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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장희빈의 아들, 게 맛보다 죽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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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장희빈의 아들, 게 맛보다 죽었다고?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게 독살 사건

드라마 <동이>의 숙빈 최 씨의 아들인 영조는 과연 그의 형, 즉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을 독살했을까? 이 얘기를 할 때는 게장과 생감을 빼놓을 수 없다. 일단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역사의 한 토막을 살펴보자.

영조 31년(1755년) 신치운은 이렇게 자백한다. "신은 영조 즉위년인 갑진년(1724년)부터 게장을 먹지 않았으니, 이야말로 신의 역심입니다." 이에 영조는 손으로 그의 살을 짓이길 정도로 분통을 터뜨렸다고 한다. 영조가 왕으로 즉위한 지 한 세대가 지나도록 형을 독살했다는 의혹에 시달렸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결국 영조는 같은 해 10월 9일 이렇게 해명한다.

"경종에게 게장을 보낸 것은 내가 아니라, 어주(御廚)에서 공진한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하인들이 고의로 사실을 숨기고 바꾸어 조작했다."

경종은 생감에 게장을 먹은 지 5일 만에 죽었다. 그렇다면, 왜 게장이 문제인가? <본초강목>은 게장과 생감을 상극이라고 기록한다. '감나무' 편을 보면 다음과 같은 실제 경험까지 기록한다.

"감과 게를 함께 먹으면 사람이 배가 아프고, 설사를 한다. 왜냐 하면, 감과 게는 모두 찬 음식이기 때문이다."

왕구의 <백일선방>에도 이런 기록이 있다.

"혹자가 게를 먹고 홍시를 먹었는데 밤이 되자 크게 토했다. 결국 토혈까지 하게 되었으며 인사불성이 되었다. 목향으로 겨우 치료할 수 있었다."

게의 성질이 차다는 사실은, 이것을 옻의 독을 해독할 때 쓰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옻은 가을에 줄기가 빨간 데서 알 수 있듯이 더운 성질을 갖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속이 찬 사람이 옻닭을 고아 먹으면 설사를 멈추는 데서도 그 더운 성질을 알 수 있다. 옻닭이 정력에 좋다며 보양식으로 찾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옻이 맞지 않는 이들은 열이 솟구쳐 피부에 두드러기가 난다. 이럴 때, 게장을 바르면 감쪽같이 사라진다. 겉은 딱딱하고 속은 부드러운 게는 뱃속 부분이 달(月)의 크기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런 사실에 근거해 차가운 성질을 가지는 것으로 보았다. 이런 게의 차가운 성질이 옻의 더운 성질을 누그러뜨리는 데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 드라마 <동이>에서 라이벌로 나오는 장희빈(이소연)과 동이(한효주). 훗날 희빈 정 싸의 아들인 경종이 갑자기 죽자 숙빈 최 씨(동이)의 아들인 영조가 왕위를 잇는다. ⓒMBC

그렇다면, 이런 게와 감을 같이 먹는 것이 정말로 위험할까? 실제로 게장에 감을 먹는 일이 평범한 사람이 위험에 빠뜨릴 만큼 위험하지 않다. 다만, 평소에 지병이 있거나 특히 소화기 계통이 약한 사람에게는 영향을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경종이 바로 그랬을지 모른다.

경종은 엄청난 스트레스의 희생자다. 열네 살 무렵에 생모인 희빈 장 씨가 사약을 받는 모습을 목격했다. 이후 벌어진 정치 상황은 보통의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정신적 충격을 주어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경종4년(1724년) 8월 2일의 기록을 보면 이런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동궁에 있을 때부터 걱정과 두려움이 쌓여서 드디어 형용하기 어려운 병이 생겼다. 해가 갈수록 더욱 고질이 되어 화열이 위로 오르면서 때때로 혼미하다."

외부로 열이 흘러나오면 내부는 차가워진다. 몸이 덥고 땀이 나면 오히려 배탈이 난다. 여름에 찬 음식보다 삼계탕, 개장국을 먹는 이유도 더위가 배를 차게 만들기 때문이다. 경종의 치료를 담당한 어의는 이공윤이다. 그는 경종의 열을 없애고자 설사시키거나 아주 찬 약을 위주로 공격성 강한 약물을 처방했다.

기록을 보면 도인승기탕, 시호백호탕, 곤담환 등의 약물을 처방했다. 이런 약물에는 석고처럼 아주 찬 약이나 설사시키는 대황 같은 약을 썼다. 이런 처방은 비위가 허약하고, 설사를 하였던 경종의 증상과는 맞지 않았다. 오히려 마지막 남은 위장의 기운마저 깎아내리는, 위험한 약물을 처방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게장과 생감을 동시에 경종에게 먹인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경종에게 게를 준 것은 분명히 암살 의도가 있어 보인다. 영조가 곤혹스러운 의심을 받을 만한 상황이다. 지금까지 경종의 죽음의 배후에 영조가 있었을 것이라고 믿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그러나 경종의 최후를 자세히 살펴보면, 영조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기 힘든 측면이 있다. 의사의 입장에서 보면, 영조가 마지막으로 인삼, 부자를 투여한 것은 타당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경종은 8월 20일 게장과 생감을 먹고 나서 복통을 호소했다. 21일에는 곽향정기산을 복용하며 22일에는 황금탕을 복용한다.

23일에는 설사로 혼미하고 피로하여 탕약을 정지하고 인삼율미음을 마셨다. 24일에는 더욱 맥이 낮아지고 음성이 미약해 졌는데 이공윤이 나서서 설사를 멈출 수 있다고 하면서 계지마황탕을 복용한다. 이 처방은 패착이었다. 마황은 허약한 사람에게는 결코 투여할 수 없는 약물이기 때문이다.

마황의 별명은 청룡이다. 용처럼 에너지를 뿜어내면서 땀을 내는 무서운 약이다. 마황을 잘못 쓰면 폐가 거꾸로 치밀어 오르고, 근육이 떨리며 가슴이 두근거려 심장을 감싸 안으며, 위장이 허약한 사람은 밥맛이 없어지는 등 위장의 기능을 꺾는다. 이런 무서운 약을 함부로 처방한 것이다.

당장 부작용이 나타났다. 계지마황탕을 복용한 날, 저녁이 되자 경종의 병세는 위급해졌다. 영조는 인삼, 부자를 써 양기를 북돋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공윤은 반대 입장을 강력히 견지한다. 영조는 이공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종에게 인삼, 부자 등을 먹였다. 실제로 영조의 처방에 경종의 병세는 잠시 안정되는 듯했으나, 결국 8월 25일 세상을 뜬다.

후세 사가는 영조의 처방을 놓고 입방아를 찢지만, 의사의 입장에서 보면 이공윤의 처방보다 영조의 처방에 더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아예 처음부터 이공윤보다 영조의 처방을 따랐더라면 경종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게장과 생감이라는 깊은 암수는 누구의 발상이었을까? 미스터리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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