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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공공의 적'? 여론조사는 정말 잘못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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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공공의 적'? 여론조사는 정말 잘못된 것인가

[의제27 '시선'] 선거의 '숨은 표'는 어디에 있는가

2010년 6월 2일 지방선거에 많은 사람들이 혼란에 빠졌다. 언론사가 보도한 여론조사 결과와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여론조사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여론조사를 인용한 언론들은 일제히 '못 믿을 여론조사'를 지적하고 '여론조사 무용론'을 제기했다. 여론조사 회사들도 매우 당혹스러워했다. 많은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선거결과를 제대로 "예상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과연 여론조사가 잘못된 것인가?

여론조사에 관한 오해

여론조사를 불신하는 가장 큰 문제로 언론은 전화조사 응답율이 약 10% 수준에 그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는 통계에 대한 무지의 소치이다. 미국 갤럽 편집장 프랭크 뉴포트가 <여론조사>(Polling Matters)에서 지적한대로 낮은 응답률은 여론조사의 정확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선거여론조사는 일반적으로 연령, 성별, 지역을 기준으로 표본을 구분하는 '할당표집' 방법을 사용한다. 현재 전화번호 등재율이 60% 수준이지만 인구통계학적 특성을 고려해 표본을 추출한 뒤 조사를 하기 때문에 통계상 신뢰도는 높다. 표본은 크기가 아니라 추출방법이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현실적으로 전화를 이용한 여론조사가 전 세계적으로 사용하는 보편적인 방법이다.

여론조사에 관한 두 번째 오해는 유선전화를 쓰지 않는 젊은 세대가 표본추출(샘플링)에서 배제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대부분의 선거여론조사는 가정용 개인인명부에 등재된 유선전화를 사용한다. 이 경우 응답자 가운데 평일 낮에 집에 있을 가능성이 높은 주부, 은퇴노인, 무직자가 지나치게 많은 가능성이 크다. 반면에 젊은 세대와 직장인이 집에서 전화받을 확률은 매우 낮다. 하지만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여론조사는 가중치를 사용해 보정하고 있다.

물론 현행 표본추출에서 개선할 점도 있다. 보통 여론조사는 연령, 성별, 지역 이외에도 인구센서스를 활용하여 '직업' 구분을 고려하면 여론조사의 정확도가 커질 수 있을 것이다. 통신보호법을 개정한다면 070번호 전화와 휴대전화를 활용한 방법도 포함할 수 있겠지만, 이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부 선진국에서처럼 인구집단별로 자발적인 유권자 패널을 구성해 여론조사에 활용하는 방법도 고려해보아야 한다.

숨은 야권표가 있는가?

지방선거의 최대 논란은 '숨은 야권표'이었다. 민주당은 '숨은 표'가 10~15% 정도 된다고 확신했다. 표현의 자유가 크게 위축됐기 때문에 '숨은 표'가 어느 때보다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 주장했다.

올해 3월 타계한 독일의 정치학자 노엘 노이만은 주류의 의견과 반대되는 의견을 가지고 있을 경우 소수의 사람이 침묵하려는 경향을 설명하는 침묵의 나선이론(Spiral of Silence Theory)을 제시했다. 1982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를 앞둔 여론조사에서 흑인이었던 탐 브래들리 후보가 앞서다가 실제 선거에서는 득표율이 낮게 나오는 현상을 지적한 '브래들리 효과'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이론을 인용하는 사람들은 이명박 정부가 집권한 후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 이른바 '미네르바 효과'가 확산되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 설명은 선거 결과를 거의 정확하게 맞춘 출구조사의 예측력을 설명할 길이 없다. 전화 여론조사에서는 거짓으로 말하고 출구조사에서는 진실을 말한다는 가정은 설득력이 없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투표 의도를 조사한 여론조사는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여론조사는 투표하기 전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의도조사'인 반면 출구조사는 투표를 마친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결과조사'이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처럼 여론조사 결과 공표 금지기간 (선거 6일전)에 '빅 이슈'가 계속 발생하는 경우 조사 결과가 맞지 않을 수 있다.

최종적으로 선거의 정당별 실제 득표 결과를 보면 한나라당이 총득표의 약 40%를 얻었고, 민주당은 약 35%를 획득했다. 투표 이전 조사에서 정당 지지도는 한나라가 약 40%, 민주당은 약 25% 정도였다. 수치를 비교해 보면 결국 한나라당 지지자는 찍을 만큼 찍은 것이다. 한나라당의 주장처럼 "여론조사를 낙관한 여당 지지층이 안심하고 투표장에 안갔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반면에 민주당 지지자가 10% 정도 상승한 것이다. 그러면 10% '숨은 표' 이론이 맞는 것인가?

'숨은 표'는 없다

이런 '숨은 표'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선거 이론에 승자에 편승하려는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와 약자에 동정하는 '언더독 효과'(underdog effect)가 있다. 2008년 총선에서는 '밴드웨건 효과'가 컸던 반면, 2010년 지방선거에는 '언더독 효과'가 위력을 발휘했다. 이는 선거 이전부터 '안정적 국정운영'보다 '정권 견제'가 더 중요하다고 응답한 여론조사와 일치한다.

그러면 '숨은 표' 10% 유권자는 누구인가? 막판에 지지 정당을 '전향'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부동층 가운데 여당성향이 많은지 야당성향이 많은지는 분명하지 않다. 오히려 '숨은 표'의 비밀은 바로 '적극적 투표 의사층'에 있다. 여론조사는 응답자가 투표장까지 가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단순하게 '지지 의사'를 묻는 것이다. 응답하는 사람 가운데 투표장에 가는 사람과 안 가는 사람이 있다. 여론조사가 이것까지는 알아낼 수는 없다. 이런 점 때문에 '반드시 투표하겠다'고 밝힌 '적극적 투표 의사층'을 별도로 조사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적극적 투표의사층을 조사한 결과로 예상하면 거의 틀리지 않는다.

