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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는' 비극 속에서 더욱 조롱당하는 인간의 불안
대작을 향한 국내 연출진과 배우들의 '광적' 성실함
연극 '악령'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원작을 까뮈가 3막 22장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연극에는 원작의 화자가 해설자로 등장, 소설의 장황함을 늘어놓기보다 하나의 끈으로 연결된 핵심지점을 집요하리만치 예민하게 보여준다. 모두가 외면하는 척하지만 끊임없이 시선을 두고 있는 그것,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악령은 무대를 피보다도 잔혹한 파멸의 현장으로 이끈다. 스스로를 매장하고 있는 한 인간이 구원받기 원했으나 악령은 생각보다 강력하고 영리하다. 비록 우리 내면의 것이라 할지라도 통제 불가능할 만큼 키워놓은 스스로의 오만으로 인해 악령은 이제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본다. 세상 더불어 자기 자신까지 증오하는 인물이 보여준 것은 불안의 실체뿐 아니라 희극성이다. 이 광적이고 날카로운 폭력은 불경하나 매혹적이다. 스따브로긴의 외모가 그러한 것처럼 매끈하며 파리하고 우울하면서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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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림새와 행동, 외모, 말투 등은 한 인물을 표현하는 가장 정확하고도 쉬우며 요긴한 방법이다. 연극 '악령'은 무엇보다도 인물들의 '몸(신체)'을 중요한 소재로 사용한다. 그들의 비이성적 제스처는 원작이 갖는 거대한 존재의 무게를 압축, 희화시키는 동시에 극단의 비극으로 내리친다. 이미 소설에서 인물의 설정, 묘사 방법을 통해 드러난 도스토예프스키의 유머는 무대 위에서 시각화 됐을 때 즐거움이자 또 하나의 공포가 된다. 연극은 인물에게 저마다의 특징과 몸짓을 부여함으로 악마의 얼굴을 다양하게 그리고 있다. 몸(신체)이 만들어내는 불안, 두려움, 조롱, 불확실의 시각화는 심리, 언어와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하나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창조한 악의 모습 중 가장 매력적이고도 위험한 색을 지니고 있는 것은 단연 주인공 스따브로긴이다. 연극은 인생을 조롱하는 오만함으로 채워졌으나 결국 스스로에게 조롱받고 마는 스따브로긴의 죽음까지 비웃는다.
'2010서울국제공연예술제'를 통해 무대에 오른 극단 피악의 '악령'은 국내 초연으로 매우 반가운 작품이다. 도스토예프스키와 카뮈라는 이름이 뿜는 아우라는 공연된 토월극장을 넘어 예술의전당 건물을 흔들고도 남는다. 희극과 비극, 연극과 무용을 넘나들며 선보인 극단 피악의 '악령'은 그러나 초연에 따른 어쩔 수 없는 미완성의 구석을 드러냈다. 악령처럼 몸부림치다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현대인의 고독을 표현하기에 몇몇 배우들의 어깨에는 너무 많은 힘이 들어가 있다. 또한 매우 긴 무대의 변환시간이 흐름을 끊어 지속적인 집중을 방해했다. 조명과 소품, 배우 등 무대 위의 모든 것들의 합이 완벽하게 이뤄지지 않은 느낌이다. 그러나 지워지지 않는 장면들의 강렬함에는 원작의 위대함을 넘어 연극을 만들어낸 모두의 고뇌와 노력의 시간이 담겨있다. 연극의 마지막에 모습을 드러낸, 과장되지 않은 희망이 화려하고 강렬한 색으로 피어나듯 관객은 그 열정의 숭고함을 분명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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