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씨는 계고장을 받은 즉시 강남구청을 찾았다. 담당자에게 계고장을 보낸 이유를 물었다. 그간 구청과 별 마찰 없이 장사를 해온 김 씨였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장사를 한 지 벌써 5년이 넘었다. 그동안 계고장이 몇 차례 붙여졌지만 그때마다 구청과 대화를 통해 잘 풀어나갔다. 하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김 씨의 주장에 따르면 구청 담당자는 "G20 행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철거를 해야 한다"고 전했다고 한다. 과거 "민원 때문에 계고장을 보낸 것이니 이해해 달라"고 말했던 거와는 180도 입장이 바뀐 셈이다.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간 김 씨가 구청과 별 마찰 없이 장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구청과 암묵적으로 합의를 했었기 때문이다. 그가 강남에서 처음 노점을 시작한 것은 2002년. 역삼역 지하철 앞에서 토스트 장사로 시작을 했다. 하지만 그것은 1년도 지나지 않아 접어야 했다. 구청에서는 역삼역 앞에 일명 '테헤란로, 걷고 싶은 거리'를 조성한다며 노점을 쫓아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시 역삼역 일대 노점상인 130여 명과 2년 가까이 구청과 싸웠다. 그 결과 지금 장소인 선릉역 부근에서 장사를 할 수 있도록 구청에서 허가를 해줬다. 그 이후 이곳에서 떡볶이 장사를 하고 있는 김 씨였다.
김재섭 씨는 "지금도 외국인들은 떡볶이를 먹으면 '원더풀(wonderful)'을 외친다"며 "하지만 구청과 서울시에서는 미관상 보기 좋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를 몰아내려 하고 있다"고 한 숨을 내쉬었다.
▲ 8일 노점상인들은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점탄압 중단을 촉구했다. ⓒ프레시안(허환주) |
"G20을 빙자한 노점 철거 정책을 중단해야"
서울시는 오는 11월 치러지는 G20 정상회의를 대비해 지난 5월, 25개 자치구의 '도로특별정비반' 기능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도로특별정비반은 25개 자치구에 88개 반, 400여 명으로 구성되며 순찰과 정비,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한다.
서울시가 '도로특별정비반'을 강화한 이유는 G20 정상회의 개최를 대비해 국내외 관광객을 위한 보행환경 개선에 역점을 두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기관장 책임 하에 특별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물론, 특별정비반 운영기준을 마련, 반기별로 운영 실태를 평가하기로 했다. 또한 평가 결과가 우수한 자치구에 대해서는 다양한 인센티브도 제공할 방침이다.
하지만 노점상인들은 '도로특별정비반'을 두고 "노점의 정비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보도파손 등의 정비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간선도로변에 위치한 노점을 철거하는 게 주목적이라는 것.
노점상인들로 구성된 노점노동연대(준)은 8일 서울 중구 서울시 별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G20을 빙자한 노점 철거 정책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서울시는 '도로특별정비반'을 강화하고 이미 서울 전역 노점상에 대한 단속을 진행하고 있다"며 "현재 단속이 진행되지 않는 지역도 7월부터 장사를 중단하라고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어느 시기보다 폭력적으로 노점 탄압하고 있다"
이들은 "서울시의 노점관리대책은 겉으로는 양성화를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상 도로변의 노점을 싹쓸이하려는 정책으로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어느 시기보다 폭력적으로 노점에 대한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며 "오세훈 시장은 G20을 무기로 '디자인 서울'을 강행하며 숙원 과제인 노점 싹쓸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재섭 씨는 "살아갈 수 있는 수단을 빼앗는다면 결국 죽으라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며 "있는 사람들은 놔두며 없는 이들만 탄압하는 서울시가 원망스럽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런데 구청 측의 주장은 정반대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프레시안>과의 전화인터뷰에서 "G20과 관련해 단속을 진행한 바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노점에 계고장을 붙인 이유를 두고 "운영이 끝난 뒤에도 길거리에 노점을 두고 가는 것은 문제이기 때문에 그것을 치워줄 것을 요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노점 철거와 관련해 노점상 측과 면담을 한 적도 없고 G20 때문에 노점을 철거해야 한다는 말도 한 적 없다"며 "노점상들은 계속해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서울시나 구청에서는 노점상 철거 관련해 아무런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게 없다"면서 노점상 측의 주장을 모두 부정했다.
국제 행사 때마다 노점상 갈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점상들의 불안감은 가시지 않는다. 지난 2000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아셈(ASEM)' 회의를 앞두고서도 대대적인 노점상 철거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당시 단속은 삼성동 아셈회의장 주변인 강남·서초구 일대는 물론이고 대표단의 숙소 및 방문지인 종로구, 중구, 송파구, 용산구에다 이동통로인 강서구, 양천구, 성동구 등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2002년 월드컵 때도 서울시가 대대적인 노점상 단속에 나서는 등 서울에서 국제 행사만 개최되면 노점상 단속이 사회 쟁점으로 떠올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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