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말이 전도됐다. 양천경찰서 경찰관들의 고문은 서울경찰청의 과도한 실적주의 때문이라는 채수창 서장의 주장도, 고문은 양천서 한 곳에서만 있었다며 사퇴할 이유가 없다고 뻣대는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의 대응도 물구나무 선 것이다.
이렇게 단정하는 근거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이다. 그가 지난 22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분명히 말했다. "어떤 이유로든 고문은 용납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의 말 그대로다. 고문은 국민의 인권을 가장 극단적이고 저질스런 방법으로 파괴하는 행위이기에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그런데도 댄다. 채수창 서장은 고문은 실적주의 때문이라고 이유를 댄다. 불문곡직하고 단죄해야 할 반인권 범죄에 곡절을 들이댄다.
그래도 낫다. 채수창 서장은 양천서 담당 경찰관의 잘못 "못지않게" 실적경쟁에 내몬 서울경찰청 지휘부의 책임 또한 크다고 말했으니까 앞뒤 가려 들을 여지가 있다. 하지만 다르다.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의 주장은 도저히 들어줄 수가 없다. 고문은 양천서 한 곳에서만 있었으며 사퇴할 이유가 없다는 그의 말은 도저히 양해할 수가 없다.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에게 묻자. 치욕을 느끼지 않는가. 부하 경찰관이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반인권 범죄를 저지른 데 대해 상관으로서 치욕을 느끼지 않는가. 상관으로서 지휘·감독을 다 하지 못한 데 대해 책임을 느끼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상한 일이다. 독재정부 하에서조차 경찰청 수뇌부 사퇴로 이어진 고문사건에 대해 치욕과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지금의 경찰은 '선진경찰' 아닌가.
혹시 이런 걸까? 책임을 협의의 차원, 즉 '법적 책임'으로만 이해한 걸까? 이명박 대통령이 어떤 이유로도 고문을 용납할 수 없다면서도 책임 범위를 '법적' 테두리로 한정한 것에 힘입은 걸까?
그렇다면 할 말 없다. 그럼 도의적 책임은 언제, 누가 지는 지냐는 반문, 고문과 같은 반인권 범죄에 대해서조차 도의적 책임을 지지 않으면 도대체 어떤 일에 대해 도의적 책임을 지는 거냐는 반문, 이런저런 일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한 이전 경찰 수뇌부는 괜한 짓 한 거냐는 반문 등이 줄을 잇지만 그래도 할 말이 없다. 법적 책임만 물어야 한다는 데에야 누가 뭐라 하겠는가.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인데.
법치의 근간을 뒤흔드는 '폭치'가 버젓이 자행돼도, 수치를 느껴야 할 때 몰염치가 성해도 할 말이 없다. 그게 MB정부의 인사 원칙이라면.
▲ 지난 16일 서울 무교동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국가인권위 유남영 상임위원(오른쪽)과 정상영 조사관(왼쪽)이 경찰 조사중 고문을 당했다는 진정 관련 직권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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