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야권은 희망의 씨앗을 얻었다. 절대적으로 불리해 보였던 2012년 총선과 대선이라는 '빅매치'가 어느정도 게임은 되겠구나 기대할 수 있는 형편까진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는 전적으로 '반MB'라는 반사효과 덕분이었다. 민주당의 자력에 의한 게 아니다. 그래서 향후 2년 남짓한 시간에서 민주당이 어떤 모습을 보이는가가 중요하다. 50년이나 계속되던 보수정권이 무너진 뒤 2번의 정권교체를 거치면서 국민들은 선거를 통한 '심판'의 의미를 분명히 깨달았다.
민주당이 시끄러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방선거를 통해 바늘구멍만큼 열린 '공간'을 누가, 어떻게 확장할 수 있느냐를 놓고 논쟁이 불가피하다. 4일 쇄신연대가 "지난 2년간 민주당은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받들지 못했다"고 비판하면서 공식 출범했지만 당 안팎의 여론은 뜨뜻미지근하다. '반(反) 정세균' 이외에 뚜렷한 메시지를 던지지 못하고 있어 '당권 다툼'이라는 비판에 맥을 못춘다. 3선 의원이고 김대중 정부에서 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냈던 김영환 민주당 의원과 같은 상당수 의원들이 당 지도부와 쇄신연대 모두에 비판적이다.
"지도부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긴다는 생각도 못했다. 한명숙 후보가 경선을 했다면 당도, 후보도 정당성을 얻고 그 과정에서 오세훈에 대한 면역력도 길러졌을 것이다. (이렇게 무원칙하게 선거를 해놓고도 결과가 예상보다 좋으니) 기분 좋아하면서 선거에 지고도 반성도 안 한다."
해방 이후 가장 약소한 제1야당을 맡다보니 힘이 없다는 패배의식 때문에 어떻게든 '바람'을 일으켜 한몫 잡아보겠다는 '이벤트식 정치'에 몰입하는 무원칙한 당 운영이 현 지도부, 더 나아가 민주당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비주류에 대해서도 "솔직히 지방선거에서 진다는 전제 하에 성명서 써놓고 기다린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주류, 비주류를 떠나 좀더 비상한 각오로 7.28 재보선과 8월 전당대회를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7.28 재보선이 야당에 유리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지만 결코 낙관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전망이다. 2004년 4월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압승한 뒤 불과 두달 만인 6월 재보선에서 참패했다. "7.28 재보선은 야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거머쥔 정국 주도권을 상실하게 하는 보틀넥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당대회도 "박근혜보다 훨씬 빨리 변하는 민심"을 받아안을 수 있는 인물과 정책을 차근차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절박한 문제의식을 갖고 치러야한다고 말했다. 김대중-노무현 이후 민주당의 정치노선과 리더십에 대한 보다 근본적이고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다음은 2일 오후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위원장실에서 진행된 인터뷰 전문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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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트위터', 위기감 때문
프레시안 : 민주당의 중진으로 야당의 압승으로 끝난 이번 지방선거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김영환 : 이번 선거는 2012년 대선의 전망과 희망을 세운 선거다. 선거 전까지는 2012년 대선은 패스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열린우리당의 실패와 정권 재창출 좌절로 인해 보수세력에게 10년 정도의 집권이 허용됐다고 봤다. 인물도 부족하고.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대중들은 그 10년을 참고 기다릴 수 없다는 분명한 의사를 표시했다. 정세를 이해하고 대중들의 변화를 감지하는 사람이라면 한나라당 재집권에 암운이 드리웠다고 생각할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한나라당의 집권이 어렵게 돼 있다. 박근혜 전 대표가 얼마 전 트위터를 시작했다고 하지 않나? 또 지난달 29일 박근혜 전 대표가 본회의에서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5분 발언'을 한 것도 이런 위기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그분들도 대중의 변화와 정세의 흐름을 예민하게 보고 있다. 6.2 지방선거의 기반 위에서 2012년 총선과 대선이 만들어지지 않겠는가. 지금 만들어진 씨앗은 성장하고 개화하게 돼 있다. 이명박 정권의 임기가 6개월 남은 상황에서 총선이 열리지 않나. 지금보다 훨씬 많은 비판론이 제기될 것이다. 이대로라면 '이명박 심판론'이 2012년 총선에서는 활짝 꽃피게 돼 있다.
