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첫 상대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 브라질. 이변이 일어날 가능성도 거론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북한 대표팀은 선전을 자신하고 있다.
▲혼다 케이스케. 일본인들이 그토록 대표팀 승선을 바라던 이유를 그는 카메룬전에서 골로 입증했다. ⓒ뉴시스 |
아시아 축구 무시하더니…
남아공 월드컵에 출전한 아시아 국가는 한국과 일본, 북한, 그리고 호주 등 총 4개국이다. 그러나 호주가 이번 월드컵부터 오세아니아축구연맹(OFC)에서 아시아축구연맹(AFC)으로 옮겼음을 감안하면 세계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아시아' 축구를 보여주는 팀은 극동의 세 나라가 전부다.
한국과 일본은 쾌조의 출발을 보였다. 특히 두 팀의 맞상대인 그리스와 카메룬이 아시아 축구를 얕봤기에 쾌감은 더욱 컸다.
그리스는 한국전을 앞두고 전통적으로 쓰던 전략인 스리백을 버리고 포백 시스템을 들고 나왔다. 한국을 한 수 아래로 얕잡아 보고 보다 공격적인 전술을 썼으나, 익숙치 않은 진형은 결국 실점으로 이어졌다. 세트피스 상황에서 그리스 수비는 이정수를 놓쳤고, 수비진이 공을 돌리던 상황에서도 박지성에게 공을 빼앗겼다. 그리스는 경기 내내 한국에 완전히 압도당하며 제대로 된 공격찬스조차 만들어내지 못했다.
14일 경기를 치른 카메룬도 사실상 일본의 압박 전술에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았음이 확인됐다. 오카다 일본대표팀 감독은 경기 전 필승전략을 공개하며 "파리, 모기떼처럼 달라 붙겠다"고 공언했다. 혼다를 원톱으로 내세우고 사실상 미드필드에 5명의 '수비수'를 놓는 극단적인 수비형 압박 축구였다. 장기인 미드필드 플레이를 강화하면서도 수비에 역점을 두는 방법이었다. 이는 일본이 짐바브웨와의 평가전에서도 사용했던 전술이었다. 일본은 역습 상황에서도 공격형 미드필더 마쓰이 정도만이 혼다를 보조할 뿐, 미드필드와 수비 간격을 벌리지 않고 강한 압박을 지속했다. 일본이 한국보다 많이 뛴 경기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카메룬은 미드필드에서부터 압박해 오는 일본의 수비에 당황하며 경기 주도권을 완전히 뺏겼다. 이는 경기 내내 미드필드를 거치지 않고 수비라인에서 최전방으로 찔러주는 롱패스에 의존하는 단조로운 형식의 공격으로 이어졌다.
카메룬이 자랑하던 세계 최정상급 스트라이커 사무엘 에투는 경기 내내 2선에서 움직였으며, 최전방 공격수들은 일본의 견고한 수비대형 안에서 자리를 제대로 잡기도 어려웠다. 수비와 공격이 일본의 미드필드진에 완전히 분리돼 따로 움직이는 모습이 경기 끝까지 이어졌다. 역시 일본, 나아가 아시아 축구를 얕잡아본 안이함이 패배로 이어진 셈이다.
▲경기를 앞두고 훈련에 임하는 북한의 정대세와 브라질의 카카. 북한은 극단적 수비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다. 브라질은 자국민들의 원성을 살 정도로 수비력을 강화한 팀이다. 객관적으로는 북한의 창이 브라질의 방패를 뚫기도 쉽지 않다. 이번 월드컵의 화두는 '수비'다. ⓒ연합 |
브라질은 어떨까
아시아 축구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 건 브라질도 마찬가지다. 둥가 브라질 대표팀 감독은 일단 조별리그 1차전 상대인 북한에 대해 "아시아 축구가 지난 몇 년 간 성장했다는 건 사실"이라며 "우리는 북한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 북한에 대해 특별히 연구한 모습은 아니었다. '북한과 어떤 경기를 치를 것이냐'는 질문에 둥가 감독은 "북한은 빠르고 외국에서 뛰는 선수가 몇 있다"고 답하는데 그쳤다. 북한에 대한 언급은 이 정도가 다였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셈이다. 실제 북한이 워낙 베일에 가려진 팀이라 아시아팀이 아닌 다음에야 북한의 경기력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객관적인 전력으로만 보면 피파랭킹 105위인 북한이 1위 브라질을 이길 가능성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큰 점수 차로 패하지 않으면 다행인 게 사실이다. 더군다나 브라질은 이미 최근 가진 아시아팀과의 경기에서도 월등한 기량을 과시했다. 지난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브라질은 중국을 4대 0으로 대파했고,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일본을 4대 1로 꺾었다.
그러나 북한이 아시아 예선에서 보여준 경기력을 보면 브라질을 상대로도 분명 한두 번의 찬스는 만들 능력을 가졌다. 브라질이 세계 최고 수준의 수비력을 과시하며 이번 월드컵을 맞았지만, 예상 못한 역습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김정훈 북한 대표팀 감독은 요하네스버그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기술은 어느 팀에도 뒤지지 않는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브라질 현지 언론도 경계심을 키우는 모습이다. 스포츠 전문채널 '스포르TV'는 14일(현지시간) 아시아 팀들의 전력이 예상을 넘는다며 북한전에서 브라질이 예상 외로 고전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뉴스포털 '테하'도 북한전을 월드컵 통산 6회 우승으로 가는 중요한 고비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과 일본의 선전이 세계가 아시아 축구를 다시 보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현재까지의 결과만 놓고 보면, 이번 월드컵은 수비와 압박이 역대 어느 대회보다 중요하게 부각되는 대회로 꼽을 만하다. 그리고 이는 미드필드진의 활발한 공수 가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한국, 미드필드 패싱 게임을 바탕으로 경기 주도권을 잡아나가는 일본으로 대표되는 아시아 축구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북한과 브라질전은 아시아 축구가 세계 최고 수준의 팀들을 맞아서도 얼마나 뛰어난 활약을 보일 수 있느냐를 보여줄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한편 북한의 브라질과의 경기는 한국과 일본도 눈여겨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각 조 최강팀인 아르헨티나, 네덜란드와의 경기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최강팀과의 경기에서 보이는 모습을 통한 학습이 필요하다. 아르헨티나와 네덜란드 역시 한국과 일본, 즉 아시아 축구에 대해 코멘트 수준 이상의 절실한 대비책을 세워놨을 가능성은 낮다. 이들 팀은 조별예선 이후를 내다보며 컨디션을 조절하는 전력을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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