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레시안 |
연극 '오월엔 결혼할꺼야'의 사건은 지희의 결혼으로부터 시작된다. 사건의 핵심은 10년 동안 모아온 적금의 금액이 3,825만원이라는 것에 있다. 3,825만원은 매달 십만 원씩 모아 처음 결혼하는 이에게 몰아주자는, 기특하고도 철없는 십년 전의 약속을 기반으로 굳건하게 건설돼 왔다. 그걸 지희 혼자 날름 삼켜버릴 것을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하다. 형식이 무슨 상관이랴, 절에 물 떠놓고 맞절해도 결국 결혼이니 정은은 5년 동안 사귄 연극연출가 애인을 찾아가 청혼을 하고 세연은 핸드폰을 뒤적이며 '오월에 시간 되는' 남자를 물색한다. 그러나 우리의 전화번호부가 대충 그렇듯 그곳에는 결혼남, 이혼남, 또라이, 쓰레기만 가득하다. 집에서 탱자탱자 놀다가 선봐서 한 달 후에 결혼할거라는 지희만이 천진난만하다. 향후 소설가를 지향하나 현재 잡지에 에로소설을 기재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정은은 김동인 소설 '감자'의 주인공 복녀를 들먹이며 비슷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예를 통해 결혼 미룰 것을 권유한다. 안타깝게도 결혼 앞두고 두 눈에 하트만 가득한 지희에게 복녀 따위는 소설 속에나 존재하는 먼 옛날 비련의 여주인공일 뿐이다. 방법은 하나, 지희보다 선수 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5년 동안 사귄, 예술성과 상업성 어디에도 완전히 부합되는 연극을 만들지 못하는 연극연출가 남자친구는 극단의 '연기 못하는 애'와 바람이 났다. 그냥 사랑하게 해달라고 '넌 나에게 과분해' 못지않은 상투적 발언을 투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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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릿이 유행하면서부터 여자의 리얼한 삶이 다양한 장르에서 한 뭉치씩 쏟아졌다. 수많은 '그녀'들이 이별하고 잘난 세상과 싸우며 크게 좌절하고 조금씩 성장했다. 여자들의 수다는 골목의 카페마다 들어앉은 여성들의 숫자만큼 사방에서 연출됐고 그만큼 재미와 공감의 통렬함, 신선함이 줄었다. 그 틈 속에서 꾸준히 무대에 오르고 있는 세 여자의 3,825만원 탈환기는 성공이라 할 만하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인물, 사건, 배경이 귀여운 유머들과 함께 버무려져 자잘한 재미를 전한다. 게다가 이십대 후반의 여자가 언제고 한 번쯤 만나봤을 법한 남자들의 등장은 웃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쓰라린 공감대를 형성케 한다. 싱크로율 백퍼센트의 연극 '오월엔 결혼할꺼야'는 우리의 은밀한 수다와 꼭 닮았다. 세 친구에게 공감하는 우리의 처지가 그녀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현재를 상기시키지만, 그럼에도 세상에는 수많은 정은, 세연, 지희, 그리고 '나'로 가득하다는 위로가 있다. 어차피 당장 입지 못할 웨딩드레스 뭐 별건가. 우리 대신 정은이 말해준다. 웨딩드레스는 하얗고 질질 끌리기만 하면 되는 것, 별 거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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