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다마을 베트남 모임 '궁남따이' 회원인 장지연 씨는 서투른 한국어로 또박또박 준비해온 편지를 읽어나갔다. 뒤에서 조용히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던 베트남 이주여성들의 눈시울은 뜨거워졌다. 이들은 '우리도 인간이다, 때리지 말아요', '한국 사람들은 이주여성을 존중해야 합니다'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회원인 이주여성 30여 명이 20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결혼한 지 1주일 만에 남편의 손에 죽음을 당한 고 탓티황옥 씨를 추모했다.
"앞으로 한국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 자리에 참석한 궁남따이 회원 장지연 씨는 "20살의 나이로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탓티황옥 씨는 말없이 세상을 떠났다"며 "부모, 형제를 버리고 말없이 떠났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20일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앞으로 이러한 사건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가 국제결혼 상에서 나타나고 있는 인신매매적 성격을 근절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레시안(허환주) |
그는 "탓티황옥 씨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가 그렇게 죽고 싶지는 않았다는 건 잘 안다"며 "어리고 꽃다운 나이에 부모님을 도와주겠다고 이렇게 먼 땅까지 찾아온 그를 이렇게 대한 사람들은 사람으로 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분노했다.
장지연 씨는 "그를 살해한 사람이 사람의 모습으로 산다 해도 과연 그 마음이 사람의 마음인지 모르겠다"며 "평생 자책감 속에 살아도 탓티황옥 씨에게 진 빚은 갚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필리핀 이주여성 김낸시 씨는 "탓티황옥 씨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며 "앞으로 한국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막연한 답답함 때문이었다"라고 설명했다. 김낸시 씨는 "내 주위에도 남편에게 폭력을 당하는 이주여성들이 많이 있다"며 "하지만 이들을 보호하는 법이나 제도는 없는 게 한국의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정부, 문제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대안 마련해야"
지난 8일 살해된 여성은 탓티황옥이라는 20살 배트남 여성으로 2010년 2월 호치민에서 47세의 한국 남자 장 씨를 만나 단 한 번 선을 보고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지난 7월 1일 한국에 입국했으나 7일 만에 남편에게 심한 구타를 당하고 복부에 흉기가 찔려 사망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수차례 현행 국제결혼중개업체에 의한 파행적인 결혼이 초래할 문제에 대해 정부에 문제제기를 했으나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비극이 발생했다"고 비판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노총각들의 결혼 대책으로 우리보다 경제적 여건이 높지 않을 수도 있는 타국 여성들을 마치 물건 수입하듯 취급하고 있다"며 "또한 언어문제로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못하는 남녀를 그저 한 집에 같이 살게 하는 것으로 결혼의 모든 과제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는 무모함 등이 이 같은 사건을 발생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앞으로 이러한 사건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가 국제결혼 상에서 나타나고 있는 인신매매적 성격을 근절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불법적 관행을 여전히 일삼고 있는 국제결혼중개업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야 한다"며 "중개업의 관리, 감독을 책임지고 있는 여성가족부를 비롯해 정부와 각 지자체가 이들에 대한 철저한 관리 감독 및 엄격한 법 집행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중개업체는 결혼 중개 대상인 두 사람 모두에게 상대방에 대한 신상정보, 즉 병력, 범죄경력, 직업, 나이, 재산 등을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통·번역해 제공할 의무가 있다. 이를 어길 시 벌금 또는 징역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런 사항들이 전혀 지켜지지 않는 실정이다. 이주여성의 경우 한국 남성에게 선택되어야 하는 불평등한 상황 때문에 구체적인 정보를 기반으로 남편을 선택할 권리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
"나도 탓티황옥 씨와 같은 베트남 이주여성이 될 수 있다"
레티마이 투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베트남 활동가는 "탓티황옥 씨에게 좋은 이웃과 정부가 있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진 않았을 것"이라며 "정신병을 속이고 결혼시킨 중개업자와 또한 그걸 관리하지 않은 정부가 원망스럽다"고 한탄했다.
레티마이 투 활동가는 "나도 탓티황옥 씨와 같은 베트남 이주여성이 될 수 있다"며 "친구 하나 제대로 사귀지 못하는 한국 생활 속에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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