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과 밀접하게 연결된 것으로는 시각과 후각도 있다. 음식의 맛은 시각이 사라지면 현저하게 떨어진다. 보기에 좋은 음식이 반드시 맛있는 것은 아니지만, 맛있는 음식이 보기도 좋으면 식욕이 더욱 증진된다. 후각은 시각보다 맛과 더욱 관련이 있다. 배가 고플 때에 밥 짓는 냄새를 맡으면 허기를 거의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빨리 음식을 먹으라고 입 안에 침이 흥건하게 고이게 된다. 맛있는 음식도 냄새가 없다면 훨씬 무미건조하게 느껴진다. 음식을 먹을 때의 분위기도 맛에 영향을 끼친다. 좋은 사람과 함께하는 자리라면 같은 음식이라도 훨씬 맛있게 느껴질 게 틀림없다. 이렇듯 맛이란 여러 감각이 함께 어울려 나타나는 것이다.
맵고 뜨거운 게 시원하다고?
다른 감각과 맛의 복합적인 작용을 잘 나타내는 우리말로 '시원하다'를 들 수 있다. '시원한 음료'나 '시원한 동치미'처럼 차가운 것을 먹을 때에도 '시원하다'라고 하지만, 술을 마신 다음 날 뜨거운 북엇국을 먹으면서도 '시원하다'라는 말을 연발한다. 심지어는 고춧가루가 잔뜩 들어 있는 매운탕의 펄펄 끓는 국물이나 장국밥을 먹으며 땀을 연방 훔치면서도 시원하다고 하니, 외국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맵고 뜨거운 것을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의 입맛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고개를 절로 흔든다.
하지만 우리가 맵고 뜨거운 국물을 들이켜면서 시원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맵고 뜨거운 것이 뱃속에 들어가면 몸에 열이 날 테고 당연히 땀도 흘러 체온을 식혀주기 때문이다. 음식을 먹으면서 흘리는 땀조차 '시원하다'라는 맛으로 표현하니 음식의 맛이란 얼마나 오묘한 것인가.
우리가 맛을 표현할 때에 '오미'라는 말을 쓴다. 짜고, 달고, 쓰고, 시고, 매운 다섯 가지 맛이 있다는 것이다. 대체로는 맞는 말이지만 오묘한 맛의 세계를 어찌 이 다섯 가지 맛으로만 한정할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과학적으로는 매운맛이 아픔을 느끼는 통각이니 진정한 맛이 아니다. 그렇다면 네 가지 맛밖에는 남지 않는다. 이렇게 과학은 음식의 맛을 너무 단순화해 바라보는 것 같다.
맛이란 여러 가지로 복합적이고, 그렇기에 음식을 만들면서도 여러 맛이 섞이는 가운데 최적의 맛을 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예컨대 화채의 맛을 내는 데에 쓰는 오미자라는 열매가 있다. 이러저러한 맛이라고 딱히 부르기 어려운 여러 맛이 섞인 열매인지라, 다섯 가지 맛이 있다 하여 오미자라 부른다. 자연물의 맛도 이렇게 복합적일진대, 다시 여러 재료를 섞고 조리하며 순서와 불기운까지 중히 여기는 음식의 맛을 '오미'라는 대분류로 한정하기는 어렵다.
이를테면 간장은 짠맛이라는 대분류에 속하는 조미료이지만 아미노산의 맛은 대분류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게다가 메주를 만드는 콩의 맛에 따라 장맛도 달라지고, 메주를 뜨는 방법과 시기, 장을 만드는 시기와 기후도 맛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또한 간장을 담그는 물맛이 좋아야 간장 맛도 좋다고 여겨, 간장 회사들은 물 좋은 곳에서 생산한다고 선전한다. 이런 것을 보면 사람의 입맛은 지극히 미묘한 것까지 구분해내는 아주 특별한 능력을 지닌 게 틀림없다. 그랬기에 이토록 다양한 음식 문화를 이루어내지 않았겠는가.
음식의 혁명을 이끈 MSG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활약했던 오귀스트 에스코피에라는 전설적인 요리사가 있다. 현대적 전통 요리의 거장으로 알려진 그는 리츠 호텔에서 음식을 만들며 오늘날 서양 음식의 기초를 세운 요리사다. 에스코피에가 자랑한 맛의 비결은 송아지육수에 있었다. 그는 송아지고기와 뼈, 그리고 요리에 쓰다 남은 당근과 양파, 셀러리를 넣고 향신료와 함께 푹 고아 육수를 만들었다.
