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실컷 놀아보자. 놀이는 역할놀이. 어렸을 적 모래를 쌓아놓고 아빠, 엄마가 돼봤던 소꿉놀이가 아니다. 판이 크게 벌어진다. 이번엔 왕이다. 한 나라를 지배해 보자. 원수에게 마음껏 복수 할 수 있다. 집 재산을 크게 불릴 수도 있다. 짝사랑하던 사람을 내 옆에 앉히는 것도 이젠 쉬운 죽 먹기다. 원하는 만큼 꿈꿔라. 놀이에서는 꿈꾸는 것 모두가 현실이 된다. 연극 '왕은 왕이다'는 역할 놀이를 통해 왕과 술주정뱅이의 자리가 바뀌면서 일어나는 일을 그린다.
▲ ⓒNewstage |
- '아랍연극'의 이질감을 넘어서다
연극 '왕은 왕이다'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아랍연극이다. 관객들은 아랍연극이 낯설고 생소하다. 아랍연극에 대한 이질감도 있다. 그러면서도 관객들은 아랍연극만의 독특함을 기대한다. 두 가지를 조화롭게 버무리는 것은 이 작품의 핵심이다. 연극 '왕은 왕이다'는 이질감과 기대감 사이의 간극을 '보편성'으로 좁혔다. 권력을 쥔 왕의 억압과 백성들의 고통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서나 존재했다. 아랍이 아닌 화성에서라도 권력이 있다면 생길 수 있는 아픔이고 고통이다. 또한 왕과 역할이 바뀐다는 설정은 미국 소설 '왕자와 거지' 등을 통해 국내 관객들에게 충분히 익숙한 소재다. 소재와 주제를 통해 보편성을 취득하며, 이 작품은 아랍연극을 한국관객에게 보이는데 따르는 불편함을 없앴다.
- 두 남자는 친절하다▲ ⓒNewstage
연극 '왕은 왕이다'는 현실과 놀이를 넘나든다. 이러한 구성은 자칫하면 관객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높은 집중력을 요구하기에 피곤하기도하다. 피곤함을 막고 극의 안정적인 진행을 위해서 무언가가 필요했다. 이 때 두 남자가 홀연히 나타난다. 그들은 극이 한창 진행될 때마다 등장한다. 상황을 정리해주고 관객들에게 말을 건다. 처음 그들을 마주한 관객들은 어색하다. 마치 쌩뚱맞은 케이블 티비의 중간 광고처럼. 하지만 그들의 역할은 컸다. 그들은 친절하다. 그들의 설명에 관객들은 흐름을 잃지 않고 극에 집중할 수 있다. 연극은 쉽고 재밌어진다.
- 왕은 왕일뿐이다
무대 위 가짜 왕관은 따가운 조명에 매 맞는다. 놀이방에 장난감 왕관은 때 가득한 손들에 꼬집힌다. 한편 진짜 왕관은 다르다. 왕의 머리위에서 왕관은 그에게 세상을 쥐어준다. 폭력과 억압을 선물한다. 그의 과거가 무엇인지, 그의 성품이 어떠했는지 상관없다. 왕관을 쓴 순간, 그는 변했다. 연극 '왕은 왕이다'의 술주정뱅이 '아부잇자'는 역할놀이를 통해 왕으로 등극한다. 왕관의 힘은 무엇일까? 그는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고, 고통스러웠던 백성들의 삶은 잊는다. 권력을 세우는 일에만 집착한다. 변해버린 '아부잇자' 앞에서 관객들은 불편하다. '무엇이 권력을 만드는가', '인간은 악해서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권력은 없어져야 하는 것인가' 등 숱한 물음만 남는다. 왕은 없어졌지만, 권력은 동일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지금 사회에서도 해봄직한 질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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