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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만에 돌아온 리플렉션 이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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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만에 돌아온 리플렉션 이터널

[김봉현의 블랙비트] [Revolutions Per Minute]은 과연 전작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애석하게도, [Revolutions Per Minute]은 그 가치를 온전히 평가받지 못할 슬픈 운명을 안고 태어났다. 리플렉션 이터널(Reflection Eternal)이라는 이름을 걸고 나왔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브랜드마케팅커뮤니케이션 수업에서 배운 바에 의하면, 브랜드는 언제나 그에 상응하는 기대를 수반한다. 그리고 리스너에게 리플렉션 이터널이라는 브랜드는 곧 '최고의 기대치'를 의미한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탈립 콸리(Talib Kweli)와 하이텍(Hitek)은 이미 10년 전에 리플렉션 이터널의 이름으로 [Train of Thought]라는 클래식 앨범을 역사에 남겼다. 좋은 앨범은 한 해에도 여러 장 나오지만 클래식은 그렇지 않기에 클래식이 된다. [Train of Thought]는 신선했고, 깊었으며, 사운드와 가사 모두 압도적으로 아름다웠다. 그 결과,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언더그라운드 무브먼트 중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참고로 이 앨범은 도서 <힙합, 우리 시대의 클래식>이 선정한 명반 50장 중 한 장이다. 지은이의 이름은 차마 밝히지 못하겠다).

▲리플렉션 이터널 [Revolutions Per Minute]. 국내에는 라이센스되지 않아 수입반만 발매됐다. ⓒ워너뮤직 제공
즉 [Revolutions Per Minute]은 태생부터가 불운하다. 이것은 마치 축구선수가 되었는데 알고 보니 아버지가 지단인 격이다.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모두가 아버지와 자신을 비교한다. 아버지를 뛰어넘는 선수가 될 확률도 극히 낮다.

자, 이렇게 된 이상 그냥 빨리 결론을 내고 글을 끝맺도록 하자. 요즘 더위에 지쳐 글도 잘 안 나오는데 마침 잘 됐다. 결론: [Revolutions Per Minute]은 [Train of Thought]를 뛰어넘지 못한다. 클래식의 벽은 역시 일본 축구 대표 팀의 텐백 만큼이나 견고했다. 아쉽다. 끝.

…은 당연히 훼이크지만, 사실 결론은 진짜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 [Revolutions Per Minute]의 감흥은 [Train of Thought]에 미치지 못한다. [Train of Thought]이 마라도나, 지단, 호나우도 급이라면 [Revolutions Per Minute]은 제라드, 포를란, 박지성(!) 급이다(등급 분류에 관한 태클 사양). 그러나 이와 같은 운명(?)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우리는 [Revolutions Per Minute]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몇몇 가치에 대해 한번쯤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그에 대한 짤막한 기록이다.

앨범의 모든 곡을 프로듀싱한 하이텍은 [Train of Thought]를 발표한 이래로 지난 10년 동안 꾸준한 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모든 행보가 전진은 아니었다. 실제로 닥터 드레(Dr. Dre)의 레이블 애프터매스(Aftermath)에서 프로듀서로 일하던 시절 그의 비트는 다소 어중간한 모양새를 띠었다. 이분법으로 말하면 언더그라운드(기존 자기 스타일)와 메인스트림 사이에서 약간은 애매해진 느낌이었다. 그의 솔로 앨범들도 찬반 논란을 낳았다. 스타일이 정립되지 않아 들쭉날쭉 산만했다. [Hi-Teknology 3]가 [Hi-Teknology 2]보다 완성도가 떨어졌던 점도 아쉬웠다.

[Revolutions Per Minute]이 이런 문제들을 완전히 해소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In The Red>나 <So Good>같은 곡은 왜 이런 스타일을 포기 못하고 있는지 여전히 의문이고, 라디오 플레이를 위한 <Midnight Hour>와 <Get Loose>는 그 완성도를 떠나 앨범의 통일성을 저해하는 요소에 가깝다. 그러나 그럼에도 본작의 사운드는 대체로 예전보다 정돈되었다는 느낌을 준다. 앨범을 듣고 있자면 하이텍이 추구한 '리플렉션 이터널 2기' 사운드는 '리플렉션 이터널 1기'의 그것에서 따스하고 촉촉한 기운을 약간 빼내고 대신 건조함과 투박함을 입힌 형태로 드러난다. 뿌리는 유지하되 가지들을 군데군데 새로 다듬은 것이다. 호불호와 완성도를 떠나 스타일 측면에서 이는 긍정적인 징후다.

특유의 (편집증적인) 섬세함도 여전하다. 누군가 하이텍의 비트를 3만 원짜리 컴퓨터 스피커로 대충 듣고 '심심하다'고 말한다면, 결국 스스로 얼간이 인증을 하는 셈이다. 하이텍은 디제이 프리미어(DJ Premier)처럼 듣는 이의 귀에 단번에 꽂히는 선 굵은 루프로 승부하는 프로듀서가 아니다. 고요한 밤에 방에 누워 불을 끄고 이어폰으로 이 앨범을 한번 들어보자. 마치 듣는 이와 숨바꼭질하듯 여기저기 숨겨놓은 하이텍의 설레는 소리들에 감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운드 배열과 공간 활용 면에서 그는 아마 동시대 최고의 프로듀서 중 한 명이 아닐까?

한편 탈립 콸리의 랩은 여전한 클래스를 보여준다. '컨디션은 가변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Form is temporary, class is permanent)'는 말은 운동선수에게만 쓰이는 것이 아니다. 아마 콸리는 죽을 때까지 이렇게 랩을 잘할 것이다.

그는 본작을 통해 다양한 주제를 선보인다. 먼저 또 다른 톱 클래스 래퍼 번 비(Bun B)와 함께 미국의 여러 치부를 꼬집는 <Strangers (Paranoid)>와 나이지리아의 예를 들며 석유 산업의 폐해를 지적하는 <Ballad Of The Black Gold>에서는 지금껏 그를 규정해온 정치사회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My Life (Outro)>에서는 자신을 향한 세간의 과소평가에 대한 진솔한 속내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흥미로운 순간은 <In This World>에 있다. 콸리는 제이지(Jay-Z)가 [Black Album](2003)에서 자신을 칭찬했던 구절('If skills sold truth be told, I'd probably be
Lyrically, Talib Kweli')을 7년 간 잊지 않고(?) 있다가 이번 앨범에 기어코 써먹는데 성공한다. 샘플링된 제이지의 랩이 지나간 후 '나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래퍼에게 존경을 얻은 사람이야. 내 성공의 요인은 말이야..'로 이어지는 그의 가사는 차라리 '귀엽다'는 표현이 가장 어울린다.

다시 말하지만 이 앨범은 [Train of Thought]에 미치지 못한다. 음악적 완성도에서도 그렇고 역사적 가치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그것이 이 앨범의 존재 의의까지 위협하지는 않는다. 즉 전작을 뛰어넘지 못했다고 해서 이 앨범이 좋은 앨범이라는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이점이 중요하다. 이놈의 신자유주의 세상에서는 2등과 패자도 각자의 고유한 미덕과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Revolutions Per Minute]은 몇 가지 긍정적인 발견을 담고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필자의 블로그에서 더 많은 음악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http://kbhma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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