에스코피에 요리의 요체는 바로 이 육수였다. 고기를 팬에 굽고 난 다음에는 팬에 눌어붙은 고기에 이 육수를 부어 녹인다. 그런 다음에 고기에서 나온 기름기와 고기부스러기가 육수에 녹아들고, 그 졸인 국물을 다시 구운 고기에 바른다. 거기에 버터를 살짝 녹이면 그것으로 고기 요리가 완성되는 것이다. 수프를 끓일 때나 소스를 만들 때에도 이 육수를 적절하게 이용해 맛을 훨씬 좋게 할 수 있었다. 우리가 맹물 대신 고기 국물이나 멸치 국물을 육수로 썼을 때 더 맛있다고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다.
에스코피에와는 별도로, 1907년에 동경제국대학의 교수였던 일본의 화학자 이케다 기쿠나에는 다시마 국물에 푹 빠져 그 맛있는 국물을 화학적으로 규명하고자 했다. 이케다는 그 맛을 내는 성분이 글루탐산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글루탐산 자체는 아무 맛이 없지만 요리나 발효, 또는 햇빛에 의해 분해되면 L-글루타메이트라는, 혀로 맛볼 수 있는 아미노산이 된다. 이것이 우리의 입맛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다만 글루탐산은 불안정한 분자여서 대체로 맛이 없는 것들과 엉기려 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나트륨과 결합시켜 안정적인 염을 만들어낸 것이 바로 글루탐산나트륨, 곧 MSG라 부르는 화학 조미료다.
이 최초의 화학 조미료는 일본에서 1908년에 아지노모토(味の素)라는 상품명으로 발매되기 시작한다. 맛을 내는 이 하얀 가루 조미료가 요리의 영역을 두루 점령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나라에는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에 처음 소개가 되고, 1958년에는 '미원'이라는 이름을 달고 국내에서 생산되기 시작한다.
이 화학 조미료 생산에서는 글루탐산을 어떻게 하면 값싸게 추출하는가가 관건이다. 초창기에는 밀에 포함된 단백질인 글루텐과, 기름을 짜고 남은 탈지대두가 단백질 원료로 쓰였다. 이것들을 염산으로 가수분해해 글루탐산을 추출하고 다시 수산화나트륨으로 중화해 글루탐산나트륨으로 만드는 화학적 방법이다. 나중에는 더 저렴하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원료인 당밀을 미생물로 발효시켜 글루탐산을 추출했다.
어쨌든 이 화학 조미료 MSG의 탄생은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다시마나 생선으로 육수를 추출하는 길고 번거로운 공정이, 단순히 소금을 치듯 조금만 뿌려 넣으면 간단히 해결되었다. 이 조미료의 등장은 요리에서는 거의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마법을 부리는 하얀 가루
가정에서는 고기나 생선으로 국물을 내고, 아니면 간장이나 된장으로 맛을 내고 콩가루, 깻가루를 섞고 하는, 번거로운 과정이 필요 없어졌다. 그저 이 하얀 가루를 조금만 치면 그런 과정을 거친 것만큼이나 신속하고 빠르게 효과가 나타났다. 국이나 찌개처럼 국물이 있는 요리를 만들 때는 말할 것도 없고 나물을 무칠 때에도, 고기를 굽기 전에 양념을 할 때에도, 김치를 담글 때에도 이것만 있으면 음식 맛이 확 달라졌다. 이 마법의 조미료는 재료의 부족에서 오는 맛의 공백을 아주 손쉽게 해결해주니, 가난한 살림살이에 반찬값을 아껴가며 생활하던 주부들에게는 정말로 매혹적이었다.
