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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포토] 극도로 절제된 에너지의 발현, 연극 '디오니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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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포토] 극도로 절제된 에너지의 발현, 연극 '디오니소스'

[난장 스테이지] '2010서울연극올림픽' 국제위원작, 그리스비극과 일본 전통예술의 만남

신이 없는 시대를 지배하는 것은 우연이다. 신의 시대를 살고 있는 인간에게 우연은 운명이 된다. 우연은 결국 운명이며 이는 신의 뜻과 동의어다. 신이 없는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운명은 무엇인가. 그것은 또 하나의 폭력이며 충격이다. 인간에게 주어질 수 있는 극단의 비극을 한 인물의 삶에 던져놓는 그리스비극이 일본의 3대 주요 전통극 중 하나인 노(能)와 만났다. 그리고 동양고전과 서양고전의 만남은 기막힌 합일의 경지에 이르렀다. 운명이라는 단어가 가진 비극적 기운이 전혀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 놀라운 조화는 박제된 고전의 재활용이 아닌, 새로운 탄생을 증명했다. 그리스비극을 자신만의 독특한 연극미학으로 재해석, 표현한 연극 '디오니소스'는 일본의 전통예술이 현대인들과의 지속적 소통이 가능한 이유를 가늠케 했다.

▲ ⓒ프레시안

분명 그리스비극은 다양한 해석과 연구를 통한 실험적 공연의 주요 재료가 되는 만큼 장엄함의 매력이 있다. 시대를 아우르는 보편적 주제와 인간에 대한 탐구, 해석, 시적인 인물들과 탄탄한 서사 등, 희랍극 신들의 세계는 인간세계를 초월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원작의 위대함, 그동안 언급돼왔던 그리스비극과 일본 전통극의 유사성을 감안하더라도 연극 '디오니소스'는 스즈키 다다시의 치밀함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스즈키 다다시는 전통에 함몰되지 않고 재창조하는 진보적, 전위적 연출가로 평가된다. 그가 '2010서울연극올림픽'을 통해 선보인 연극 '디오니소스'는 무사의 절제를 연상케 한다. 소위 칼싸움에는 많은 합이 이뤄지는 법, 반면 일본 무사들의 칼은 빈번한 합과 화려한 동작 대신 정지 속에서의 순간적 일격을 택한다. 연극은 그와 닮았다. 천천히 떨어지는 벚꽃 속에서 가만히 서 있던 무사가 낙하하던 꽃잎을 베어버리는 동안의 긴장감과 날카로움이 연극을 지배한다.

▲ ⓒ프레시안

이처럼 하얀색, 붉은색, 검은색과 다섯 개의 의자로 이뤄진 '디오니소스'의 무대는 정적이며 상당히 절제돼 있다. 그러나 침묵은 평화의 시간들이 아니다. 강력한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팽창한 긴장감의 줄이 곧 끊어질 듯 아슬아슬하다. 순간적인 상승과 급작스러운 평정, 절제된 감정들과 그 속에 도사리고 있는 긴장감이 비극을 더욱 비극답게 만들었다. 과장으로 인해 왜곡된 배우들의 얼굴은 가면적이며 그들의 대사는 발끝까지 있는 힘껏 눌려 압축돼 있다. 배우들의 몸은 땅에 뿌리를 밖은 듯 엄청난 에너지를 담고 있으며 그들은 훈련을 통한 고도의 능력으로 신체의 에너지를 배분해 사용한다. 서로를 바라보는 대신 정면을 향해 말하는 모든 대사는 상호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나 독백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프레시안
▲ ⓒ프레시안

동양전통예술에 대한 서양인들의 애정과 관심은 다름에 따른 신선함에 기인한 면도 없지 않다. 연극 '디오니소스'가 서양에서만큼 한국에서 새롭지 않기에 그만큼의 자극을 주기에는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스즈키 다다시가 그리스비극을 새로운 빛으로 반짝이게 만들었으며 원작의 인물들을 더욱 생생하게 표현했음은 분명하다. 극이 끝나도 앙상블까지 연극의 모든 인물들이 무섭도록 강력하게 존재함을 부인할 수 없다. 과장과 절제의 조화가 또 하나의 미학으로 승화됐다. 이 모든 것을 충분히 느끼며 감탄할 수 있음에도 번역과 자막의 미흡함이 가져온 몰입에의 방해가 유일한 흠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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