프레시안 :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승리한 이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2년 반 만에 이렇게 확산된 것은 국민이 정치권에 대해 갖는 기대감의 주기가 그만큼 짧아졌다는 방증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확인된 씨앗이 성장하고 개화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기대할 수도 있지만, 남은 기간 동안 또 어떤 변화가 이뤄질 수도 있는 게 아닌가.
김영환 : 맞다. 다만 트렌드가 그쪽으로 잡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국민의 정서는 초고속, 광속으로 변하고 있다. 또 쌍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정치가 국민에게 영향을 주고, 국민이 정치에 영향을 주는 시대다. 누구도 상황을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어렵다.
지난 6년 동안 4번의 싹쓸이 선거가 있었는데, 그 동안은 싹쓸이의 방향과 내용을 다 예측했지만, 이번에는 선거 당일까지 예측을 전혀 못했다. 모든 여론조사, 정당, 정치인의 감각이, 더 나아가 후보 자체도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이런 흐름을 좌우한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김영환 : 명백하게 이번 선거는 대중들이 평화를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누가 뭐래도 이번 선거는 천안함 사건을 중심에 놓고 치른 선거였다. 안보위기와 북풍에 저항해서 '이렇게는 안 된다, 전쟁은 안 된다'는 생각이 젊은이들을 투표장으로 끌고 왔다. 안보와 평화를 같이 가져가야 한다는 생각을 명백히 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일자리 문제를 포함한 서민의 삶이 너무 고단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집권세력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이를 악물고 심판했다고 본다. 국민들은 경제성장, 수출 이런 수치에 현혹되지 않고, 아주 구체적인 삶의 질과 정책에 주목했다. 피부에 맞는 정책을 선택한 최초의 정책선거, 그 전형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이는 한국 정치사상 최고의 선거혁명이라고 생각한다. 6.10 항쟁 때도 그랬고, 80년 광주도 그랬고, 6.29 때도 그랬고, 지나고 보니 정치사에 획을 긋는 혁명이었지 않나. 이번 지방선거도 과거에는 없었던 변화가 잉태돼 있다.
우선 지역주의가 상당히 허물어지고 있다. 경남에서 야당 성향의 무소속 지사가 나온다든지, 강원에서 야당이 집권한다든지, 해방 후 처음 있는 일이 아닌가. 인천에서도 야당의 집권은 처음이라고 하더라. 구각(舊殼)이 허물어진 것이다. 광역단체장 뿐 아니라 기초단체장을 봐도 충청, 강원, 제주, 경남, 인천 등에서 지역주의에 의존하는 정치로 단세포적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전국정당화의 가능성이 열렸다.
다음은 20, 30대가 자발적으로 투표장으로 나왔다. 이것은 기성세대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지 않는다는 혁명적 선언이다. 이제 앞으로 누구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20, 30대는 길거리로 나오게 돼 있다. 이런 상황은 한나라당 내의 생각 있는 사람에겐 소름끼치는, 지리멸렬한 야당에겐 희망을 주는 일이 아니겠나.
쇄신연대 주장엔 '쇄신'이 없다
프레시안 : '지리멸렬한 야당'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민주당 내부에서 전당대회를 앞두고 쇄신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고 있다. 어떻게 보는가.
김영환 : '쇄신'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당의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쇄신 플러스 알파'를 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쇄신연대가 주장하고 있는 내용에 '쇄신'이 없다는데 어려움이 있다.
야당은 두 가지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다. 하나는 대선에 어떤 후보를 내보낼까의 문제가 안 풀리고 있다. 또 하나는 김대중-노무현 이후 민주당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명백한 합의가 없다는 점이다. '뉴 민주당 플랜'은 있지만 국민에게 뚜렷하게 각인되지는 못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때는 평화,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비주류는 김대중-노무현 이후, 민주화 이후 민주당이 어떻게 갈 것인지에 대한 정책과 비전을 내놓고 변화를 촉구하는 게 아니지 않나. '정세균 안 된다'는 식이 아닌가? 너무 빈약한 논리다. 비주류나 쇄신파들이 주장하는 쇄신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동감하지만, 그 방향과 인물의 확보라는 점에선 대안 없는 공허한 주장처럼 보인다. 그러다보니 단순한 당권경쟁으로만 비춰질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민주당이 풀어야 할 과제로 정체성과 리더의 문제를 들었다. 김대중-노무현 이후 민주당의 정체성 문제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보나.
