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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Factory.52] 이미지의 최면, 연극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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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Factory.52] 이미지의 최면, 연극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

[공연리뷰&프리뷰] '2010서울연극올림픽' 개막작, 이미지 연극의 거장 '로버트 윌슨'의 1인극

현재 안에서 반복돼 모습을 드러내는 과거는 감정이 배제된 무대 위에서 더욱 무표정하게 언급된다. 기이한 그림을 보는 듯한 사각형 무대는 모든 것을 절제시킨다. 기억의 얼굴은 창백하다. 공연 내내 이어지는 시각적, 청각적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재생되는 과거는 마모되지 않은 채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우리가 주인공의 과거를 엿듣는 동안 점차 희미한 존재감으로 유령이 되어가는 인간의 현실이 섬뜩하게 살아있다. 보이고 들리는 시각과 청각의 자극을 넘어 손끝에 느껴지는 초록색 유리의 날카로움이 몸을 관통한다. 극이 시작되고도 사건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랜 정적과 암흑이 이어지는 동안 책상에 앉아있는 한 사내의 모습이 나타난다. 이어 관객을 공격하는 강력한 천둥소리가 공연장을 압도한다. 침묵과 소음, 과장과 절제, 현실과 환상, 현재와 과거가 극도로 단순화 된 무대 위에 공존한다.

▲ ⓒ프레시안

사무엘 베케트 원작의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는 생일을 맞이한 주인공이 수년간 녹음된 자신의 목소리와 대화하는 1인극이다. 녹음기를 통해 과거가 '발설'됨에도 연극은 언어와 설명 위주의 형태를 거부한다. 어떠한 이야기를 전하려 애쓰지 않는다. 일렬로 정돈되지 못한 채 노트의 어느 곳에 무작위로 적혀 있는 수많은 기억의 파편들처럼 사건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연극은 징검다리를 건너듯 과거에서 과거로 이동한다. 설명 대신 수많은 이야기의 조각들을 제공한다. 모든 과정은 조명, 음향, 비현실적인 움직임 등을 통해 언어가 아닌 이미지로 다가온다.

독립된 감각들의 엄격한 조화
통제 속에서 관객은 오히려 자유롭다


▲ ⓒ프레시안
연극의 컬러는 단순하나 조명은 극도로 세분화돼 있다. 조명은 보조적 역할에서 벗어나 공연의 모든 요소와 어우러지면서도 분리된 하나의 인격체로 등장한다. 빛과 명암으로만 이뤄진 색의 대비는 시각을 자극하며 기하학적 초록색 여행의 시작을 지배한다. 이는 음향도 마찬가지다. 보이는 무대가 한정돼 있다면 소리는 공연장의 모든 곳을 자신의 영역으로 활용한다. 천둥이 치며 비가 쏟아지는 외부세계와 침묵으로 합의되는 내부세계를 동시에 제시한다. 주인공의 실제 음성과 녹음된 목소리를 통해 현재와 과거, 외적음성과 내적음성을 대비시킨다. 관객은 연극의 소리를 볼 수 있으며 조명을 들을 수 있는 묘한 세계를 만나게 된다. 엄청난 청각적 스트레스가 지속되다가 그 모든 것이 일시에 정지하는 순간 죽음 보다 더한 적막이 찾아오고, 흰색의 아름다움을 배반하는 극도의 밝은 조명이 불안한 형광의 초록이 돼 무대를 밝힌다. 조명과 음향, 느린 배우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은 녹음기를 통해 재생되는 과거만큼이나 반복된다.

그렇게 축적된 이미지들은 각각의 독립성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덩어리로 단단하게 묶인다.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것은 오직 무대 위의 한 사람 크라프, 로버트 윌슨이다. 그는 시간을 확장시키는 느린 동작과 과장된 말투, 웃음으로 다른 세계를 체험토록 한다.

▲ ⓒ프레시안
연극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의 과거에는 어머니, 검은 공, 가무잡잡한 유머, 춘분, 조용한 저녁 등 다양한 이미지가 숨 쉬고 있다. 낮은 가고 밤이 다가오는 모든 순간을 직시하자 공허가 보이고 외로움이 번진다. 크라프는 답습되는 과거를 헤매다 초록색 보석처럼 영롱하게 빛나던 어느 날을 만나게 된다. 그 때의 아름답고 설레던 정적은 냉정한 현실의 정적과 대비된다. 아주 작은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외부의 빛이 희박한 만큼 크라프는 고립돼 있다. 누워 있는 여자에게로 몸을 굽혀 그늘을 만들어주고 눈을 맞추던 소박한 순간만이 차가운 연극에 보이지 않던 주황빛 온기를 전한다. 분절돼 있는 과거가 유연해질수록 유령이 된 노인의 고독함은 극대화된다. 예민해진 관객들에게 감각적 이미지를 넘어 공유할 수 있는 감정적 동질감을 전한다. 치밀하게 계산된 엄격한 통제 속에서 해석의 다양성을 선물 받은 관객은 오히려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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