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레시안 |
공간은 오로지 그녀의 방이다. 무대는 한정돼 있지만 연극은 두 시간 가량 꽤 먼 길을 지나온다. 한 번도 시각적으로 표현되지 않은 동쪽의 사원 역시 연극 어딘가에 분명해 존재한다. 여인은 그곳을 '메카'라고 불렀다. 연극은 메카로 가는 길을 누구나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친절히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저 방향을 제시하므로 힌트만을 남긴다.
'메카로 가는 길'은 책처럼 읽으며 음미할 수 있는 연극이다. 대화와 공간, 인물들 심리 사이사이 여백은 무수한 의미를 생산해내며 가장 단순한 공백이 되기도 한다. 헬렌이 메카에 다다른 정신적 체험을 이성으로 해석,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상징적으로 드러난 무대를 통해 우리는 헬렌의 '메카'를 공유할 수 있다. 칠십을 향해가는 이 고립된 여인의 삶은 그렇게 시가 되고 그림이 되며 또 연극이 된다. 사라지려는 찰나 더 찬란해진 촛불이 밝힌 그녀의 얼굴은 기적이라 불릴 만큼 아름답다.
작은 마술사 그녀의 방, 그곳은 '메카'
너무 다른 세 개의 음이 이뤄낸 완벽한 조화
▲ ⓒ프레시안 |
여기 헬렌의 메카를 조롱하지 않는 젊은 여성 엘사가 구원처럼 등장한다. 유일한 친구이자 사랑이다. 두 여인의 교감은 성장물로 보일만큼 순진하며 치열하다. 언제나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고 충실하면서도 서로를 통해 스스로를 바라본다. 엘사로 인해 헬렌의 세계는 풍화되지 않고 더욱 단단히 존재한다. 헬렌으로 인해 엘사는 삶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이해한다. 그들의 우정은 두 세계가 마음을 열고 다름을 존중하는 태도가 빚어낸, 새로운 조각상이다. 그리고 아직 완전한 형체를 드러내지 못한 마리우스와의 우정도 있다. 헬렌을 양로원으로 보내기 위해 노력하는 목사 마리우스는 단언컨대 악역이 아니다. 그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 너무 멀리 가버린 헬렌에 대한 연민과 애정의 표현 방법이 잘못되었을 뿐이다. 가엾은 마리우스는 헬렌이 있는 곳을 직시한 동시에 그녀를 잃었다.
서로 다른 성격과 크기의 음이 예상치 못했던 조화를 이루는 작품이 '메카로 가는 길'이다. 엘사의 음은 명확하며 강하다. 마리우스의 소리는 낮고 진중하다. 헬렌의 음표는 오선지 어디에도 완전히 걸쳐지지 않고 서로 다른 두 음의 불화를 조절하며 자유롭게 움직인다. 모든 논쟁이 작고 허약하나 자유가 넘치는 헬렌의 방에서 이뤄졌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연극은 노인복지문제 외에도 인권, 종교, 여성, 빈민 등 각종 사회문제를 아우른다. 그 속에서 암흑을 몰아낸 촛불처럼 빛을 발하는 '메카'는 관객의 깊은 곳에 숨어있는 꿈을 자극한다. 깊고 건강한 호수를 만나게 한 배우들의 탐구는 관객들로 하여금 '메카'를 찾아갈 용기를 심어줬다. 이어 촛불 끄는 법을, 그 의미를 여운으로 남겼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