김영환 : 민주당의 정체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도 아니지 않나. 지난한 민주화 투쟁과 분단의 현실 속에서 평화와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지향, 기득권보다는 소수 약자를 배려하는 서민경제와 서민을 위한 정치 등의 정체성이 확립됐다. 중도개혁으로 갈 것인지, 좀더 진보해야 하는지 등 문제는 있지만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남은 것은 민주당의 정체성을 노무현 정부 이후 변화된 상황에 맞물려 어떤 정책과 정치노선으로 관철시킬 것인가의 문제다. 과거에 비해 두 가지 측면이 가미하고 있지 않나. 바로 복지와 생태·환경이다. 이 두 가지 문제에 천착하고, 그 중요성을 부각시켜야 할 시대다. 지금의 논란이 당권경쟁으로 비쳐지지 않기 위해서는 김대중-노무현 이후 정치노선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지 담론을 갖고 토론해야 한다. 또 하나는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 이후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갈 것인가의 문제를 한나라당과 민주당 중 누가 선점할 것인가의 과제다. 그 방향을 놓고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일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정세균 대표를 두고 '항상 농성만 한다'는 비판부터, 미디어법 문제 등 이명박 정권 전반기에 돌출된 수많은 문제들을 과연 야당으로 얼마나 받아 안고, 정치적으로 풀었느냐는 지적까지 있다.
김영환 : 결과적으로 굉장히 미흡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해방 이후 최고의 소수 야당이 아닌가. 김대중과 같은 카리스마 있는 거목이 없는 상황에서 화합적인 리더십, 민주적 리더십을 갖고 한 단계 한 단계 허덕이면서, 연명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이해는 된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갈 수는 없다.
국민들은 실천력 있는 지도자를 기다린다. 이명박 대통령도 청계천을 통해 실천의지와 능력을 보여준 게 아닌가. 말로 떠드는 정치인보다는 작은 것이라도 성과를 확인할 수 있고, 검증된 지도자를 원한다.
그런데 국민들이 지난 2년 반동안 이명박 대통령처럼 해서는 안 되고 그 폐해가 굉장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표피적으로 오만불손하다든지, 인사(人事)에서 실기한다든지, 그런 게 아니라 막연하게 생각했던 토목공사형 리더십의 문제에 대한 회의다. 이명박 대통령도 G20을 유치하고 원자력을 수주하는 등 좋은 일을 많이 하지 않았나. 경제도 위기 속에서 비교적 선전했다. 그런데 국민들은 그런 점은 저평가를 하는 동시에 '우리 생활이 어떤가, 일자리 문제는 어떤가, 우리의 삶이 나아지고 있나, 자식들 교육은 잘 되고 있나' 등의 문제를 생각한다. 삶의 질과 교육, 건강의 문제다. 이런 일보다 앞서 4대강에 예산 투입할 건 아니라는 판단을 명백하게 하고 있다. 그러니 무섭다는 것이다. 4대강 사업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30% 이상일 수는 있다. 그런데 불요불급(不要不急)하다는 게 80~90% 이상이다. 지금 당장 숨이 가쁜데 공기를 넣어줘야지, 뱃놀이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에 허탈감을 느끼고, '아, 우리 지도자가 아니었구나, 관심사가 다르구나'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국민과 대통령 사이에 엇박자가 나는 것이다. 그런 점이 이번 선거에서 나타났다. 게다가 지방선거 이후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태도를 보면, 전혀 개전의 정이 없기 때문에 2012년 대선과 총선은 야당으로 올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야당이 더 잘해야 한다.
박근혜보다 빠른 속도로 대중들의 생각이 변하고 있어
프레시안 :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 주류가 개전의 정이 없다지만, 그럼 점에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치인 중 하나가 박근혜 전 대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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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박 전 대표의 집권이 상당히 어려워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본인도 그것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 내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주장은 우리와 문제의식을 같이 하는 점도 있지만, 여당의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서 해야 할 태도는 아니다. 박 전 대표는 국민들이 한나라당은 싫지만 자신을 찍기를 원하도록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국민들은 한 사람 보다는 정당의 노선과 정책으로 판단한다. 다음 선거에서 국민들이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싫지만, 박근혜를 찍겠다고 할까, 아니면 이럴 때 정권과 노선을 바꾸려고 할 것인가. 또 과연 '박근혜 노선'은 맞는 것인가. 6.2 선거 이후 국민들에게 박근혜 노선이 낡은 노선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카리스마도 있고, 우리가 갖지 못한 여러 능력을 가진 분으로 존경해 왔는데, 과연 시대에 맞는 것인가. 박근혜 전 대표보다 빠른 속도로 대중과 젊은이들의 생각은 변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프레시안 : 2007 대선 당시에도 그 동안 '이회창'으로 대표되던 한나라당과는 전혀 다른, 이명박이라는 새로운 주자가 부상했다. 다음 대선에서도 신(新)보수 주자가 나올 가능성이 있지 않나. 여권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문수 경기도지사 등이 거론된다.
