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연설을 통해 분명히 밝혔다.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지금도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국정 효율과 국가 경쟁력과 통일 후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4대강도 그렇다. "생명 살리기 사업"이라고 했다. "물과 환경을 살리는 사업"이라고도 했다.
이처럼 가치는 같다. 이명박 대통령의 뇌리에 세종시 수정안과 4대강 사업은 같은 반열에 있는 중요사업이다. 헌데 처리 방향은 다르다.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서는 국회 보고 알아서 하라고 했다. 국회가 부결하면 포기하겠다는 뜻이다. 반면에 4대강 사업에 대해서는 더 많이 소통하고 설득하겠다고 했다. 더 많이 토론하고 더 많은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했지만 설득을 전제로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둘러가기는 해도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묻는 것이다. 포기할 거면 함께 포기하고 고수할 거면 함께 고수해야 하는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하나는 버리고 하나는 챙겼다.
연설문을 읽고 또 읽어도 논리적 정합성을 발견할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세종시 수정안의 사실상 포기 이유에 대해 "국론 분열이 지속되고, 지역적·정치적 균열이 심화되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이건 이유가 되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번 선거를 통해 표출된 민심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국민들이 원하는 변화의 목소리를 더 귀담아 듣도록 하겠다"고 했는데 이건 동기가 되지 않는다. 이게 이유이고, 이게 동기라면 4대강 사업도 응당 포기해야 할테니까.
그래서 다른 이유를 찾는다. 정치적 이유다.
세종시 수정안은 관철할 방법이 없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야당뿐만 아니라 친박 의원들까지 반대하기에 국회에서 처리할 여지가 없다. 고수하고 싶어도 고수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4대강 사업은 다르다. 세종시 '전선'이 입법에 맞춰진 반면 4대강 사업은 '집행'에 맞춰져 있다. 국회가 브레이크를 걸 여지가 별로 없다. 게다가 친박 의원들이 대놓고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표면적인 의견은 속도 조절이지 폐기가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연설엔 이 같은 정치 형세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세종시 수정안은 어차피 '못 먹는 감', 그래서 과감히 버린다. 반면에 4대강 사업은 '종착역 서울', 그래서 모로 가도 가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보면 분명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연설은 '대국민' 연설이 아니라 '대여용' 연설이다. 여권 내부의 형세를 반영한 연설이고, 여권 내부의 관리를 위한 연설이다. 여권 내부의 분란의 소지를 최소화하고 여권 내부의 단합의 여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연설이다.
"청와대와 내각의 시스템을 더 효율적으로 개편하는 한편 그에 맞는 진용도 갖추겠다"는 언급이 방증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하나도 담지 않은 채 '기다려 보라'는 메시지만 툭 던진 연설문의 한 구절이 증명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연설이 '대여용'이란 사실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민 입장에서 들으면 감질 난다. 들으나마나 한 소리다. 반면에 여권, 특히 인적 쇄신을 요구해온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의 입장에서 들으면 솔깃하다. 일단은 자신들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으로 이해할 만한 소리다.
뒤집어서 보면 이렇다. 이명박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국민에겐 아무 감흥을 못 주지만 한나라당 소장파에겐 영향을 준다. 그들의 목소리를 잠재우고 그들의 행동반경을 좁히는 효과를 거둔다.
이명박 대통령은 시간을 벌고자 하는 것이다. 여권을 정비할 시간, 국정을 다잡을 시간을 벌기 위해 여권 내부의 분란을 우선 정리하려는 것이다. 그 시점이 7.28재보선 이후가 될 것이기에, 그 시점까지 '묵언'하며 버티기 힘들기에 '개봉박두형' 연설, '암중모색형' 연설로 한 숨 돌리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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