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한미 FTA 저지 시민단체 기자회견 원천봉쇄
이날 정부는 새벽 6시부터 신라호텔 주변에 경찰병력을 배치해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가 오전 9시부터 열려고 했던 기자회견을 못하게 했다.
이 때문에 정광훈 범국본 공동대표 등 상당수의 범국본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곳곳에서 경찰과 몸싸움이 발생했고, 기자회견장에 들어가려던 사람들로부터 날카로운 항의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방패와 헬멧 등으로 중무장한 경찰병력은 지휘관의 지시에 따라 한 치의 틈도 내주지 않았다. 기자들도 '기자증'을 제시해야만 기자회견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기자회견장으로 들어가지 못한 범국본 관계자들은 성난 목소리로 항의했지만 경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범국본의 실무 책임자와 경찰 책임자 간에 설전이 오갔다. "집회도 아니고 평화적으로 기자회견을 하는데 왜 막느냐"는 범국본 관계자의 힐난에 경찰 지휘책임자는 "신라호텔 주변은 특별경계구역으로 설정됐기 때문에 기자회견도 허용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기자회견 아수라장…"너희가 그러고도 참여정부냐"
오전 9시 30분경에는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경찰 30여 명이 일제히 기자회견장을 덮친 것. 기자회견장 땅바닥에 연좌하고 있던 범국본 주요 대표자들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고,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쉴새없이 터지기 시작했다.
경찰들이 진입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범국본 관계자들과 기자들이 땅바닥에 깔리면서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의 아우성과 비명은 더욱 커져갔다. 격앙된 모습의 민주노총 조준호 위원장은 "정부가 아예 내놓고 탄압을 한다"며 탄식했다.
방송 마이크를 잡은 범국본의 주제준 상황실장은 정부에 비난을 퍼부었다. 주 실장은 "오늘 경찰의 행태는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며 "참여정부, 참여정부 하는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할 수 있겠나"라고 비명을 질렀다.
"노무현 대통령 퇴진하라"
한편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기자회견장의 한켠에서는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양윤모 회장이 경찰 방패를 병풍 삼아 앉은 채로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경찰은 한 치의 틈도 내주지 않기 위해 방패로 양 회장의 등을 누르고 엉덩이를 걷어찼다. 양윤모 회장은 "우리 젊은이(경찰)들을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X새끼로 만든 노무현 대통령은 지금 당장 퇴진하라"는 말을 반복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때 한 경찰 지휘관은 양 회장을 제압하고 있는 경찰병력에게 "조금도 물러서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고 지나갔다.
'결국 기자회견 무산'
오전 10시경, 범국본의 박석운 집행위원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박 위원장은 "경찰들 조용히 해. 왜 너희들이 떠드냐"고 힐난한 뒤 경찰 지휘부와의 합의내용을 공개했다.
그에 따르면, 경찰은 병력을 뒤로 빼는 대신 범국본은 기자회견 장소를 장충체육관 옆으로 이동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박 위원장의 발표는 범국본 내에서도 논란을 빚었다. 1시간여 동안 경찰의 저지로 기자회견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격앙된 일부 범국본 관계자들이 이 합의를 범국본의 양보로 해석하며 항의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범국본의 오종렬 공동대표의 설득으로 범국본 관계자들은 논란을 중단하고 당초 계획했던 기자회견 장소에서 기자회견문만 낭독하는 약식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다. 오종렬 공동대표는 단상에 올라 기자회견문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 대표가 기자회견문을 절반쯤 읽었을 때 경찰병력이 다시 기자회견장으로 진입했다. 결국 범국본 측은 경찰의 물리적 저지에 항의하는 것을 끝으로 기자회견을 종결했다. 경찰의 무력진압이 기자회견을 사실상 무산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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