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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Factory.51] 태양도 눈을 감는다, 헝가리 빅신하즈 국립극장의 '오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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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Factory.51] 태양도 눈을 감는다, 헝가리 빅신하즈 국립극장의 '오델로'

[2010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 그물에 걸린 여자, 줄에 매달린 남자

시종일관 무채색에 압도당한 무대는 웅크리고 있는 거대한 포악자의 입김처럼 비릿하고 음산한 죽음의 기운 아래서 단 한 순간도 자유롭지 못하다. 아름다웠던 순간들은 기적처럼 빛을 잃고 선과 악, 흑과 백이 높은 철창이 돼 주인공들을 옭아맨다. 교차된 구조물 사이로 빛이 들어오나 주인공들을 감싸는 것은 빛이 아닌, 구조물의 그림자다. 그들은 갇힌 존재다. 비극인지 희극인지 모를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은 언제인가. 데스데모나와 오델로가 '속박 없는 청년의 자유로운 삶'을 버리고 서로를 사랑하기 시작한 순간 비극도 동시에 시작됐다. 저주와 같은 두 남녀의 불행을 표현하는데 있어 연극의 마지막 장면은 매우 효과적이며 인상적이다. 그물에 걸린 데스데모나, 줄에 엉킨 오델로가 한 덩어리가 돼 지상도 천상도 아닌 공중에 매달려 있다. 끝없는 공허 속에서 배회한다. 허공에 매달린 비극은 눈에는 보이나 손에는 잡히지 않을 높이에서 가만히 흔들린다. 소리는 없다.
▲ ⓒ프레시안

이 비극을 연출하고 성공시킨(?) 것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 이아고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의지를 사용한 이아고는 운명이나 숙명에 휘둘리지 않는 근대적 인물이다. 셰익스피어의 캐릭터 중 상당히 매력적이라 할 만하다. 악으로 정의되나 사실 선과 악이 모호할 만큼 욕망으로만 가득 차 있다. 독설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유쾌하다. 온화한 얼굴로 강을 휘저으며 물길을 바꾼 이아고의 계략은 언제나 섬뜩하지만 그의 뛰어난 두뇌와 바쁜 움직임은 비극의 문을 열었을 뿐, 파국의 원인은 오델로에게 있다.
▲ ⓒ프레시안

오델로와 데스데모나 사랑의 시작에 치명적 균열이 있었던 건 그동안 여러 번 언급돼 왔다. 데스데모나는 '오델로가 겪은 위험' 때문에 그를 사랑했고 오델로는 '데스데모나가 위험을 동정'했기 때문에 그녀를 사랑했다는 지점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완벽해보였고 상원의원의 딸과 무어인(흑인) 장군이라는 어울릴 수 없는 화음을 조화롭게 연주했다. 덕망 높은 장군이었으나 내면의 방어에는 속수무책이었던 오델로가 이아고의 혀에 쉽게 놀아나 아내를 불신했다는 설정은 드러나지 않은 불안의 시작으로 타당성을 얻는다.

헝가리 빅신하즈 국립극장의 '오델로'는 내재돼 있는 치명적 균열을 인지하지 못한 두 남녀를 묘사하는데 탁월했다. 오델로를 흑인이 아닌 백인 배우가 연기한 것. 오델로는 객석을 가로질러 무대에 오른 후 2010년을 사는 한국 관객들에게 한국말로 인사를 건넨다. 이어 자신의 얼굴에 사선의 검은 선들을 그으므로 스스로가 흑인 오델로임을 알린다. 그렇게 시작된 연극은 시대의 옷을 갈아입었다. 현대 전장의 모습을 재현하고 상징화시킨 무대, 조금 더 직설적이고 대담해진 인물들은 활기차며 여전히 사랑을 한다. 단단하고 젊어진 연극은 신선했고 여전한 생명력을 과시했다. 또한 셰익스피어의 칼날과 이슬 같은 문장을 그대로 살려 원작에 충실했음을 알렸다. 2층으로 된 회전무대와 조명은 극적 긴장감을 배가시켰으며 배우들의 연기는 흠이 없다. 이미 알고 있는 스토리의 150분 러닝타임에도 공연이 지루하지 않았던 것은 그들의 탐구와 감각이 촘촘하게 배치돼 밀도를 높인 덕분, 더불어 원작의 위대함을 충분히 알고 존중했기 때문이다.
▲ ⓒ프레시안

아내의 부정을 확신하고 질투심에 주체할 수 없었던 오델로는 철창에 오른다. 그가 감정해 취해 순간적으로 오른 만큼 급히 추락할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데스데모나를 죽이기 위해 침실로 향하는 오델로는 처음으로 검다. 항상 존재했던 사랑과 불안이 실체화된다. 극단의 비극이 익숙한 절망을 안긴다. 1604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상영되고 있는 '오델로'는 연민과 공포를 동시에 전한다. 이어 시간이 흘러도 바래지 않는 사랑의 거대함을 증명한다. 웅크리고 있던 거대한 포악자의 실체는 죽음을 앞선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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