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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노점상, 그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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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노점상, 그들은 누구인가?

[월드컵] '우천·완패·새벽' 1라운드…16강, 8강을 기다리는 이들

"지금 더운 거 다 아는데…. 잠깐 서 봐요. 아이스크림이 1000원이예요. 1000원. 이거 먹으면 남자친구가 생겨, 진짜예요. "

넉살 좋은 구수한 입담이 지나가는 시민들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붉은 티셔츠를 입은 오진우(20) 씨는 연신 목에 핏대를 올려가며 하나라도 더 팔고자 애를 썼다. 하지만 판매는 영 시원찮았다. 1000원이나 하는 가격이 부담스러운 눈치였다.

외국인이 지나가자 되지도 않는 영어도 튀어나왔다. 외국인들은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그냥 지나칠 뿐이었다. 그는 "장사를 시작한지 30분이 지났지만 아직 개시도 못했다"며 "이러다가 오늘 안에 아이스크림을 다 못 팔아 적자가 날까 걱정이다"라고 울상을 지었다. 그의 옆에는 여러 개의 아이스박스가 놓여 있었다.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오 씨는 어렵게 살고 있는 친구를 돕기 위해 장사에 나섰다고 한다. 오 씨는 "월드컵 경기를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래도 아이스크림을 다 팔기 전에는 어려울 거 같다"며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기에 금방 팔릴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거 같다"고 쓴 웃음을 지었다.

결국 오진우 씨는 장사를 시작한 지 1시간도 못 돼 결국 단가를 낮췄다. 1000원에서 500원으로 가격을 절반으로 내린 것. 아이스크림은 다른 노점상인들이 파는 맥주, 생수, 얼음 커피 등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었다.

오 씨는 "그래도 다른 거에 비해 아이스크림은 마진은 많이 남는다"며 굳이 이 장사를 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부랴부랴 박스 종이에 적힌 '1개 1000원'을 '1개 500원'으로 고쳐 썼다.

17일, 한국 대 아르헨티나 전이 시작되기 전인 오후 6시였지만 이미 서울광장에는 2만여 명의 붉은 악마들이 모여들었다. 경기가 끝날 즈음인 밤 10시께에는 9만 명의 시민이 서울광장을 찾았다. 때가 때인지라 월드컵 특수를 노리는 노점상들도 '물 만난 물고기'처럼 광장 인근에서 좌판을 깔고 시민들을 기다렸다.

▲ 서울광장에서 응원을 하고 있는 시민들. ⓒ뉴시스

"월드컵은 나에게 조금이나마 숨통을 트이게 해 준다"

"이거 상한 거 아니죠?"

지나가는 시민이 샌드위치를 팔고 있는 박용우(가명·33) 씨에게 의심스런 눈빛으로 질문을 던졌다. 박 씨는 "낮에 손수 만든 샌드위치"라며 "싱싱한 것은 물론이고 맛도 일품"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시민은 영 미덥지 못한지 그냥 지나쳤다.

박용우 씨는 "아직 저녁 시간이 아니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샌드위치를 사지 않는다"며 "정성껏 준비했는데 외면을 받으니 마음이 참 그렇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업친데 덮친 격이었다. 장사도 안 되는 마당에 서울시 노점단속반은 지속적으로 박 씨에게 다른 곳으로 가서 장사를 할 것을 종용했다. 이미 서울광장에서 좌판을 깔았다가 밀려난 박 씨였다. 서울시에서는 노점단속반 100여 명을 이날 오전 9시부터 배치, 노점단속을 실시했다.

결국 국가인권위 쪽 인도에 자리를 깔았지만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곳인지라 장사가 영 시원찮을 수 밖에 없었다. 박용우 씨는 "장사를 시작한 지 1시간이나 지났는데 아직 개시도 못했다"며 "이러다가 친구와 샌드위치를 다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발을 동동 굴렀다.

