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위에서 삭발을 한 장애아 부모의 눈은 붉게 충열돼 있었다. 장애 자녀를 둔 부모 48명이 집단 삭발을 했다. 이들은 왜 집단 삭발까지 단행한 것일까.
이날 삭발식에 참여한 사람들 중 7명은 현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14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19일부터는 청와대, 보건복지가족부 앞 등 서울시내 주요정부청사와 번화가에서 1인 시위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장애아동 및 발달장애인 복지예산 확대와 관련 법률 재정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메아리 없는 외침일 뿐이다. 언론에서도 이들의 행보에 주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해당 부처에서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 국회 주선으로 이번 주 중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 담당자들과 협의가 이뤄질 예정이나 해당 부처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전혀 예상이 되지 않고 있다. 이들이 이날 삭발식을 진행한 이유다.
▲ 삭발을 하고 있는 장애아 부모들. ⓒ프레시안(허환주) |
"장애인들은 복지정책에서 배제돼 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이하 부모연대)는 31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1000명이 참여한 가운데 복지예산확대를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열고 각 지역별 부모연대 대표들이 무책임한 정부태도를 규탄하는 집단삭발을 단행했다.
부모연대는 "장애 1등급에게만 적용되는 복지혜택과 가정해체를 종용하는 서비스 소득기준, 학교를 졸업하고 갈 데가 없어 집안에 다시 틀어박히거나 시설을 찾아다녀야 하는 발달장애성인이 비일비재하다"며 "장애인은 복지정책에서 배제돼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도대체 장애인이 이런 취급을 당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정부에서는 우유나 고기에 붙이는 1등급, 2등급을 우리 아이들에게 붙여 물건취급을 하고 쥐꼬리만 한 서비스마다 소득기준을 내세워 장애인 가족의 등골을 파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명박 정부는 우리를 수십억 재산의 부자로 보는 듯하다"며 "하지만 우리는 하루하루 성실히 일하고 돈을 모아 꼬박꼬박 세금을 내며 국민의 의무를 다하는 보통 서민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다는 서민정책은 어디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지 우리 앞에는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며 "우리의 요구는 장애아동에게 꼭 필요한 재활치료를 필요한 아이에게 필요한 양만큼 보편적으로 제공하고 장애아동에 대한 돌봄 서비스를 확대해 부모와 가족구성원들이 정상적인 사회생활과 경제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 장애아를 둔 부모 1000여 명은 이날 보신각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었다. ⓒ프레시안(허환주) |
"OECD 국가 중 장애인복지예산이 최하위"
이날 삭발식을 단행한 유경미 씨는 "우리 아이가 현재 고등학교 1학년"이라며 "이 아이가 졸업한 이후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는 "항상 웃으며 사는 아이인데 밖의 사람들이 그 아이를 어떻게 바라볼지도 걱정이고, 이 아이를 어떻게 돌봐야 할지도 걱정"이라며 정부의 복지예산 확충을 촉구했다.
같이 삭발을 한 정윤호 씨도 "우리 아이가 지역사회에서 당당히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하지만 지금의 현실에서 우리 아이의 미래는 암담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하는 4대강 사업 예산 중 일부만 아이들을 위해 쓴다면 아이들은 보다 나은 사회를 살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의 결단을 요구했다.
부모연대는 "발달장애인이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된 후, 시설이나 집안에 박혀서 남은 인생을 무의미하게 마감하는 게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들과 함께 일하고 함께 즐기며 최대한 독립적이고 가치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체계를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선진국의 진압을 앞두고 있다는 대한민국에서, G20 세계정상회의를 주최하는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요구는 지나친 게 아니다"라며 "OECD 국가 중 장애인복지예산이 최하위를 달리고 있는 부끄러운 유산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말했다.
주무 부처는 아니지만 복지 분야 부처인 여성가족부 백희영 장관은 이날 울산 기자간담회에서 "4대강 사업과 복지예산은 별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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