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레시안 |
- 치명적인 아름다움, 라이몬다
김주원의 라이몬다를 떠올리면 파르르 떨리는 물결의 이미지를 지울 수 없다. 투명하고 맑으며 깨질 듯 차갑고도 가녀리다. 라이몬다 그 자체에 심취된 슬픔을 머금은 눈동자, 공중을 가로지르며 내어준 가는 손목의 떨림이 세밀하게 느껴진다. 라이몬다는 두 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안게 되는 체력적인 부담에도 감정과 기술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매끄럽게 소화한다. 밝고 경쾌한 캐릭터 춤으로 감정의 줄을 느슨하게 놓았다가도 또다시 탄탄하게 조여 가며 시선을 매료시킨다. 감정에 완전히 몰입된 그녀의 표정 연기는 무용수 김주원 본연의 무르익은 성숙함을 동시에 보여주기도 한다. 무대에서 그녀는 최선의 것, 그 이상을 보여준다. 커튼콜의 감격스런 순간, 러시아가 발레 강국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한국 발레의 훗날이 겹쳐지며 열정적이고 뜨거운 한국 발레의 미래를 본다.
▲ ⓒ프레시안 |
압데라흐만의 등장과 함께 무대는 두 개의 색으로 나뉜다. 순백과 선을 상징하는 흰색과 뜨거움과 열정을 상징하는 붉은 빛이다. 압데라흐만은 라이몬다를 차지하기 위한 구애를 펼친다. 화려하고 큰 동작은 무대를 단숨에 장악한다. 그는 마치 라이몬다를 뒤쫓는 검은 그림자와 같다. 그녀를 단숨에 삼킬 기세다. 압데라흐만 측근들이 보여주는 군무는 무대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한다. 우아하고 달콤한 매력의 라이몬다와 극명하게 대조되는 역동적이고 시원시원한 동작, 의례를 치르는 듯 색깔 짙은 춤은 작품 전체에서 독특한 이미지로 각인되며 주목을 끈다. 압데라흐만의 안정감 있는 동작과 교활하고 권위적인 캐릭터 묘사를 무용수가 잘 소화한다. 극명하게 대조되는 두 색은 당시 사회를 증명해주기도 한다.
▲ ⓒNewstage |
라이몬다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단연 글라주노프 음악의 향연이다. 그간 발레에서 음악은 보조 격으로 인식돼 왔던 것이 사실이지만 발레 '라이몬다'는 음악을 빠뜨리면 서운할 정도다. 글라주노프 음악의 감히 형용할 수 없는 무게는 예상만큼이나 훌륭하다. 안무와 어우러져 하나의 대작이 탄생했다. 진부할 수 있는 정형화된 스토리에서 작품의 깊이를 끌어내준 장본인이다. 음악은 고귀한 사랑, 그리움 등에서 비롯하는 마음의 심연, 사랑의 양면이 교차하는 감정을 잔잔히 비추며 몰입할 수 있도록 그 몫을 단단히 한다. 아랍인 압데라흐만의 등장에서는 지역적 특색이 담긴 빠르고 역동적인 음악으로 관객들을 완전히 무장해제시킨다. 발레 '라이몬다'는 대자연의 웅장함과 역사적 다양성을 수용한 음악과 유리그리가로비치 그만의 특색있는 안무, 지루함을 느낄 수 없는 스펙터클한 스토리의 삼박자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지금까지 발레가 누군가의 문화로 여겨졌다면 국립발레단과 볼쇼이발레단의 합동공연 '라이몬다'는 한국의 것으로 승화, 한국 발레 주체성 성립의 가능성을 보여준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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