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미넴의 신작 [Recovery]는 발매 첫 주 만에 75만장을 팔아치웠다. 김건모 3집이 세운 280만장이라는 기록을 깰 수 있을지는 모르나 아무튼 대단한 일임은 분명하다. 평가 역시 대부분 '찬사'에 가깝다. 국내 리스너 반응도 비슷한 것 같다. '돌아온 탕아'가 'real sh*t'을 들고 왔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물론 좋은 앨범이긴 하다. 올해 말에 다시 거론될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찬사들이 어딘지 모르게 조금 불편하다. 고로 이의를 제기한다. 자, 이제부터는 '반작용'의 향연이다.
▲에미넴 [Recovery]. ⓒ유니버설뮤직 제공 |
그래서인지 [Recovery]를 관통하는 기운은 '재기의 몸부림'이다. [Relapse]에도 그런 면모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에미넴은 [Recovery]를 본격적인 재기작(혹은 새 출발점)으로 여기는 듯하다. 실제로 에미넴은 앨범 여기저기에서 [Relapse]에 대한 못마땅함 혹은 평가절하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하지만 굳이 둘을 놓고 논하자면, 나는 [Relapse]보다 [Recovery]가 더 못마땅하다. 먼저, 기준이 '꽉 찬 사운드'라면 둘 다 시험대를 통과한다. 아니 오히려 [Recovery]가 더 화려한 소리의 성찬이다. 그러나 크게 매력적이지 않은 것이 문제다.
앨범의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팝/록 어프로치 트랙들에 환호하기에는, 미안하지만 내가 그동안 너무 마이 묵었다 아이가. 단적으로 <Going Through Changes>와 <25 To Life>를 가리켜 식상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Sing for the Moment>가 신선하게 느껴졌던 때를 떠올려 보니 자그마치 2010에서 8을 뺀 2002년이다.
물론 이런 곡들의 쓸쓸하고 비장한 분위기가 에미넴의 현재 상황과 맞물려 더 드라마틱한 연출을 자아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클리셰' 수준을 넘지 못한다. <Space Bound>, <Love The Way You Lie> 역시 마찬가지다. <Cinderella Man>은 좋다/나쁘다 이전에 당황스러움이 밀려온다.
그럼에도 간과하지 말아야할 것은 디제이 카릴(DJ Khalil)의 존재다. 기타 리프를 활용한 힙합 비트를 꾸준히 자기 스타일로 만들어온 그는 이 앨범을 통해 <Talkin' 2 Myself>, <Won't Back Down>, <Almost Famous> 등 더욱 발전한 곡들을 선보인다. 하나도 안 섹시하고 진부하기만 한 여성 보컬들이 빠졌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비트 이야기를 이어가보자면, 일단 저스트 블레이즈(Just Blaze)를 빼놓을 수 없다. 총 3곡을 선사한 그의 비트는 결론적으로 좀 모호하다. 완성도와는 별개로 자기 스타일을 잠시 잃은 모습이다. <Cold Wind Blows>는 훌륭하지만 닥터 드레(Dr. Dre)의 그것 같고, <No Love>와 <You're Never Over>는 서던 힙합(southern hiphop)과 짐 존신(Jim Jonsin)이라는 이름이 먼저 떠오른다(짐 존신은 사이프레스 힐(Cypress Hill)의 신작에 주었던 곡과 엇비슷한 분위기의 <Space Bound>라는 곡으로 본작에 참여했는데, 앨범 크레딧을 보기 전까지는 <You're Never Over>가 짐 존신의 곡인 줄 알았다).
다음은 보이-원다(Boi-1da). 드레이크(Drake)의 인기몰이로 인해 덩달아 주가를 올리고 있는 그지만 뛰어난 프로듀서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Not Afraid>가 좋나? 이 곡이 신선한가, 아니면 그루브가 뛰어난가, 그것도 아니면 장인의 솜씨처럼 정교한가. 이 앨범 최고의 미스터리다.
