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만화가들은 전태일 추모기간인 지난 10월 30일부터 청계천 6가 전태일다리 주변에서 만평작품 전시회를 진행했다. 하지만 전시를 시작한 지 하루 만인 1일 서울시설관리공단은 전시된 작품 28점을 몰래 철거했다.
이번에 철거된 작품 28점은 <한겨레> 장봉군, <경향신문> 김용민, <미디어오늘> 이용호 화백 등의 작품으로 청년실업, 비정규직, 노동 문제들을 작가들 나름의 관점과 표현기법으로 그린 시사만평들이었다.
"정부 비판했다고 예술작품을 훼손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40주기행사위원회는 "지난 1일 서울시가 운영하는 시설공단에서 몰래 작품을 철거해 쓰레기봉투에 버린 것을 확인했다"며 "시설공단 관계자는 철거 이유를 놓고 '만화작품 내용이 정부 비판적인 것들이어서 떼었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 시사만화가 등은 4일 서울시설관리공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철거된 만평작품의 원상복귀를 촉구했다. ⓒ연합뉴스 |
행사위원회는 "시사만화가들이 이를 두고 시설관리공단에 문제를 지적하자 공단 측은 '일개 직원의 실수다', '정부 비판 내용이 담겨 있어 철거를 했다', '사전에 허락되지 않은 전시회였다' 등으로 계속 말을 바꾸며 아직까지도 사과나 원상복구대책 없이 무책임한 태도를 일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행사위원회는 "지금 이 사태는 G20을 앞두고 정부와 서울시가 보이고 있는 시민·사회에 대한 도를 넘는 압박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며 "21세기 민주 국가에서 시민·사회의 정당한 의사 표현에 대해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예술작품을 훼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행사위원회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 전시를 시작한 예술 작품을 폭력적인 방법으로 훼손하고 이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서울시설관리공단은 이번 사태에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촉구했다.
"안타깝기보다는 어처구니가 없다"
이동수 시사만화가는 "불법으로 작품을 강제철거한 뒤 되레 우리더러 불법이라고 한다"며 "이는 정치적 탄압이자 문화 예술계에 대한 탄압"이라고 주장했다. 이동수 시사만화가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잘못된 점을 사과하고 추모기간 동안 전시작품이 똑바로 전시될 수 있도록 원상 복귀시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수호 아름다운청년전태일 40주기행사위원회 준비단장은 "세계적 도시라 선전하는 서울시, 그것도 청계천에서 벌어지는 일은 안타깝기보다는 어처구니가 없다"며 "이번 일은 정권을 잡은 이들이 문화 예술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말했다.
이 단장은 "최고의 문화 예술계 인사들이 작가 정신에 기반해 최고의 작품을 이번 추모제에서 전시했다"며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것들은 모두 철거됐다"고 분노했다. 이 단장은 "이번 일을 누가 지시했는지 반드시 밝히고, 원상 복귀시키는 게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강신정 서울시설관리공단 청계천관리처장은 4일 문화방송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시사만화가들이 말하는 작품은 일종의 현수막으로 하천 내에 현수막 설치는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며 "설치할 수 없는 장소에 무단으로 설치를 해 주최 측에 별도 통보 없이 지난 1일 철거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같이 출연한 이동수 만화가는 "설치 하기 전 신고를 다 했고, 설치 당시 시설공단 직원들도 현장에 있었다"며 "이제와서 불법 운운하며 강제로 철거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다음은 이번에 철거된 만평 작품 중 일부이다. (전국시사만화가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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