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계 모임인 '여의포럼' 소속 의원 10여명이 15일 만났단다. 바로 그날 박근혜 전 대표가 전당대회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는데도 이들은 출마를 설득하자고 입을 모았단다. 한 발 더 나아가 연판장을 돌리자는 의견까지 나왔단다.
왜일까? 박근혜 전 대표의 한 마디 한 마디를 행동강령 삼던 친박 의원들이 왜 '항명'에 가까운 모습을 연출하는 걸까?
화합을 내걸고 위기 탈출을 호소하는 목소리들이 많지만 귀를 트이게 하는 말은 따로 있다. 한 친박 의원이 말했단다. "박 전 대표가 이번에 당권을 잡지 않으면 2012년 총선에서 친박계 인사들이 대거 공천에서 탈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단다.
솔직한 이 말 덕분에 공연히 두뇌 노동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말 그대로다. 다급한 것이다. 당과 정권의 위기상황이 아니라 자신들의 금배지 위기상황이 의식되는 것이다. 그래서 박근혜 전 대표를 탈출구 삼으려고 하는 것이다. '대권 행보 지원'을 조건으로 정치 어음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헌데 어쩌랴. 친박 의원들이 금배지가 염려되는 만큼 박근혜 전 대표는 '용꿈'이 염려된다. 그게 '일장춘몽'으로 끝날까봐 몸을 사린다.
▲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2008년 1월 회동 장면 ⓒ청와대 공동사진단 |
여실히 확인했다.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반MB 정서가 얼마나 넓고 깊은지를 똑똑히 목도했다.
쉬 가실 정서가 아니다. 역대 대통령의 지지도 사이클을 봐도 그렇고 이명박 대통령 지지도가 30%대로 떨어졌다는 최근의 여론조사결과를 봐도 그렇다. 야당과 국민의 국정기조 변화 요구에 아랑곳하지 않는 이명박 대통령의 '초지일관'을 추가하면 더욱 그렇다.
방법은 달리 없다. 박근혜 전 대표가 반MB 물결 속에서 '꿈은 이루어진다'고 되뇌이려면 거리를 둬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표를 '국정의 동반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과는 무관하게 박근혜 전 대표 스스로 '국정의 동반자'를 사양해야 한다.
'정동영의 경우'가 웅변한다. 대선은 총선과는 달리 인물 선거이기 때문에 '전임'의 영향을 덜 받는다는 정설을 뒤엎은 '정동영의 경우'가 시사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차별화 전략에 실패한 후 반노 정서의 직격탄을 맞았던 '정동영의 경우'가 증명한다. 가장 무난한 수는 피하는 것이다.
물론 다른 방법이 있긴 하다. 당 대표직을 거머쥔 뒤 제 갈 길을 가는 것이다. 당청의 수평적 관계를 몸소 구축하면서 할 말 다 하는 여당 대표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어쩌면 도움이 될지 모른다. 대구 달성군수 선거에서 뜻하지 상처를 입은 점을 고려할 때, 그리고 최근들어 자신의 지지율이 하향추세인 점을 감안할 때 이 방법이 좀 더 확실할지 모른다. 이명박 대통령과 각을 세울 때마다 지지율이 올랐던 전례에 비춰볼 때 그렇다.
하지만 위험하다.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정을 맞을지 모른다. 너무 일찍 고개를 들면 아직까지는 싱싱한 권력의 힘이 쪼아댈지 모른다. 게다가 아직까지 대오를 유지하는 친이계가 '뒤에서 총질을 해댈지' 모른다. 대통령이 위에서 쪼고 친이계가 밑에서 치받는 바람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면 '물 대표'란 불명예만 얻는다. 대선후보 경선을 위해 체력을 비축해야 할 때에 방전 직전까지 내몰리는 것이다.
그래도 돌파할 수 있다. 그런 모습을 '억압'과 '저항'의 이미지로 묘사하면 '영광의 상처'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어찌 할 도리가 없다.
할 말이 없다. 세종시 수정안이 폐기되면 딱히 청와대를 향해 낼 다른 목소리가 없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치적 기반이 겹치고 이념의 뿌리가 같기에 크게 다른 게 없다. 그래서 제 할 말 다 하는 '비MB 대표' 이미지를 구축하기 힘들다. 반MB 표심을 넘는 게 아니라 그 표심에 휩쓸릴 공산이 커지는 것이다. 이 점을 의식해 작위적으로 각을 세우기도 어렵다. 그러면 보수 표심을 잃는다.
아무리 둘러봐도 길이 없다. 그래서 가만히 있는 것이다. 길이 없을 때는 걷지 않는 게 상책이니까.
어떤 친박 의원이 박근혜 전 대표에게 "더 이상 '침묵의 동굴'에 갇혀 있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지만 표현이 틀렸다. 박근혜 전 대표가 기거하는 '동굴'은 '침묵의 동굴'이 아니라 '은신의 동굴'이다. 때를 기다리면서 은거하는 동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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