김영환 : 이명박 대통령이 취한 중도실용이 잘못이 아니라, 중도실용을 취하면서 내세운 정책이나 노선이 올드 패션드하다는 것이다. 그러다 촛불 사태가 터지자 보수로 회귀했다. 이 대통령은 불안하니까 중도실용이 아니라 친(親)보수적 성향으로 회귀했다. 그것을 만회하기 위한 노력들이 계속 헛발질로 이어지면서 대중의 정서와 엇갈리게 되니까 결과적으로 6.2 선거에서 참패했다. 즉각 '유턴'을 하고, 납작 엎드려야 변화의 계기가 서는데, 안 하지 않나. 세종시 수정안 문제도 국회 본회의에서 확인사살을 하고, 4대강 사업도 계속 밀고 가지 않나.
우리도 과거에 집권했을 때 국민이 하라는 것을 안 하고 어깃장을 놓고 그랬다. 대통령들이 좀 그런 것 같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가장 국민을 염장 질렀던 것이 있다. 옷 로비 사건 때 김태정 검찰총장을 경질하라는 목소리가 높았는데, 국민감정을 너무 몰랐다. 당시의 국민감정이란 이런 게 아니었을까. IMF 구제금융으로 국민들은 죽겠는데, 지도자들은 밍크코트인지 뭔지 떠들고 다니지 않았나. 절망과 원망에 빠진 국민들 입장에서는 검찰총장을 잘라도 시원치 않을 판국인데, 대통령은 몽고를 다녀와서 "언론의 마녀사냥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 이튿날 송영길 후보가 보궐선거에서 떨어졌다. 국민주권을 거스르는 지도자에 대해서 국민은 복수의 원소를 찾아낸다. 그게 6.2 선거에서 나타났다.
2002년 국민경선 이후 이벤트 정치에 쏠려, 이젠 안 통한다
프레시안 :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송영길, 이광재, 안희정, 김두관 등 새로운 40대 리더들이 부상했지만, 차기 대선을 생각하기엔 아직 이르다. 당장 다음 대선을 생각하면 민주당의 '인물난'은 여전한 것 아닌가.
김영환 : 인물 문제는 걱정하지 않는다. 다만 민주당은 구축함을 만들어야 한다. 어뢰 한 방에 날아가는 초계함이 아니고, 큰 구축함을 만들어야 한다. 그 구축함의 선장이 집권할 수 있는 큰 함대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당대회와 당의 쇄신은 구조적, 시스템, 전략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정세균은 안 된다? 그건 뚜렷한 이유가 아니다. 선거에 이겼고, 대과도 없었다. 김대중 이후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갖고 비교적 민주적으로 당을 운영했다. 쇄신연대가 지적하는 사당화(私黨化) 문제는 누가 당대표가 되더라도 그 정도는 있을 수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비주류나 혁신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요구하는 게 뭔가? 집단 지도체제? 이미 다 해 봤다. 전당원투표제는 아직 우리가 할 준비가 안 돼 있다.