▲신보의 첫 싱글 <Not Afraid>는 힙합 음악으로서는 빌보드 역사상 두 번째로 싱글차트 1위로 핫샷 데뷔했다. 국내 디지털 차트에서도 최상위권을 곧바로 점령했다. 그가 21세기 대중음악계가 낳은 최고의 스타임은 분명하다. ⓒ유니버설뮤직 제공 |
이제 에미넴의 랩을 테이블에 올려놓자. 그는 뛰어난 래퍼가 맞는가. 그는 과연 랩을 잘하는 걸까? 잘한다(…). 정말 잘한다. 어느 얼간이가 못한다고 했나? 그는 랩 신이다. 역사에 남을 것이다.
그러나 이 앨범에서 에미넴의 랩은 이상하게 '과잉 불포화' 느낌이다. 때때로 그의 랩은 너무 격앙되어 있고 예전에는 없었던 쇳소리가 묻어난다. 그러다 보니 가끔씩 비트에 랩을 억지로 구겨 넣는 인상이고 그럴 때면 완급을 조절하는 플로우의 맛을 느끼기가 어렵다.
[Encore]까지의 앨범들에서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최근 드레이크, 비오비(B.o.B.), 릴 웨인(Lil Wayne)의 곡에 참여한 랩에서는 발견할 수 있었던 느낌이 이 앨범에서도 이어지는 걸 보니 착각이나 우연은 아닌 것 같다. '앨범의 80% 이상이 다 똑같은 플로우라 지루하다'는 외국 힙합 포럼의 볼멘소리들도 이러한 맥락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것은, '진정성'(이라는 단어로 표현 가능한 무엇)이다. [Recovery]가 많은 리스너에게 찬사를 받는 이유 중 가장 중요한 하나가 바로 '에미넴의 진심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에미넴은 릴 웨인과 카니에 웨스트(Kanye West)의 성공을 질투했던 그간의 심경을 전하며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인데 대해 팬들에게 사과하기도 하고(<Talkin' 2 Myself>), 쇄신의 결심을 결연히 내비치기도 한다(<Going Through Changes>). 그런가 하면 <You're Never Over>에는 프루프에 대한 애틋한 추모의 정을 담는다.
역시 아무래도 <Not Afraid>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이 곡을 듣고 '감동받는' 대신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나란 사람은 나쁜 사람일까? (안 어울리게도) 슬픈 영화나 다큐를 보면 자주 눈물을 보이는 나인데도 말이다.
한마디로 <Not Afraid>는 너무 뻔하다. 진심인 건 알겠다. 하지만 더 깊은 울림을 가지거나 더 흥미롭게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특히 후렴과 브리지 가사는 정말 진부함의 극치다. 진심이 매력적이지 않다는 사실은 슬프다. 그렇기에 눈길은 자꾸만 <Cold Wind Blows>같은 개선가나 자신의 데뷔 전후 상황을 실감나게 순차적으로 그려낸 <Almost Famous>, 그리고 <No Love>의 끝내주는 배틀 라임으로 향한다.
진짜 끝으로 한마디. 에미넴 본인부터 공개적으로 [Relapse]를 싫어(?)하니 많은 리스너가 덩달아 [Relapse]를 [Recovery]와 비교하며 폄하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좋지 않다. 물론 그 주체가 에미넴이든 리스너든 [Relapse]보다 [Recovery]를 더 선호하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과연 [Recovery]가 [Relapse]보다 의심의 여지없이 뛰어난 앨범인지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일례로 [Relapse]는 [2001](1999) 앨범 이후 정립된 닥터 드레의 새로운 스타일을 그 중심은 유지한 채 조금씩 성공적으로 변주해낸 준수한 힙합 비트들이 가득 담긴 작품이었다(그리고 그 긍정적 면모는 [Recovery]의 유일한 닥터 드레 곡 <So Bad>로 이어졌다). 즉 에미넴이 싫어하든 말든, [Relapse]는 단단한 힙합 앨범임이 분명하다.
성격이 다른 두 앨범을 동등한 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판받아야할 답습([Relapse]) VS 찬사해야할 혁신([Recovery])'의 구도로 보기에는 불행(?)하게도 [Relapse]는 제법 단단하고 [Recovery]는 자주 불완전하다. [Recovery]를 향한 찬사를 조금은 거둬들여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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