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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Factory.53] 자신을 들여다보는 창, 연극 '채광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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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Factory.53] 자신을 들여다보는 창, 연극 '채광창'

[공연리뷰&프리뷰] '2010서울연극올림픽' 공모선정작, 진실을 찾아 떠나는 기차

기차소리가 공간을 가로질러 의식세계에서 무의식의 세계로 이동한다. 아버지(노인)를 태운 기차는 과거의 어느 지점에 종착,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에게 '너는 누군가'를 묻는 아버지는 엽서의 사람들을 가위로 오려내는 행동을 반복한다. 딸을 구하지 못한 자책감이 엽서 속 엉켜있는 인물들을 가위로 오려내므로 구출시키려는 행위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실제로 기차를 탔는가. 연극 속 승리자와 패배자를 구분하는 기준은 기차의 탑승여부다. 기차에 올라탄 이들은 승리자, 남은 자들은 패배자로 상징된다. 가족이 머물고 있는 반지하 역시 실패한 이들의 공간이다. 노인은 지금 반지하에 머물고 있으며 그 때 기차를 타지 못했다. 그의 미치광이 노릇은 해소되지 않는 과거 상처와 집착의 표출이다. 막이 오르고 사회자가 등장하면, 이제 거대한 숲에서 이미 죽어버린 몇 그루의 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 ⓒ프레시안

스페인 내전을 소재로 한 안토니오 부에로 바예호의 '채광창'은 당시 사회에서 금기시 됐던 비판의식을 연극 무대에서 처음으로 조명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채광창을 통해 승리자들이 활보하는 거리를 올려다보아야 하는 상징적 무대는 내전 후의 어둡고 억압된 사회를 형상화 한 동시에 치유될 수 없는 시대의 아픔 속에서 숨 쉬고 있는 개인들에 대해 설명한다. 청운예술단이 무대에 올린 연극 '채광창'은 이러한 공간적 아이러니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벽돌에 거대한 구멍이 난 듯한 원형의 채광창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들의 외면과 내면을 함께 엿보도록 유도한다. 그 안으로 보이는 반지하 집의 거실 한쪽에는 높은 단이 있다. 그곳은 형 비센떼의 작업 공간이자 패배자를 내려다보는, 누군가를 끊임없이 짓밟아야 하는 승리자의 공간이다. 큰아들 비센떼는 주된 공간(반지하 집의 거실) 밖의 인물이며 패배자의 무리에서 탈출한 성공자다. 높은 곳의 비센떼와 낮은 곳에 머물고 있는 가족의 대비는 과거 어느 사건에 기인하며 연극은 기차의 기적소리와 함께 그곳을 향해 달려간다.
▲ ⓒ프레시안

연극 마지막에서야 드러나는 과거 사건의 중심에는 가족의 모든 것이 들어있던 자루를 움켜쥐고 기차에서 내리지 않은, 혼자 떠나버린 비센떼가 있다. 현재 성공했으며 채광창 너머에서 숨을 쉬는 승리자지만 그는 과거에 대한 죄책감으로 지쳐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을 다짐하면서도 반지하의 공간을 반복해 찾게 되는 비센떼의 행동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까닭이다. 그는 '기차에 타면 안된다'는 아버지의 명령과도 같은 충고에 '이 기차에서 내릴 수가 없다'고 고백한다.

그렇다면 승리자의 위선과 죄를 묻는 패배자는 정당한가. 미쳐버린 아버지와 함께 그곳에서 나오려하지 않는 둘째 아들 마리오는 희생자를 언급하며 비센떼를 끊임없이 추궁한다. 그러나 그 또한 황폐해진 모두가 피해자인 줄 몰랐다고 고백한다. 연극은 전쟁의 참담함을 폭로하는 것 같지만 결국 인간의 존엄성과 개인의 행복에 대해 묻는다. 고통스러운 과거일 지라도 모른 것 보다는 아는 게 낫다는 메시지는 끊임없이 존재에 대해 묻는 아버지의 '너는 누구인가'와 일맥상통한다. '너'는 누구인가. '너'는 결국 '우리'다.

약 두 시간 가량의 연극은 탄탄한 원작과 상징화 된 무대로 빛을 발했다. 객석은 가득 차 보조석까지 들였고 관객들 대부분은 집중했다. 그럼에도 영상과 음향의 진행미숙으로 인한 잦은 실수가 몰입을 막았다. 또한 연출과 무대 위의 호흡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지 않는 듯한 아쉬움이 있었다. 그럼에도 가장 좋은 발성과 발음으로 혼신의 힘을 다한 중년 배우들은 모자란 부분을 채우고도 남았다. 무엇보다 청운예술단의 '채광창'은 작품에 진실했으며 잔꾀를 부리지 않아 미흡한 부분에도 불구, 원작이 가진 감동과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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