇄방화범과 사람을 치는 쓰레기 청소차다. 다양한 사고에 이어 어머니의 병세, 상계동이냐 상암동이냐의 사실 확인, 돌아가신 교장선생님, 아들의 청첩장까지 주고받았는데 알고 보니 서로 모르는 사람이다.
좀 황당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우리 일상에서 위와 같은 일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 상상보다 앞서가는 현실과 매일 씨름하는 우리에게 그까짓 일이야 별일이네, 웃으면 전부. 그러나 연극은 이 모호한 기억들을 반복 충돌시키며 '확실한 것은 불확실하다는 것'이 전부인 공간으로 미련 없이 바꿔버린다. 살아있는 어머니는 2년 전에 방화범에 의해 죽었고 40년 전에 죽었다고 믿었던 아버지는 떡하니 살아 무릎고통을 호소하는데, 빌려준 돈 받으러 찾아간 죽은 교장의 딸은 오히려 돈을 내놓으라하니 기가 막힐 일이다. 관객은 당황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생활에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수준은 딱 거기, 모르는 사람과 합의된 착각 아래 아는 체 하는 수위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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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의 불행에 대해 이야기 하던 중 '너한테도 그런 일이 생길거야'라는 친구의 가벼운 농담식 발언이 결코 빈 말이 아니었으며, 서로 보지 말자 선언하는 모녀를 두고 '가난하고 힘든 상황에서도 웃으며 서로에게 힘을 줍니다'라고 설명하는 두 번째 에피소드 해설자의 멘트는 단순한 유머가 아니다. 아들이 죽어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버지를 보며 관객은 웃는 동시에 연민을 느낀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자. 우리가 지금 실컷 웃으며 연민이나 느끼고 앉아있을 때인가. 아버지가 보고도 그 불길의 어마어마함을 알지 못하듯 우리 역시 연극을 관람하면서도 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 연극 '아침드라마'는 웃기다. 그 웃음이 한겨울에 얼음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듯 날카롭고도 잔인한 이유는 유머의 근거가 인간의 결함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옴짝달싹 못하는 남자의 머리 위로 불을 부르는 석유가 뿌려질 때, 그의 아내가 무심하게 말한다. "무심한 내 남편이 죽어가네요." 그리고 다시, 아침이다. 이제 아침드라마를 볼 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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