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총리가 입장을 밝힌단다. 먼저 청와대 참모진을 쇄신하고 이어서 국정을 쇄신하라고 이명박 대통령에게 요구한단다. 어제 주례보고 후 독대를 해서 이렇게 요구하려다가 자리가 마련되지 않아 무산됐는데 다시 대통령과 독대해서라도, 그게 안 되면 '페이퍼'로라도 입장을 밝힌단다.
아주 이례적이다. 장관 제청권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총리가 대통령의 고유 인사권에 간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총리가 대통령의 국정기조를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 ⓒ뉴시스 |
주목할 게 있다. 정 총리가 '도발'을 감행하려 하기 직전에 나온 보도다. 이명박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세종시 수정안이 옳다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지만 지역 주민들과 정치권이 수용하지 않으면 무리할 수는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는 보도다. 꼭 이 보도에 기댈 필요도 없다. 지방선거 패배 후 한나라당이 이미 발을 빼고 있다. 세종시 수정이 사실상 물 건너 간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정리되면 정 총리의 거취도 함께 정리된다. 누가 등 떠밀기 전에 먼저 짐을 싸야 한다. 그래야 추레해지지 않고 일말의 명예라도 건진다.
정 총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반전을 꾀한다. 물러나는 곳을 늪이 아니라 도약대로 삼으려 한다. 이보 전진을 위해 일보 후퇴를 꾀한다.
대통령과 '맞장' 뜨면 상징효과가 극대화 된다. 국민의 반MB정서에 부응하고 한나라당 내의 쇄신 요구에 호응하는 모양새를 연출하면서 소신을 지키고 소통을 꾀하는 자신의 이미지를 연출할 수 있다.
이미 모델도 있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가 김영삼 정부 총리로 재직할 때 대통령과 '맞장'을 뜨다가 자리에서 밀려났지만 국민에게 '대쪽' 훈장을 받아 정치적 자산으로 삼았던 전례가 있다. 정 총리가 '이회창의 길'을 성공적으로 밟을 수만 있다면 전화위복, 새옹지마의 사례를 일굴 수 있다. 이회창은 '실수'를 관리하면서 '맞장'을 뜬 반면에 정 총리는 '실수'를 연발하다가 '맞장'을 뜨는 차이가 있지만, 그래서 '이회창의 길'을 온전히 밟을 수 없다는 평가가 나올 법 하지만 그래도 낫다. 이렇게라도 하는 게 무력하게 퇴장하는 것보다 백 배 낫다.
이것만이 아니다. 의외의 '횡재수'를 챙길지도 모른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혹시, 행여라도 한나라당 내의 쇄신 요구가 먹혀들면, 그 결과 국정기조가 일정하게 수정되면 정 총리는 손 안 대고 코를 푼다. 자신이 대통령과 '맞장'을 떠가며 요구했던 바와 일치하는 것이기에 '내 덕'을 은근히 강조할 수 있고,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보호막을 챙긴다. 대통령이 자신의 '고언'을 결과적으로 수용하게 되면 총리직에서 자를 명분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정 총리는 자리를 보전함과 동시에 '브랜드'를 교체할 수 있다. 세종시에 한정된 자신의 정치적 브랜드를 개혁 전반으로 확장하면서 이미지 전환을 꾀할 수 있다. 말 그대로 횡재를 하는 것이다.
정운찬 총리를 향해 노회하다고 평하는 이유가 이렇다. 정치에 닳고 닳은 노정객처럼 밑져야 본전, 잘 하면 대박인 꽃놀이패를 쥐고 흔드니 이렇게 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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