그런 와중에 사람들은 점차 그 맛의 함정에 빠져들었다. 화학 조미료를 치지 않은 음식은 무언가 맛이 부족한 듯하고 성에 차지 않는 음식이 되어버렸다. 밖에서 먹는 음식들에도 화학 조미료가 들어갔는데, 식당 주인의 처지에서는 재료비를 절약해주니 든든한 원군이 아닐 수 없었다. 외식업이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던 196~70년대에는 비교적 영세한 음식점들부터 화학 조미료의 마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 하얀 가루를 가장 매력적으로 이용한 곳은 중국 음식점들이었다. 자장면, 짬뽕, 울면 등 기본적인 음식에서 여러 가지 고급 요리에 이르기까지 중국 음식점은 화학 조미료로 다양한 마법을 부렸다.
하지만 이 화학 조미료를 가장 반긴 것은 무엇보다도 식품 회사들이었다. 대량으로 만들어야 하고 공정을 단순화해야 하며 일관된 품질과 규격이 필요한 처지에, 음식 맛을 내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만드는 과정에서 간단히 첨가하기만 하면 일단 웬만한 맛을 보장받는 셈이니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MSG는 특히 국물 맛이 중요한 라면이 개발되면서부터는 라면 수프에 주로 쓰였고, 이후에는 다른 인스턴트식품의 영역으로 급속히 확대되었다. 주정에 물을 타서 만드는 희석식 소주도 맛을 내는 데에 이 MSG를 이용했다.
ⓒ프레시안(손문상) |
MSG에 대한 오해
외식 문화가 확대되고 반제품과 인스턴트식품이 일반화되는 과정에서 눈부신 성장을 계속하던 이 MSG는 근래에 이르러 극심한 반대 운동에 부딪히게 된다. MSG는 몸에 해로운 것이라는 오명에서부터, 발암 물질이며 신경 쇠약에 이르게 한다는 온갖 유해론이 등장했다. MSG를 만드는 과정에서 극약에 가까운 염산이나, 양잿물과 성분이 같은 수산화나트륨이 쓰이니, 음식에다 화학 제품을 넣어 먹는다는 정서적인 불안감도 이 물질에 드리운 의심을 부채질했다.
'중국 식당 증후군'이라는 새로운 병명도 등장했다. MSG가 많이 들어간 중국 음식을 먹으면 뒷목이 뻐근하고 불쾌감을 느끼며 두통과 편두통이 생긴다는 것이다. 급기야 많은 식품 회사는 MSG의 대용물을 찾고, 첨가 성분에 '효모 추출물'처럼 MSG를 연상시키지 않는 다른 이름을 써서 애써 감추려 한다. 이제는 라면도 포장지에 'MSG 무첨가'라고 표시할 만큼 MSG는 우리가 먹어서는 안 될 것으로 낙인이 찍혔다.
하지만 MSG가 정말로 그렇게 해로운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많은 가공 식품에는 여전히 MSG가 들어 있으며 이는 당당한 식품 첨가물로 인정받고 있음을 뜻한다. 발암 물질에다 신경 쇠약을 유발한다는 것은 낭설로 판명되었고, '중국 식당 증후군'이라는 것도 그다지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일단 중국 음식을 먹으면 모든 사람이 보편적으로 그런 증상을 나타낸다는 확증이 없다. 일부 사람이 그런 증세를 호소하지만 꼭 중국 음식이 아니더라도 낯선 음식을 먹으면 그런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익숙하지 않은 음식에 대한 거부 반응은 다양하고 개인적인 차이도 심하다.
염산과 수산화나트륨 같은 독물을 써서 만든다는 것도 기분이 좋지는 않겠지만 그것이 어떤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지가 확실하지 않다. 우리가 늘 먹는 식용유도 극독물인 헥산이라는 화학 물질을 이용해 기름을 추출하고 과일 통조림도 염산을 이용해 과일의 껍질을 제거한다. 화학 반응이 일어난 뒤에 중화 과정을 거치기에 독물로 남지는 않는다. 그러니 대부분 국가에서 MSG를 식품 첨가물로 허용하며 식용으로 판매하고 있다. MSG 자체가 많은 전문가의 과학적인 검증을 통과했고 소문과는 달리 인체에 그렇게 해로운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입맛을 교란하는 MSG의 함정
하지만 해롭지 않다고 해도 MSG가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L-글루타메이트가 인간이 가장 좋아할 만한 맛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천연물질에도 풍부하게 들어 있다. 간장과 된장처럼 콩 단백질을 발효시킨 것은 물론이고, 젓갈, 육수, 멸치국물 등 우리가 평소에 맛있다고 하는 것에는 L-글루타메이트가 풍부하게 포함되어 있다.