결국 '숨은 표'는 숨은 표가 아니다. 이들은 여론조사에서 응답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다. 아마도 무응답층의 상당수는 투표장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숨은 표'는 여론조사에서 응답한 사람들이다. 다만 야당 성향 유권자들이 더 많은 비율로 투표장에 나온 것이다. 이번 선거는 결국 적극적 지지층의 '점유비'의 문제이다 (이 용어는 <분노한 대중의 사회>의 저자 김헌태씨가 먼저 사용한 말로, 나는 대화를 통해 많이 배웠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야당 지지자들은 여당 지지자들보다 투표 참여율이 높았다. 그래서 평민당과 국민회의는 25%의 정당 지지율보다 더 높은 득표율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이후 민주당 지지층의 투표율은 현저하게 하락했다. 정당 지지율은 큰 변동이 없었지만 점유비의 차이는 매우 다른 결과를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김대중 정부 집권 시기 동안 대부분의 선거에서 패배했다. 이처럼 여론조사의 단순지지율은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나타나는 순간을 예측하지 못할 수 있다.

적극적 유권자를 움직이는 요인을 찾아야

야당성향 유권자가 여당성향 유권자보다 더 열성적으로 투표행위에 참여할 경우, 여론조사의 단순 지지율은 틀릴 수밖에 없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야당성향 유권자들이 더 많이 투표장에 나온 것이다. 정부에 대한 견제심리가 작용하면서 15년 만에 54.5%라는 유례없는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선거운동 기간 동안 천안함 사건 등으로 여당성향 보수층의 결집이 강화됐지만 야당성향 유권자의 정권견제 의지를 이겨내지 못했다.

선거 6일 전 5월 27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에서 이런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천안함 사태에 관한 정부의 대응이 지방선거를 겨냥한 과도한 북풍몰이라는 주장에 대해 52.9%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39.5%에 불과했다. '그렇다'는 응답은 특히 20대(74.1%), 30대(64.9%)가 높았다. 반면에 60대 이상은 34.7%에 불과했다. 전쟁이 나면 가장 먼저 전선에 가야하는 젊은 세대의 생각은 너무나 뻔하지 않는가?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나는 이번 선거 동안 대학생들이 부재자 투표에 관심이 가지고 꼭 투표를 하겠다는 말을 듣고 뭔가 달라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의 "전쟁 두렵지 않다"는 발언 이후 전쟁이 나면 어쩌나, 주식시장이 폭락하면 어쩌나 걱정하는 소리도 커졌다. 그리고 김제동의 방송 퇴출 사건 등에 대한 젊은 네티즌의 정서적 반응도 심상치 않은 조짐이었다. 결국 출구조사를 보면 젊은 세대의 투표율이 증가했다. 막판 6일 동안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와 트위터를 사용한 선거운동이 상당한 효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야당성향 유권자에 영향을 미친 이슈는 무엇인가? 선거가 끝난 후 6월 4일 KOSI 여론조사에 따르면, 후보를 찍으실 때 다음 중 어떤 사안이 가장 크게 영향을 미쳤냐는 질문에 4대강 사업(21.8), 천안함(16.3%), 무상급식(12.3%), 정당(7.3%), 세종시(6.9%),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년(4.4%)의 순서로 답변했다. 민주당과 야당 지지층의 응답도 거의 비슷하다. 다만 충청 지역에서는 세종시(28.1%)를 가장 중요하게 꼽았다. 천안함으로 온통 지면을 뒤덮은 언론 보도와는 매우 다르다.

결국 지방선거는 4대강 사업, 세종시 수정안을 비롯한 정부정책에 대한 강한 반대여론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노풍은 기대한 것만큼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으며, 북풍의 과도한 활용이 선거 후반에 역풍을 만들어 젊은 세대와 중도성향 유권자 사이에서 정권견제론이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여론조사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선거 기간 중 여론조사에 두고 논란이 많았다. 민주당은 "특정 언론의 여론조사 결과는 민심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고 비판했다. 한나라당은 "과학적인 여론조사 결과를 과학적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비과학적인 태도"라고 응수했다. 선거 막판까지 한나라당 내부에는 압승을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더 컸다.

물론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이견이 있었다. 정두언 한나라당 지방선거기획위원장은 비관적 전망을 내기도 했다. 김현철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부소장도 "그게 엄살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여의도 연구소의 선거 직전 마지막 여론조사 결과는 적극적 투표 의사층 조사와 거의 비슷하다고 말했다.

결국 여론조사는 결과보다 해석이 더 중요하다. 여론조사가 오류인 것이 아니라 분석을 잘못한 것이다. 사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통계에 대한 무지로 해석의 오류가 발생한다. 표본오차를 고려하지 않고 단순 지지율로 우열을 매기면 예측이 빗나간다. 다음으로 적극적 투표 의사층을 파악하지 않으면 정확도가 떨어진다. 과거 투표행위의 분석과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유권자의 성향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않으면 단순지지율은 최종 결과와 다를 수밖에 없다.

선거 여론조사는 '무용'한 것이 아니다. 선거기간 중 유권자의 태도 변화를 측정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여론조사이다. 그러나 여론조사의 예측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해석이 중요하다. 유권자의 응답이 투표로 연결되는 변수를 추론하고 여론조사의 지지율을 재해석해야 한다. 그러한 변수로 정당 소속감, 적극적 투표 의사층, 특별한 이슈에 대한 태도의 변화, 과거의 투표 행위 등을 고려해야 한다. 결국 여론조사는 수치가 아니라 추세로 읽어야 한다. 여론조사는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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