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와 진보 진영이 광장을 보는 시각의 차이가 11일 새벽 문화방송(MBC) <100분토론>에서 극명하게 갈렸다. 토론 참가자들은 특히 촛불집회를 예로 들며 광장이 중우정치의 공간이냐, 새로운 정치 문화의 공간이냐를 두고 설전을 벌였다.
'다시 월드컵! '광장'을 말하다'는 주제로 진행된 이날 토론에는 진중권 문화평론가와 정희준 동아대 스포츠과학부 교수, 전원책 변호사, 탁석산 철학저술가, 장원재 축구평론가가 참석했다.
문화평론가 진 씨와 정 교수는 진보 진영으로, 전 변호사와 철학저술가 탁 씨, 축구평론가 장 씨는 보수 진영으로 자리를 구분해 앉았다. 장 씨는 뉴라이트 전국연합회원이다.
촛불집회 두고 설전
2002월드컵을 계기로 새롭게 나타난 광장문화를 두고 참가자들 모두가 거리응원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진중권 씨는 "(거리응원 때) 억눌렸던 게 '탁' 터져나왔다"며 "일종의 데모고 시위인데, 자신의 즐거움을 긍정하는 시위였다. 민족주의적 열정도 있었지만 축구를 이용해 일종의 디오니소스적 체험을 하는 경향이 강했다"고 긍정했다.
탁석산 씨는 "민주주의의 향유였다"며 "그와 더불어 국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공동체 의식을 나누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촛불집회를 두고서는 설전이 벌어졌다. 정 교수는 "최근 2~3년간 광장의 모습은 시민사회와 정부권력의 투쟁이 됐고, 재벌에게로 권력이 넘어가는 과정"이라며 "민의의 공간인 광장의 본래 모습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진중권 씨도 "정치권이 대의민주주의의 원칙을 배반해서 사람들이 광장으로 나온 것"이라며 "(촛불집회는) 탈정치화된 사람들이 나와서 오락과 유희의 정치를 만들었다. 재미와 진지함이 오가는 새로운 정치성을 정치권 어느 누구도 못 읽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 변호사는 "대의정치를 벗어나면 안 되는데, (광장에서 진행되는) 직접 민주주의는 선동정치로 넘어갈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진다"며 "광장의 가장 어두운 구석이 중우정치"라고 비판했다.
장원재 씨도 "쇠고기 반대 시위는 대선 결과에 대한 심정적인 불복 요소가 있었던 것"이라며 "한국에서는 광장정치의 비중이나 빈도가 선진사회에 비해 높다"고 주장했다.
탁석산 씨는 "촛불집회와 거리응원에 어떤 관계가 있느냐고 묻는 것은 광장의 성격을 너무 좁게 보는 것"이라며 "광장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촛불집회와 거리응원은 광장에서 나오는 다양한 것들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월드컵, 광장 다시 열까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논란이 된 '닫힌 광장' 논란에 대해 정 교수는 "권력이 광장을 통제하고 자신의 호불호에 따라 받아들이거나 내치는 행태는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장원재 씨는 "자신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면 안 된다"며 "광장에 나와서 소음공해를 일으키거나 공권력의 행사를 방해하는 것까지 집회와 결사의 자유로 허용해주지는 않는다"고 시각차를 드러냈다.
쇠고기 협상 당시 촛불집회가 이례적인 상황이었음을 반영하듯, 사회자가 대화의 주제를 월드컵으로 옮기려 해도, 토론참가자들은 촛불집회의 성격을 집중적으로 논쟁했다.
정 교수는 "서울광장이 (남아공월드컵 거리응원을 계기로) 열리면 젊은이들이 다시 의견을 개진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환경이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장원재 씨는 "촛불집회는 평화로운 집회가 아니었다"며 "세계 어느 나라도 국가 기관이 밀집한 주요 거리에서 60일 동안 집회가 허용되는 경우가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진중권 씨는 "이명박 대통령처럼 통치하는 선진국이 없어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라며 "그만큼 이명박 대통령의 이상함을 반영한 게 촛불집회"라고 되받았다.
격렬히 맞붙던 토론은 마무리 발언 과정에서 봉합됐다. 진중권 씨가 크레타를 예로 "힘이 세다고 약자를 무시하지 않고 평소에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주다가 필요할 때만 결합한다"며 "그리스를 만나면 하나가 되면 된다"고 말했다.
이에 날선 공방을 벌이던 장원재 씨가 "하필이면 (곧 맞붙을) 그리스를 예로 들었다"며 웃으면서 토론회가 마무리됐다. 어색한 봉합이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