고기를 구울 때 간장을 발라서 구우면 맛이 더 좋아지는 것은 에스코피에가 구운 고기에 육수를 발라 졸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간장의 L-글루타메이트가 고기의 아미노산을 활성화하기 때문이다. 생선회를 먹을 때 간장을 찍어 먹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서양 음식도 예외가 아니다. 치즈나 엔초비를 맛있어하는 것은 L-글루타메이트가 풍부하게 들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이 맛을 좋다고 느끼는 것은, 단백질이 꼭 필요한 영양소이고 이 맛을 좋아해야만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을 섭취할 수 있어서다. 그런데 MSG는 이 맛을 교란해 실제로는 단백질이 풍부하지 않은 음식까지도 입맛을 좋게 하기 때문이다. 만일 된장찌개에 MSG만을 넣고 맛을 낸다면 입맛은 맞출지 몰라도 실제로는 멸치나 우렁, 조개로 맛을 낸 것보다 단백질을 덜 섭취하게 된다.
또 하나의 부작용은 맛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는 점이다. 맛있는 국물 맛이라 하더라도 멸치 국물과 고기 국물의 맛이 다르고 조개 국물 맛이 또한 다르다. L-글루타메이트의 맛이라 해서 그것 하나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여러 요소와 혼합되어 각기 특이한 맛을 내는 것이니, 주부들과 요리사들은 조화로운 맛을 찾기 위해 여러 조합을 실험하면서 맛을 찾는다. MSG는 그런 과정 없이 맛을 단순화해 획일화된 음식들만 만들어낸다. 거기에만 맛을 의존한다면 공장에서 생산되는 가공 식품들처럼 규격화된 단순한 맛들만 남을 수밖에 없다.
과학보다는 입맛이 더 잘 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오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L-글루타메이트의 맛은 그 오미에 속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케다가 MSG를 합성한 뒤에도 그 맛은 과학적인 공인을 받지 못했다. 거의 100년이 지난 다음인 2000년이 되어서야 사람의 혀에서 L-글루타메이트의 수용체를 발견해 정식으로 과학적인 인정을 받게 되었다. 2002년에는 단맛의 수용체가 변형된 또 다른 L-글루타메이트 수용체가 발견되었다.
2002년에는 매운맛을 느끼는 수용체도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통증을 느끼는 수용체가 변형되어 고추의 활성 성분인 캡사이신과 결합해 맛을 감지한다. 결국 매운맛도 맛의 한 가지임이 입증된 것이다. 원래 너무 뜨거운 것을 먹으면 입 안을 데기에 이 통증의 수용체로 뜨거운 것을 감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매운 것을 먹으면 뇌에서 열 감각이 일어나 땀이 나게 된다. 결국 우리가 뜨겁고 매운 것을 먹으면서 '시원하다'고 하는 것도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셈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과학이 밝혀낸 것은 맛의 일부에 불과하다. 물론 언젠가는 더 미묘한 맛을 구분해내는 미뢰들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며, 우리의 뇌에서 미각과 시각, 촉각, 후각을 아우르는 맛 인식 기제들을 종합적으로 밝힐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맛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듯하다.
맛이란 여러 가지 복합된 맛을 혀에서 감지해 이에 대한 최종 판정은 뇌에서 연관해서 하는 것이기에 그 오묘한 세계는 끝이 없을지도 모른다. 가령, 떡도 쌀과 설탕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소금과 콩과 밤과 같은 부재료를 잘 써야 좋은 맛이 나며, 게다가 보기에 나쁘고 냄새도 좋지 않다면 맛있는 떡이라 할 수 없다.
우리는 지금까지 몸이 필요한 영영소를 얻기 위해서라도 놀라운 입맛들을 인지하고 기억해왔다. 또한 이 입맛을 채워주는 솜씨는 과학보다도 장인 요리사나 어머니의 손과 혀끝 손맛을 통해 지극히 정교한 발달 과정을 거친 것이다. 결국 맛이란 인간의 감각뿐 아니라 향수나 추억 같은 여러 가지 기억과 감성이 어우러졌을 때 뚜렷하게 느껴지니 그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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