박용우 씨는 "샌드위치는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다 팔릴 줄 알았는데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며 "장소를 옮겨 스크린이 잘 보이는 곳에서 장사를 해야 할 듯 하다"고 머리를 긁적였다.

그나마 저녁 시간대가 다가오자 지나가는 시민들이 하나 둘씩 샌드위치를 사기 시작했다. 박용우 씨는 음식점 매장 매니저로 일을 하고 있었다. 이날은 아예 음식점 문을 닫고 서울광장으로 왔다고 했다. 박용우 씨는 "어차피 월드컵을 하는 날에는 술집이나 장사가 잘 되지 음식점은 아예 장사가 안 된다"고 설명했다.

박용우 씨는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해서 밤 10시에 퇴근을 한다"며 "쉬는 날은 평일 하루 밖에 없다"고 자신의 일을 설명했다. 박 씨는 "그렇게 쳇바퀴 도는 인생을 몇 년간 살아왔다"며 "그런 나에게 월드컵은 조금이나마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 서울광장 근처에서 응원도구를 팔고 있는 시민들. ⓒ프레시안(허환주)

"사는 게 살얼음 판, 모두가 그렇게 산다고 생각하며 버틴다"

박영미(가명·24) 씨도 마찬가지였다. 막대 풍선 1000원, 붉은 악마 뿔 2000원, 응원 스티커 1500원. 없는 거 빼고 있는 건 다 팔고 있었다. 남편과 같이 나온 박 씨는 "아직 개시도 하지 못했다"며 "사람들이 구경은 많이 하는데 선뜻 사질 않는다"고 한 숨을 내쉬었다.

지나가는 시민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남편 이정수(가명·28) 씨는 연신 기타를 치면서 '오 필승 코리아'를 불렀다. 소형 앰프가 그의 발아래 놓여 있었다. 박영미 씨는 막대 풍선을 연신 치면서 "싼 가격에 모시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진률은 대략 2.5배 정도. "장사가 잘 되냐"는 기자의 질문에 박 씨는 "잘 됐으면 진작 다 팔고 집에 가서 텔레비전 보며 응원을 했을 것"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지나가는 시민들은 많았지만 정작 박 씨의 응원용품을 사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지난 12일 그리스와 한판 붙을 때도 박 씨는 서울광장을 찾았다. 그때도 온갖 응원용품을 가져갔지만 결국 아무것도 못 팔고 비옷만 팔았다. 그나마도 경쟁 상대들이 너무 많아 잘 팔리지도 않았다. 집에 돌아가 계산을 해보니 겨우 본전치기를 했었다.

박 씨의 본래 직업은 인터넷 홈쇼핑 사이트 운영자. 남편과 함께 꽃을 포장해 배달하는 일을 하고 있다. 남편은 뷔페 사업을 하다가 실패했다. 사이트를 연 지 3개월도 되지 않아 아직은 주문이 거의 없다. 월드컵 특수를 노리고 거리로 나온 이유였다.

박 씨에겐 3살 된 아이가 있다. 이날은 거리로 나온지라 아이를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왔다. 박영미 씨는 "하루하루 사는 게 살얼음판"이라며 "하지만 누구나가 어렵다고 생각하며 버티고 있다"고 웃음을 보였다.

사실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만 해도 '야광 뿔' 등 응원도구가 '대박'을 터뜨리며 목돈을 쥐었다는 성공담이 여기저기에서 들려 왔었다. 이번 월드컵에도 많은 젊은이들이 대박을 꿈꾸며 거리에 나섰지만 대체적으로 벌이가 신통치 않은 풍경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리스 전에는 비가 왔고, 아르헨티나 전은 대패했으며, 나이지리아 전은 새벽 3시 심야 시간대다. 누구 못지 않게 16강, 8강 진출을 기원할 듯 하다. 월드컵 바람을 타고 서울광장에는 붉은 악마만이 아닌 노점상들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 역시도 붉은 악마 중 한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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