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리뷰Factory.43] 영웅과 인간에 대한 정직한 애정, 연극 '나는 너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리뷰Factory.43] 영웅과 인간에 대한 정직한 애정, 연극 '나는 너다'

[공연리뷰&프리뷰] 송일국, 영웅 안중근과 배신자로 불리는 안준생 1인 2역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두 남자가 있다. 정신적으로는 삶을 얻었으나 집을 떠나야만했던 남자, 육체는 살았으나 정신이 머물 곳 없어 지금껏 황량한 벌판을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또 다른 남자. 가장 닮았으나 가장 다른 존재가 되어버린 안중근과 그의 아들 안준생이 상반되는 눈빛으로 무대에 섰다.

▲ ⓒ프레시안
대한의군 참모중장 겸 특파독립대장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세 발의 총알을 명중시킨 후, 불멸의 존재가 됐다. 찬양받아 마땅할 그 거대한 안중근의 그림자 아래 돌아갈 수도, 돌아갈 곳도 없는 안준생이 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고, 울부짖어도 듣는 귀 하나 없는 안준생이 홀로 쓰러져있다. 연극 '나는 너다'는 정의된 영웅이 아닌 인간을 바라본다. 한 가정의 가장이자 자식이었고 남편이었으며 아버지였던 안중근은 1910년 3월 26일, 그의 나이 서른두 살에 의거했다. 그리고 백 년이 지났다.

배우 윤석화가 연출을 맡은 연극 '나는 너다'는 안중근의 이야기라는 '당연한 감동'의 서사 뒤에 숨지 않았다. 이 연극은 놀라우리만치 정직하다. 단 한 순간도 곁길로 빠지지 않으며 묵직한 신념을 일괄되게 전한다. 그가 왜 위대한가를 충실히 그려내는 과정이 다소 상투적으로 느껴질지는 모르나 자극 대신 울림을 선택한 연극의 정직함은 오히려 불필요한 곁가지를 제거, 극을 단단하게 묶었다. 황량한 무대는 그 우직함에 무게를 더한다. 몇 개의 장치와 소품으로만 이뤄진 연극은 당시 상황의 참혹함과 긴박함을 묘사할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외롭고 삭막했던 모든 이들의 마음이 무대를 채운다. 신념과 환희, 절망과 좌절의 패배감이 빈틈을 주지 않는다. 모든 것의 조화에는 바로 보나 모로 보나 유난히도 '열심'이 묻어난 배우들이 있다.

안중근이 된 배우 송일국은 자부심에 차 있다. 눈빛은 인자하며 동시에 매섭다. 1인 2역으로 안중근과 안준생이 된 송일국에게서는 인물들에 대한 동경과 이해, 연민이 묻어난다. 더 이상의 수식을 거부하는 배우 박정자는 그녀가 이뤄낸 명성을 배반하지 않았고, 배우 배혜선 역시 슬프나 냉정해져야 하는 여인의 아픔을 흔하디흔한 오열 한 번 없이 표현해냈다. 잠깐의 영상으로만 등장해 그 존재감을 확인시킨 강신일과 송영창, 그 외 앙상블 등 모두가 하나의 목적 아래 이름 없이 빛났다.

▲ ⓒ프레시안
연극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배신자, 변절자로 불리는 안중근의 아들 안준생과 직접적으로 대면했다는 데 있다. 이 작품은 항상 논란이 돼 왔던 안준생을 내세워 '영웅의 아들도 영웅이어야만 하는가, 버려져 춥고 배고픈 상황에서 살아남은 죄 밖에 없다'며 다르게 볼 것을 제시한다. 정답은 없으나 한 인간의 삶에 대한 동정과 애정은 극을 풍부하게 만든다. 작품 속 안준생은 외롭다. 분하고 야속하다. 후회스럽고 괴롭다. '나라가 망했으면 망한 대로 살면 되고, 나쁜 놈이 나와서 설치면 구경하면 되는 거지, 대체 왜 가족을 망치고 자식을 망치는가'라는 안준생의 원망어린 호소에 우리는 손가락질 할 수 없다. 연극 '나는 너다'의 힘은 여기에 있다.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의 한 개인이 아닌, 짧은 삶 속에서의 인간을 바라보게끔 했다.

'왜'라고 묻는 아들에게 안중근은 '너를 위해서'라고 말한다. 대체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누구인가, 묻는 안준생에게 '나는 너다'라고 대답한다. 이 작품은 안준생에 대한 섣부른 정의 대신 이와 같은 새로운 해결점을 찾았다. 다만 영웅과 그의 아들에 대한 구체적 만남을 시도하려는 의도는 신선하나 안중근과 안준생의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못하고 독립된 사건으로 비춰진다는 데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