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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Factory.61] 허를 찔러 잠을 죽이다, '칼로막베스(killbe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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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Factory.61] 허를 찔러 잠을 죽이다, '칼로막베스(killbeth)'

[공연리뷰&프리뷰] 극공작소 마방진의 '2010서울국제공연예술제' 참가작

작위적인 이야기라고 비난하지만 언제나 현실은 상상보다 앞서왔다. 외양간에 낀 소대가리를 빼기 위해 119대원들이 출동하는 사소한 사건부터 고아로 자란 남녀가 결혼하기 위해 친부모를 찾는 과정에서 어렸을 적 버려진 남매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기막힌 사연까지. 그럼에도 현실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이야기 속 수많은 상상들이 묵살 당한다. 끊임없이 리얼리티를 표방하는 사람들 속에서 극공작소 마방진(고선웅 연출)은 상상보다 한 발 더 나아가는 집단이다. 거기에는 세상과 사람을 껴안는 낭만도 있다. 분명 고선웅은 이야기를 잘 만드는 사람이며 평범하고도 기이한 공감을 이끌어내는 연출가다. 그 마방진이 '2010서울국제공연예술제'를 통해 칼로 막 베는 '칼로막베스'의 시대를 열었다.

▲ ⓒ극공작소마방진 제공

배경은 멀고도 멀고, 또 먼 미래다. 범죄자들이 넘쳐나고 사형이 금지되자 경찰정부는 거대한 수용소, 이른 바 세렝게티베이를 만든다. 고전의 배경을 현재가 아닌 미래로 설정해 그들이 내세운 무협극의 이미지와 새로운 변화에 대한 관객의 수용이 조금 더 수월해졌다. 인간의 내면을 형상화한 듯 폭력이 압축, 극대화된 수용소라는 검은 배경은 미래라는 설정과 함께 어두운 욕망에 더욱 더 밀착돼 있다. 삭막한 공간은 높이 솟은 구조물로 정적인 동시에 동적이다. 그 무대 한 가운데는 배우들이 사용할 칼이 놓여있다. 그게 무슨 짓을 저지를지 처음에는 몰랐다. 그저 마방진이고 고선웅이니 허술하지는 않을 거라 집작했을 뿐. 이 연극은 무엇보다 배우들의 노동(?) 수위가 눈에 띄게 높다. 무자비한 칼질로 인해 수많은 캐릭터가 쉴 새 없이 죽어가며(매우 시원하고도 유쾌하게) 더불어 연기하는 배우들도 죽을 지경처럼 보인다. 안 그래도 말 많은 연출가의 작품아래서 뛰고 찌르고 나는 것을 보니 극에 집중하려 해도 자꾸만 숙연해지는 데는 어쩔 도리가 없다. 그만큼 제목답게 죽자고 칼을 휘두르는 '칼로막베스'는 힘과 에너지로 빈틈없이 꽉꽉 메워져있다. 칼은 상대를 가르고 무대를 가르고 시대를 가르며 식상함을 가른다. 이겨야만 살 수 있는 그들의 공간은 나름의 질서와 규칙을 정립한 채 눈에 보이는 욕망, 귀로 들리는 욕망을 담아냈다.

극공작소 마방진과 셰익스피어의 '신나는' 만남
말의 뉘앙스가 편치 않은 막베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 ⓒ극공작소마방진 제공
어두운 무대 위 축축하게 젖어 늘어진 낡은 욕망은 전에 없던 새로움으로 부활할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는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고선웅 표 막베스'가 돼 돌아왔다. 이제 더 이상 새롭게 묘사하기도 식상한 '맥베스'의 마녀는 맹인이 되고 배신자 남편 때문에 어이없는 맥다프의 아내는 아들에게 앞으로 뭐 먹고 살 건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묻는다. 막베스는 시대를 불문하고 늘 문제였던 '죽느냐 사느냐 그것'을 고민하며 그의 아내는 코를 판다. '맥베스'를 자신들만의 스타일로 바꿔 무게감을 덜고 재밌는 공연을 선보였다는 건 확실히 뛰어난 재능과 재치다. 폭력이 극대화되는 공간과 신중한 각색으로 인해 원작의 밀도를 훼손하지 않았으며 속도감은 배가 됐다. 원작은 존중됐고 그 안에서 다듬어진 '칼로막베스'는 어느 연극에서도 맛볼 수 없는 장르적 쾌감을 선물했다. 그럼에도 그동안 극공작소 마방진이 보였던 창작 작품에 비해 힘이 떨어진다는 느낌은 어쩔 수가 없다.

끊임없이 밀려나와 리듬감을 형성하는 동시에 거대한 이미지로까지 승화됐던 고선웅만의 대사와 인물들은 원작과의 균형을 이뤄냈으나 전과 같은 동력은 약화됐다. 문제는 극공작소 마방진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치가 높다는 데 있다. 그들만의 스타일은 예측 가능한 화법으로 예측 불가능한 지점에서 유머를 만들어낸다. 예측 가능한 원작의 전개에 버무려진 슬랩스틱과 유머의 대부분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등장, 과잉됐거나 때로는 조금 모자라다. 셰익스피어와 마방진, 두 세계의 결합은 완벽히 융화되지 못한 채 별개의 개성으로 존재한다는 듯한 아쉬움이 남는다. 초연임에도 불구, 처음부터 끝까지 뚝심 있게 끌고 나가 매우 완성도 있는 극을 선보였다는 장점은 오늘보다 다음을 더 기대케 만든다. 그들에게는 부담일지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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