오히려 현 지도부의 문제는 원칙을 확고히 지키지 않았던 게 문제였다. 더 이상 전당대회 때마다 당 대표를 뽑는 방식을 바꾸고, 선거 때마다 당 후보 공천 방식을 바꾸고 이런 게 정치개혁으로 여겨져서는 곤란하다. 당 후보공천 방식은 확고부동한 원칙에서 움직이면 안 된다. 정당이 바로 서려면 정당의 후보공천 원칙이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A라는 지역은 시민공천배심원제를 하고, B 지역은 당원투표를 하고, C 지역은 당원투표 절반에 체육관 투표 절반으로 한다? 당의 기강이 서지 않는 일이다. 그때그때 바뀌는 룰로는 안 된다. 그런 것으로 민주당에 대한 지지도가 올라가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런 경향은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탄생시킨 국민참여경선 이후 생겼다. 당시 대선은 이길 수 없는 선거였는데 국민참여경선이 노풍의 촉발점이 됐고 결과적으로 뒤집었다. 하지만 이벤트식 정치는 한두 번은 통할 수 있지만, 상시적 방식이 될 수는 없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유시민-김진표 단일화도 그런 성격이었다. 정당정치에 맞지 않는 결정이었다. 선거 한달 전에 정당을 만들어서 후보단일화를 요구하고, 후보를 먹고, 선거에 이기겠다? 그런 정당정치가 어떻게 뿌리내릴 수 있겠나. 민주당과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합당하는 게 맞다고 본다. 그리고나서 중도개혁세력과 진보그룹이 연대해야 한다. 경기도에서 "애초에 잘못된 분당이므로 연대도, 협상도 없다"는 원칙 하에서 (국민참여당을) 흡수해서 같이 갔어야 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무엇을 반성해야 하나. 지도부는 이번에 서울에서 이긴다는 생각도 못했다. 기분들이 좋다 보니까 선거에 지고도 반성도 안 하더라. 한명숙 후보가 경선을 했다면 당도, 후보도 정당성을 얻고 그 과정에서 오세훈에 대한 면역력도 길러졌을 것이다. 지도부가 서울에서 이긴다는 생각을 못한 것은 정세판단의 오류였다. 비주류도 선거에 진다는 전제 하에 지도부 사퇴하라는 성명서 써놓고 기다린 것 아닌가? 나는 차기 지도부가 누가 되든 간에 원칙을 지키고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원칙을 지키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게 폐쇄적인 당 운영으로 가서는 곤란하지 않나. 특히 야당 입장에선 20-30대 젊은이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어야 한다.
김영환 : 당 운영의 원칙을 지키는 것과 국민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벤트를 통해서만 20-30대 젊은이들을 끌어들이는 건 아니다. 왜 우리 정당에는 젊은이들이 오지 않는가, 왜 소극적 지지만 보낼까. 좀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이건 앞에서 얘기한 생활밀착형 정책을 내놓고 실현시키는 과정을 통해 얻어가야지 요란한 반짝 이벤트로는 안 되는 일이다.
프레시안 : 지방선거에서 국참당과 후보단일화는 하는 게 아니었다고 주장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이길 수 있었던 요인이 야권연대였다. 야4당이 이번 7.28 재보선도 연대하겠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밝혔지만, 재보선은 전국선거와 달리 연대가 쉽지 않다. 김 의원도 후보단일화 논의가 있었던 작년 10.28 재보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김영환 : 그 문제에서도 지도부를 공격할 수밖에 없다. 이 지도부는 자기 당 후보를 당선시킬 생각은 안 하고, 야권연대를 먼저 생각한다. 선후가 바뀌었다. 선거는 자기 당의 후보를 내세워 당선될 수 있어야 한다. 힘이 부족할 때 연대를 하는 것이다. 야권연대 선거 전략은 소극적 전략이다. 우리 당 후보가 독자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노력을 하면서 연대를 해야지, 연대가 제1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경기도 단일화했지만 졌다. 가장 큰 연대가 졌다. 연대를 가장 극적으로 이룬 곳도 경기도 아니었나. 저는 연대하지 않고 이겼다. 무소속 임종인 후보가 약 15%를 득표했지만, 나는 한나라당 후보를 15%차로 이겼다. 연대는 자기 당의 후보가 독자적으로 이길 수 있는 준비를 하면서 모색해야 한다. '연대'가 먼저라면 단일화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선거에 지더라도 국민참여당과의 연대는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민주당과 참여당은 통합해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후보를 뽑아야 한다.
프레시안 : 재보선에서라면 시기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나.
김영환 : 그런 것 같아 안타깝다.
7.28 재보선, 야당이 정국 주도권 잃는 보틀넥 될 수도
프레시안 : 지도부가 야권연대 우선했다 비판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뚜껑을 열기 전까지 지방선거 판세는 민주당에 매우 불리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이번 재보선도 마찬가지다. 지방선거의 여파로 야권에 유리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지만 투표율이 낮다는 재보선 특성상 그렇게 낙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프레시안(최형락) |
프레시안 : 18대 국회 하반기에 지식경제위원회를 맡게 됐다. 핵심 상임위로 꼽히는 지경위는 각종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다. 서로 첨예한 갈등이 분출되는 곳인데 가장 우선을 두는 원칙은 무엇인가?
김영환 : 지경위는 모범 상임위라는 별명이 있었다. 여야간에 원만하게 합의가 잘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족 같은 분위기로는 안 된다. 국회는 현안을 두고 치열하게 토론을 해야 한다. 반드시 여야간의 싸움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현안을 두고 의원들이 각계각층, 다양한 그룹들을 대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합의를 잘 이끌어내는 지금까지의 좋은 전통은 살리되, 생산적인 토론은 더 늘려가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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