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넘게 병원에서 간병인 일을 해온 전서옥 씨는 자신이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을 두고 '인격적 모독'이라고 꼽았다. 하지만 이러한 모욕을 당해도 '죄송합니다'라는 말 밖에 할 수 없는 처지다. 간병인은 근로기준법에 의한 노동자 신분이 보장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환자 대 간병인. 이런 식으로 1대 1 계약을 맺기 때문에 환자가 원하지 않을 경우 곧바로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다. 가사도우미, 보육노동자 등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일명 '돌봄 서비스' 노동자로 불린다.
가사 및 간병·보육 등 돌봄 서비스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법적 보호를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김상희 의원(민주당)은 돌봄 서비스 노동자의 법적보호를 위한 연대와 공동으로 30일 국회에서 '돌봄 서비스 노동자 법적보호를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 노인요양보호사(이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연합뉴스 |
"돌봄 노동자 70% 생계형, 하지만 보호 장치는 미비"
박현미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그간 연구한 돌봄 노동자 실태조사를 발표하며 현재 돌봄 노동자들이 얼마나 열악한 상황에서 노동을 하고 있는지를 피력했다. 그는 "이번 조사에서 평균임금은 5127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0년 법정최저임금 시급 4110원보다는 높다"고 설명했다.
박현미 연구원은 "하지만 간병인의 시간당 임금은 3970원에 불과했다. 또한 정부고용이 민간보다 시급이 더 낮았다"며 "이에 대한 개선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박현미 연구원은 "돌봄 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시간당 임금은 초기 진입자들이 가장 많이 받고 경력 5년 이후부터는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며 "이는 돌봄 노동의 경력이 노동시장에서 임금에 적절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에 대한 개선도 촉구했다.
고용안정문제도 지적됐다. 박현미 연구원은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들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의 하나로 지적한 것은 고객의 사정에 의해 일방적으로 일자리를 잃기도 혹은 지속하기도 하는 특성"이라고 설명했다.
박현미 연구원은 "문제는 이처럼 불안정한 고용상황에서도 이들을 위한 사회 안전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이번 응답자의 70% 이상이 현재 직종에 종사하는 이유로 '생계'을 꼽았고, 이들의 가계소득 기여율은 50% 전후였다"고 밝혔다. 그는 "결국 이들의 고용불안은 이들 가족의 생계를 위협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지적했다.
"최소한의 법적 보호 장치 마련돼야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어떤 방법이 있을까. 표대증 한신노무법인 노무사는 "돌봄 서비스 노동자에 대한 최소한의 법적 보호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표대증 노무사는 "돌봄 서비스 노동자들은 어떠한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한 상태이기에 산재나 실업을 당하면 바로 생계의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며 "그간 조사된 바에 따르면 돌봄 서비스 노동자들은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의 보장을 가장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표대증 노무사는 "돌봄 노동자들이 법적으로 근로자성을 인정받는다면 산재 및 고용보험이라는 최소한의 사회보장을 적용받아 안정적인 환경이 보장될 것"이라며 "또한 비공식 노동에 머물러 있던 돌봄 서비스 업종을 공식화시켜 보다 투명하고 건강한 노동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대다수 돌봄 노동자들은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고 있지만 '가사사용인'으로 분류,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김상희 의원과 돌봄 연대에서는 근로기준법을 개정, 즉 근로기준법 11조 가사사용인은 적용하지 아니한다라는 조항을 수정해 돌봄 노동자들이 근로자성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또한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각각의 법안에 가사사용인에 대한 특례조항을 두어 적용받도록 할 예정이다.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
김상희 의원은 "노동환경이 바뀌어 지금은 가사관리, 간병, 보육서비스가 직업영역의 하나로 분명히 인식되고 있다"며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돌봄 서비스 노동자들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법률 개정안 발표 배경을 설명했다.
김상희 의원은 "정부는 행정적 어려움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지 않았다"며 "그러나 돌봄 서비스 노동자들이야말로 누구보다도 고용불안과 산업재해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은수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원은 "돌봄 노동자들에게 법적 보호가 시급한 건 사실"이라며 "하지만 근로기준법을 개정하는 것은 법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기에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은수미 연구원은 "돌봄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전면적인 준비가 필요하다"며 "에매하게 건드리는 것은 현재의 어려운 싸움을 더욱 어렵게 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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