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권에서 연출되는 장면을 보면 헛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여의도 정치를 알아도 너무 잘 안다. 그래서 능수능란하게 요리한다. 반증이 한나라당의 최근 풍경이다.
어림잡아도 십수 명이다. 7월 열리는 전당대회에 당 대표로 출마하려는 의원들이 자천타천 십수 명에 달한다. 여기에 입각 대상자로 거론되는 의원들까지 합하면 숫자는 더 늘어난다. 대다수가 4말5초(40대 말에서 50대초) 의원이고 상당수가 쇄신을 주장하던 의원이다. 한순간에 쇄신 요구가 출마 저울질로, 부릅뜬 눈이 곁눈질로 바뀐 것이다.
모두가 안다. 한순간을 가른 건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시대를 주도하고 젊고 활력있는 정당으로 변모"할 것을 주문하자마자 한나라당 풍경이 이처럼 뒤바뀐 것이다.
여기서 추론할 수 있다. 한 마디 말만으로 살풍경을 진풍경으로 뒤바꿀 만큼 이명박 대통령의 힘은 여전히 세다. 힘이 셀뿐만 아니라 힘을 이용하는 방법도 안다. 도전을 충성으로 뒤바꿀 정도로 어느 타이밍에 어떤 메시지를 던져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다.
덕분에 이명박 대통령은 한숨 돌렸다. 쇄신 요구를 잦아들게 하고 청와대를 향한 공격도 멈추게 만들었다. 시간을 번 것이다. 시간을 벌었을 뿐만 아니라 여지도 벌었다. 버틸 여지다.
청와대 비서진 개편을 전망하는 언론 보도에 따르면 돌고돌아 원점이다. 한나라당 쇄신파가 인적 개편 대상으로 삼았던 청와대 수석들이 거꾸로 중용될 가능성이 타진된다. 그들 또한 4말5초라는 이유로, 청와대 또한 "젊고 활력있는" 곳으로 변모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재신임, 나아가 중용 가능성이 점쳐진다. 그런데도 말이 없다. 특정 수석의 교체를 주장하던 쇄신파 의원 그 누구도 '안 된다'고 사전에 차단하지 않는다.
너무 인색한 평가일까? 이명박 대통령의 충정을 이해하지 못한 채 공학적 차원에서만 바라보는 걸까? 이명박 대통령이 정말 세대교체를 통해 세력교체, 나아가 색깔교체를 이루려는 충정을 내보였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어림없다. 앞서 살핀 여권 풍경이 증명한다. 설령 세대교체를 이뤄도 세력교체와 색깔교체는 이뤄지지 않는다. 한나라당의 4말5초는 당 지도부를 장악해 쇄신을 '요구'하는 차원에서 쇄신을 '집행'하는 차원으로 나아가겠다고 말하지만 '뻥'이다. 그렇게 되기 위한 필요조건, 즉 당청의 수평적 관계가 성립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명박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당이 냉온탕을 오가지 않는가. 4말5초가 주도해도 한나라당은 "젊고 활력있는" 정당으로 변모하기 어렵다.
하나 더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버리지 않았다. 어차피 못 먹는 감인 세종시 하나만을 던졌을 뿐 나머지는 전혀 버리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처럼 국정기조를 고수하는 한 세력교체는 무의미하고 색깔교체는 무망하다. 어차피 여당은 대통령의 국정 성과에 의해 채색되고 평가받는다.
이렇게 보면 전당대회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박근혜 전 대표가 차라리 현실적이다.
당은 환골탈태하지 않는다고 전제하고 보면 그렇다. 어차피 환골탈태하지 못할 당, 어쩔 수 없이 이명박 대통령과 운명을 같이 해야 하는 당이라면 굳이 발을 담글 필요가 없다. 지방선거에서 여실히 확인된 반MB정서에 자신의 정치적 명운을 맡길 이유가 없다. 거꾸로 한 발짝, 아니 두 발짝 떨어져 MB색깔이 스며드는 것을 경계하면서 '이후'를 모색하는 게 현명하다. 그렇게 조심하면서 반MB정서를 '극MB' 논리로 넘는 게 유리하다.
하나 추가하자. 똑같은 근거에서 파생되는 분석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세대교체론이 박근혜 전 대표를 거세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일각의 해석은 타당하지 않다. 이런 해석이 세대교체를 통한 당의 환골탈태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가정상황을 단서로 달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 한나라당 초선의원들이 지난 6일 모임을 갖고 쇄신 논의를 하고 있다. ⓒ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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