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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국치' 통감관저 표석, 서울시 반대로 '무허가'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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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국치' 통감관저 표석, 서울시 반대로 '무허가' 설치

시민단체 "치욕도 역사"…서울시 "자랑스럽지 않은 역사" 반대

'경술국치' 100주년이 되는 29일 서울 남산 옛 '통감관저 터'(현 서울소방재난본부와 유스호스텔 사이 공터)에 경술국치 현장임을 알리는 표석이 한국과 일본 시민단체들의 주도로 설치됐다. 그런데 이 표석에 대한 서울시의 입장이 애매해 표석의 운명이 불투명하다.

이날 오전 한국과 일본 시민단체로 구성된 '강제병합 100년 공동행동 한일 실행위원회' 회원들과 정관계 인사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표석 제막식에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평화를 기원하는 한일 시민단체들의 염원을 모아 이 표석을 세우게 됐다. 이 표석이 얼마나 지속되느냐에 따라 향후 동아시아의 역사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실행위 야노 히데키 사무국장은 "이 표석을 통해 지금의 세대들이 강제병합의 역사를 계속 기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신영복 선생이 글씨를 쓴 표석에는 "일제침략기 통감관저가 있었던 곳으로 1910년 8월 22일 3대 통감 데라우치 마사다케와 총리대신 이완용이 '강제병합' 조약을 조인한 경술국치의 현장이다"라고 새겨져 있다. 순종은 19010년 8월 29일 조칙을 공표했다.

▲ 29일 열린 표석 제막식에서 이해학 강제병합100년실행위원회 한국대표, 장병화 독립운동가 유족대표, 김원웅 단재기념사업회장(오른쪽 여섯번째부터 여덟번째) 등 참석자들이 표석을 제막한 후 '친일파 청산'을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무허가' 상태로 세워진 표석

서울시는 이 표석에 대해 다른 입장을 갖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등은 서울시와 표석 설치에 대해 협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서울시는 지난 18일 '표석설치자문위원회'를 열어 "자랑스러운 역사가 아니며, 국민 정서상 반감을 가지는 경향이 강하므로 (경술국치) 표석 설치는 재고해야 한다"며 '통감관저 터'라는 표석 설치에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다른 이름의 표석을 세울 계획이다. 이 자리에는 원래 조선 철종 때 만들어진 '녹천정'(鹿川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는데 1884년 갑신정변 때 일본 공사관이 불에 타자 일본이 이 터를 빼앗아 정자를 허물고 새로 공사관을 지었으며, 1906년부터는 통감관저로 쓰였다. 강제병합 이후에는 1939년까지 총독관저로 사용됐다. 이에 서울시는 오는 10월께 '녹천정 터'라는 표석을 세울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민족문제연구소 측은 서울시와 합의하지 못해 일종의 '무허가' 상태인 셈이다.

이해학 한국실행위 상임대표는 이날 제막식에서 "가슴 아픈 역사가 시작된 이 곳에 표석을 세우자고 서울시에 건의했으나, 시는 '녹천정 터'로 이름을 변경하자고 말하는 등 수치를 감추려고만 했다"며 "치욕의 역사라 할지라도 이를 보존하는 것이 후세를 위한 길"이라고 서울시를 비판했고, 임헌영 소장도 "나라를 빼앗긴 것도 부끄럽지만 그 사실을 안타까워 하지 않는 현실도 부끄럽다"고 말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조세열 사무총장은 "흔적도 남아 있지 않은 녹천정이라는 정자에 어떤 역사적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서울시가 설마 강제 철거를 하지는 않겠지만, 한 자리에 나란히 '통감관저' 표석과 '녹천정' 표석이 세워질 지도 모르겠다"고 씁쓸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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