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가 11월 들어 종합편성 및 보도전문채널 선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사실상 올해 안에는 어렵지 않겠냐'는 시선이 많았으나 방통위는 '연내 처리' 의지를 거듭 내비치며 일정을 서두르고 있다.
방통위는 2일 저녁 '사업 승인 세부심사기준'을 발표하고 다음날 바로 전문가 토론회를 열었다. 방통위는 8일 전체회의에서 심사 기준을 최종 의결한다는 계획이고 심사기준이 의결되면 바로 사업자 신청 공고로 이어진다.
그러나 방통위 야당 위원들은 "헌법재판소의 부작위 소송 결정 전에 선정 공고를 내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반발하고 있어 방통위가 일정대로 강행할 경우 파행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경자 위원은 2일 심사기준을 보고받기 직전 "헌법재판소 판결 이전에 채널 사업자 선정 절차에 들어가는 논의에는 참여할 수 없다"고 퇴장했고 양문석 위원은 "선정 공고를 강행할 경우 사퇴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
야당 위원들의 반발에도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연내 처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최시중 위원장은 "우리 위원회가 정말 할 수 있는 선까지 연기해왔다는 것은 모든 분들이이 다 알 것"이라며 "더이상 이 문제는 지체할 수 없다"고 거듭 밝혔다.
"종편 세부기준, 사업자 변별력이 없다"
방통위가 '속도전'으로 밀어붙이는 종편, 보도전문채널 선정 작업은 무사히 진행될까. 이경자, 양문석 등 야당 위원들과 시민사회의 반발 뿐 아니라 향후 한달 남짓한 선정 기간과 선정 이후에 예상되는 조·중·동, 매일경제, 한국경제 등 희망 사업자들의 불만도 무시 못할 지점이다.
방통위가 2일 내놓은 세부기준안은 이러한 사업자들의 반발을 사전에 봉쇄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분석이 많다. 이번 세부기준안의 특징은 전체 심사항목 중에서 계량 평가 비중이 종편 24.5%, 보도 20.0%에 달할 정도로 높아졌다는 것. 계량 평가 항목은 재정적 능력(90점), 납입자본금 규모(60점), 자금출자 능력(60점) 등 대부분 재정과 자산 문제에 관한 것이다
계량평가 항목을 늘린 것은 선정 과정에서 제기될 수 있는 '특혜' 의혹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으나 세부심사기준안을 두고 3일 열린 전문가 토론회에서는 "세부 기준에서 사업자간 변별성을 기대할 수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강정화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대부분 자본금, 재정 관련 항목에서 계량화가 이뤄졌는데 그간 재정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고 신청 사업자도 준비를 많이한 부분이라 변별성 없이 점수를 주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방송 프로그램 제작 능력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김용규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도 "공정성 관련한 세부 평가 기준을 보면 '공적 책임, 공정성의 실현 의지'라고 되어 있는데 이런 기준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하겠다'라고 쓸 것"이라며 "공정성 실현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 지배구조다. 이사회 구성, 기업 대표자 선임, 사외이사로 구정된 감사위원회 등의 문제를 살펴야 할 것"고 지적했다.
성기현 한국케이블TV협회 사무총장도 "이번 심사기준안을 살펴보면 방송 사업자로서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기본 항목에 배점이 꽤 높다"며 "그 부분은 배점이 높을 필요가 없다. 차별화 할 수 있는 정책 목표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에 맞게 제대로 점수를 줘야 차별화된 사업 계획으로 나타날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꼬집었다.
"심사에 영향 미칠 기사 내면 감점하는 제도 운영하자"
또 방통위가 종편채널의 공익성을 확보할 방안에 좀더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김용규 교수는 "종편 사업에 보수 언론사가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보도 패턴이나 공정성을 우려하는 시청자들이 많다"며 "시청자들이 가장 염려하는 항목인 공정성 항목의 점수를 높게 잡아야 한다. 이를테면 다른 심사항목의 최저점수가 60점이라면 공정성 확보 관련 항목은 과락 점수가 70점 정도로 높게 설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석헌 YMCA 방송통신팀장은 "시청자 권익 실현 관련 배점이 너무 낮다"며 "시청자 권익 관련 점수는 낮게 배정하고 비계량 평가를 하는 것은 일종의 관행이 됐는데 이 때문에 대부분의 지상파에서도 시청자 권익 프로그램은 시청자를 무시하는 프로그램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대부분의 희망 사업자가 언론사인 만큼 '언론 보도'에 의한 영향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김용규 교수는 "승인 신청을 낼 언론 기관들이 승인 심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사를 많이 게재하고 있다"며 "심사할 때 이런 기사를 과도하게 게재하거나 사실이 아닌 기사를 게재한 경우 감점할 수 있는 제도를 운영하는 것도 공정성을 담보할 방안"이라고 제안했다.
반면 김대우 인하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이번 사업의 특징 중 하나가 희망 사업자가 대부분 신문사라는 것"이라며 "이들 신문에게 '유리하다, 유리하지 않다'가 늘 관심의 대상이 되는데 이런 보도가 해당 언론이 컨소시엄 주주를 구성하는데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사뭇 다른 우려를 내놓기도 했다.
한편 방통위의 사업 일정이 지나치게 촉박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황승흠 국민대 법학과 교수는 "심사기준과 세부계획을 봤을 때 사업자들이 나름대로 만족할 수 있는 보고서를 만들려면 최소 두 달은 걸릴 것 같다"면서 "기간이 짧을 수록 소위 '빅마우스'로 불리는 선발주자가 유리하고 기간이 길수록 후발주자에게 나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황 교수는 "방통위 심사요건의 핵심은 '방송을 어떻게' 보다는 '누가'에 맞춰져 있다. 비계량 항목인 방송 계획 등은 신청자간 별 차이 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결국 누가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있느냐에서 판가름이 날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그러나 방통위가 요구한 이사회 결의 등을 일정 안에서 다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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