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레시안 |
스페인 내전을 소재로 한 안토니오 부에로 바예호의 '채광창'은 당시 사회에서 금기시 됐던 비판의식을 연극 무대에서 처음으로 조명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채광창을 통해 승리자들이 활보하는 거리를 올려다보아야 하는 상징적 무대는 내전 후의 어둡고 억압된 사회를 형상화 한 동시에 치유될 수 없는 시대의 아픔 속에서 숨 쉬고 있는 개인들에 대해 설명한다. 청운예술단이 무대에 올린 연극 '채광창'은 이러한 공간적 아이러니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벽돌에 거대한 구멍이 난 듯한 원형의 채광창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들의 외면과 내면을 함께 엿보도록 유도한다. 그 안으로 보이는 반지하 집의 거실 한쪽에는 높은 단이 있다. 그곳은 형 비센떼의 작업 공간이자 패배자를 내려다보는, 누군가를 끊임없이 짓밟아야 하는 승리자의 공간이다. 큰아들 비센떼는 주된 공간(반지하 집의 거실) 밖의 인물이며 패배자의 무리에서 탈출한 성공자다. 높은 곳의 비센떼와 낮은 곳에 머물고 있는 가족의 대비는 과거 어느 사건에 기인하며 연극은 기차의 기적소리와 함께 그곳을 향해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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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마지막에서야 드러나는 과거 사건의 중심에는 가족의 모든 것이 들어있던 자루를 움켜쥐고 기차에서 내리지 않은, 혼자 떠나버린 비센떼가 있다. 현재 성공했으며 채광창 너머에서 숨을 쉬는 승리자지만 그는 과거에 대한 죄책감으로 지쳐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을 다짐하면서도 반지하의 공간을 반복해 찾게 되는 비센떼의 행동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까닭이다. 그는 '기차에 타면 안된다'는 아버지의 명령과도 같은 충고에 '이 기차에서 내릴 수가 없다'고 고백한다.
그렇다면 승리자의 위선과 죄를 묻는 패배자는 정당한가. 미쳐버린 아버지와 함께 그곳에서 나오려하지 않는 둘째 아들 마리오는 희생자를 언급하며 비센떼를 끊임없이 추궁한다. 그러나 그 또한 황폐해진 모두가 피해자인 줄 몰랐다고 고백한다. 연극은 전쟁의 참담함을 폭로하는 것 같지만 결국 인간의 존엄성과 개인의 행복에 대해 묻는다. 고통스러운 과거일 지라도 모른 것 보다는 아는 게 낫다는 메시지는 끊임없이 존재에 대해 묻는 아버지의 '너는 누구인가'와 일맥상통한다. '너'는 누구인가. '너'는 결국 '우리'다.
약 두 시간 가량의 연극은 탄탄한 원작과 상징화 된 무대로 빛을 발했다. 객석은 가득 차 보조석까지 들였고 관객들 대부분은 집중했다. 그럼에도 영상과 음향의 진행미숙으로 인한 잦은 실수가 몰입을 막았다. 또한 연출과 무대 위의 호흡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지 않는 듯한 아쉬움이 있었다. 그럼에도 가장 좋은 발성과 발음으로 혼신의 힘을 다한 중년 배우들은 모자란 부분을 채우고도 남았다. 무엇보다 청운예술단의 '채광창'은 작품에 진실했으며 잔꾀를 부리지 않아 미흡한 부분에도 불구, 원작이 가진 감동과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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