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료품비로 17만 원을, 자신이 살고 있는 임대주택 월세로 9만 원, 전기·수도값 등으로 1만7500원을 썼다. 가사용품으로 6100원, 신발값으로 1만1000원을, 교통비로 6800원을 사용했다. 통신비로는 휴대전화비를 포함해 8만6000원, 오락비로 2만6000원, 그리고 기타 종합비로 4만5000원을 썼다. 그러다보니 되레 적자가 났다.
하지만 지난 달에는 고기는 고사하고 과일도 하나 제대로 먹지 못했다. 반찬거리도 장류를 제외하고는 두 가지 정도 밖에 사지 못했다. 그런데도 지출이 수입보다 많으니 난감할 수밖에 없는 A씨였다.
"수많은 빈곤층이 사각지대에 내몰려 있다"
현재의 최저생계비가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삶을 보장해 줄수 있을까. 2010년 기준 1인 가구 50만 원, 4인 가구 136만 원에 불과한 최저생계비는 문화생활은 고사하고 주거비용, 의료비용도 제대로 감당할 수 없다는 조사가 발표됐다.
'저생계비결정을촉구하는민중생활보장위원회'(이하 민생보위)는 12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초생활보장 수급가구 가계부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하고 최저생계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민생보위는 2011년 최저생계비 현실화와 상대빈곤선 도입을 촉구하기 위해 기초생활권리행동, 사회공공연구소 등 복지, 노동, 사회단체들과 수급당사자가 결성한 단체다.
이들은 "올해 시행 10년을 맞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가난한 이들의 최소한 생계보장을 국가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도입 목적"이라며 "하지만 제도 시행 10년 동안 낮은 최저생계비와 부양의무자 기준 및 과도한 소득재산기준 등 제도의 한계로 수많은 빈곤층이 사각지대에 내몰려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최저생계비는 이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의 기준"이라며 "하지만 현 최저생계비는 치솟는 물가와 주거비용, 교육비용 등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자신들이 직접 조사한 기초수급자의 한 달 가계부를 근거로 제시했다.
▲ 12일 오후 서울 무교동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린 '기초생활수급가구 가계부 조사 결과발표 및 최저생계비 생존자 증언대회'에서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김선미씨가 가계부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
조사 가구 대부분 적자, 폐품 팔어 부족한 부분 매꿔
민생보위가 지난 7월 한 달간 수급가구 가계부를 조사한 결과 총 17가구 중 6가구를 제외한 11가구가 적자를 냈다. 적게는 7000원에서 많게는 20만 원까지 다양했다. 적자를 나타내지 않은 가구 중 3가구도 차액을 이웃이나 지인에게 빌려 채무를 충당한 가구였다.
빌리는 것 말고 발생한 차액을 충당하는 방법으로는 사적으로 교회 등의 도움을 받거나 폐지, 폐품수집 등을 통해 해결한다는 응답도 있었다. 대부분 가구가 최저생계비로 생활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가계부 작성가구의 주택형태를 보면 쪽방, 혹은 고시원 거주가구가 7가구, 영구임대주택, 매입임대주택 혹은 전세임대주택 등 공공임대주택 거주가구가 3가구, 민간임대주택 가구가 6가구였다. 이들 중 8가구는 무보증월세이며, 7가구는 보증월세, 그리고 2가구는 전세임대료를 지불해야 하는 가구였다. 모두가 매월 일정한 임대료를 지불해야 하는 가구인 셈이다.
평균적으로 최저생계비에서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17%, 의료비는 4.7%~8.4%인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비의 경우 한 자녀만 있는 경우 4%, 둘 이상일 경우 최소 10% 이상, 최대 40%에 육박하는 걸로 나타났다.
최저생계비상 표준가구의 식료품비는 51만 원정도로 3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선미 노숙인인권공동신천단 책임간사는 "이들이 구입한 식료품 목록을 보면 육류는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월 1회 구입했다"며 "해당 비용으로 마련된 식단은 장류 등 반찬 두어 가지 밖에 없었고, 과일을 구입한 가구는 단 한 가구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
"그간 당사자의 의견을 무시하고 최저생계비는 결정됐다"
민생보위는 "사회적 평등과 가난한 이들의 희망을 위해서라도 최저생계비는 대폭 인상돼야 한다"며 "정부는 그간 당사자의 의견은 무시한 채 자의적으로 최저생계비를 결정했다"고 비판했다.
최저생계비는 3년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이뤄지는 계측을 바탕으로 책정된다. 연구원들이 시장조사를 통해 최소한 생활에 필요한 물품과 종류, 가격, 수량을 파악해 이를 바탕으로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서 최저생계비를 책정한다.
이들은 "현재 책정된 주거비 8만7000원으로 전국 어디서 월세 방을 구할 수 있는가"라며 "또한 4인 가족이 한 달에 2만4000원으로 두 번씩 외식을 할 수 있다는 계산은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한 초등학생 자녀 두 명이 한 개의 칼과 가위로 2년을 버티며 미술시간이 겹치지 않기를 기도하며, 반팔 셔츠 두 벌로 2년을 나며 학교에서, 동네에서 차별받고 멸시받지 않길 기대하는가"라고 반문했다.
현재 최저생계비 산정은 표준가구의 최저생활에 필요한 품목과 수량을 모두 시장바구니에 담아 중저가 가격을 반영해 합산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이 방식으로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2007년 계측 시 품목을 예로 들면 가족외식비는 1년에 2회, 주부양말이 1년에 2켤레, 아동 장난감은 1년에 2개만 인정된다. 아동 운동화는 2년에 1켤레이며 휴대전화는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돼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산정인 셈이다.
또한 현 최저생계비 기준은 중소도시 가구인 점도 문제다. 지역별 최저생계비는 중소도시를 100으로 놓을 때, 대도시는 108, 농어촌은 86 수준이다. 서울지역의 경우 130정도로 추정된다. 이와 같이 지역별로 차이가 있음에도 정부는 단일하게 적용하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민생보위는 "올해는 실계측을 통해 최저생계비가 결정되는 해"라며 "최저생계비의 현실화를 통해 사회의 빈곤을 해결하는 첫걸음을 나아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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