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게 록을 정의하면 이런 모양새가 된다. 멜로디를 중시하기 이전, 군살을 다 발라낸 록의 뼈대는 이런 모습이었다. 데드 웨더(Dead Weather)는 작년 발매한 데뷔앨범 [Horehound]에서 록의 미학을 날것 그대로 보여줬다. 그리고 올해, 세계 유통사를 콜롬비아에서 워너로 옮긴 후 이들은 두 번째 앨범 [Sea of Cowards(넘쳐나는 겁쟁이들)]를 발표했다.
▲데드 웨더 [Sea of Cowards]. ⓒ워너뮤직코리아 |
앨범을 내는 족족 각종 시상식을 휩쓴 2인조 밴드 화이트 스트라이프스(White Stripes)의 리더 잭 화이트는 이 와중에도 프로젝트 밴드 라콘터스와 데드 웨더를 결성하는, '부지런하다'는 말로도 표현이 부족할 초인적 성실함을 선보였다(심지어 그는 솔로 음반을 발표할 계획마저 세워뒀다).
음반을 플레이어에 거는 순간 60~70년대 록을 들을 때의 순수한 기쁨이 폭발하듯 터져 나온다. 기타를 놓고 드럼 세트 앞에 앉은 잭 화이트의 도도한 드러밍이 포문을 여는 <Blue Blood Blues>부터 마지막 곡 <Old Mary>까지 11개의 수록곡은 단 한 순간도 청자를 가만 내버려두지 않는다.
전작처럼 앨범은 숲 속 깊숙한 곳에 자리한 늪지대에서 풍기는 듯한 악취를 내뿜고,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 자리 잡은 흉가에서 새나올 법한 신음소리를 흘리며, 굶주린 승냥이떼처럼 청자를 거칠게 위협한다. 각종 음악잡지들이 거의 경배하는 수준으로 모시는 잭 화이트의 천재성은 이 앨범에서도 전혀 수그러들지 않는다. 건반 소리는 음습함과 축축한 느낌의 성향을 극대화시키고, 기타는 때로 보컬마저 위협할 기세로 듣는 이의 신경을 자극한다. 습기를 머금은 전체 사운드와 대조적으로 어울리는 퍽퍽한 드러밍은 베이스와 함께 거의 블루스를 듣는 듯한 리듬감을 전달한다.
이 앨범을 빛내는 또 다른 한 축은 바로 보컬 앨리슨 모사트다. 그의 일견 중성적이면서도 농염한 보컬은 잭 화이트의 카랑카랑한 보컬과 만나 데드 웨더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I Can't Hear You>에서 이중적 매력을 풍기는 그의 보컬은 <Gasoline>에서 야수처럼 포효한다. 흐느끼는가 싶으면 순식간에 날카로운 고함으로 변하고, 나머지 세 멤버의 연주를 앞장서 이끌다가도 스스로 파열음을 내며 기타 솔로연주의 뒤로 숨어버린다.
불안감을 극도로 끌어올리며 시작하는 <Die by the Drop>에서 앨리슨 모사트와 잭 화이트가 같은 어절을 반복하는 후렴구는 돌림노래로 시작하다 마지막에 합쳐진다. 잭 화이트의 날카로운 보컬과 앨리슨 모사트의 거친 저음은 성(性)의 구분이 힘들 정도다. <뉴욕타임스>는 이러한 목소리의 결합을 두고 "성교를 패러디한 것 같다"고 표현했다. 이 곡의 뮤직비디오에서 앨리슨과 잭이 중첩되는 장면은 상징적이다(뮤직비디오 바로 가기).
록은 흑인음악에서 태어난 백인의 음악이다. 아직 흑인의 감수성, 즉 블루스의 결이 남아있었던 60년대 말~70년대 초 록은 최고의 황금기를 구가했다. 최근 리마스터(음질개선을 위한 재녹음) 시리즈 발매를 마무리한 롤링 스톤스(Rolling Stones)의 명반 [Exile on Main St.], 도어스의 [L.A. Woman], 레드 제플린의 [Led Zeppelin] 등 이 시기에 쏟아진 록의 명반들은 이 음악이 어디에 뿌리를 뒀는가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Sea of Cowards]는 이 시절을 정조준하고 있다. 앨범 전반을 관통하는 감성은 환상적인 그루브를 탄 불안함이며, 기타가 짚어내는 음 하나하나는 의식해서 듣는다면 충분히 여유롭다. 이 앨범을 들으면서 냉정함을 유지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만일 당신이 빈티지 록을 즐기는 이라면, 이 앨범을 듣는 순간 너무 기쁜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만세를 외칠지도 모른다. 잭 화이트는 결코 듣는 이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또 다른 보석들
작년부터 시작된 롤링 스톤스의 폴리도어 시절 이후 발매음반 리마스터 시리즈가 72년 발매작 [Exile on Main St.]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국내에는 미발표곡을 담은 2CD 버전으로 수입됐다. 비틀스(Beatles)에 항상 가려있어야 했지만, 롤링 스톤스는 그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는 대밴드다. 이들은 펑크가 탄생하기 전 혐오스러운 가사와 거만한 태도, 난잡한 사생활로 록스타의 삶이란 무엇인가를 정의내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흑인 음악을 기반으로한 이들의 끈적한 로큰롤이 정말로 뛰어났다는 점이다. 이 음반은 롤링 스톤스가 낸 수많은 명반 중에서도 가장 최고봉에 올라있는, 그야말로 록의 성서다. 이후 나온 숱한 록스타들은 이 음반의 그늘에서 생활해야 했다.
니르바나(Nirvana)를 배출하면서 국내 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인디록의 명가 서브 팝(Sub Pop) 출신은 일단 일정 정도 점수를 먹고 들어간다. 메이저 데뷔앨범 [Infinite Arms]를 발표한 밴드 오브 호시즈(Band of Horses)도 마찬가지다. 국내 팝음악 팬들의 적지 않은 수가 영국 록에 비해 미국 록을 꺼려한다. 컨트리, 포크, 블루스 등이 특히 국내에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는 장르인데, 밴드 오브 호시즈는 컨트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루츠 록(Roots Rock) 밴드다. 그러나 이 음반은 그런 우려를 충분히 불식시킬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답고, 서정적이며, 우울하면서도 세련됐다. 마치 닐 영을 연상시키는 보컬이 전면에 나선 가운데 앨범 곳곳에서 플레이밍 립스에게서 느껴지는 약간의 정신병적인 감성이 가볍게 청자를 자극한다. 앨범 자켓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앨범이다.
얼마 전 내한해 환상적인 무대를 선보인 인기 펑크밴드 그린 데이(Green day)의 콘셉트 명반 [American Idiot]이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이 음반은 두 장의 시디에 [American Idiot]과 최근 앨범 [21st Century Breakdown]의 수록곡을 담았다. 뮤지컬 배우들이 부르는 그린 데이의 히트곡들이 새롭다. 원소스 멀티 유즈, 즉 하나의 문화 콘텐츠가 다양한 분야에서 생명력을 더해가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예술인의 상상력과 이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산업, 제도적 관심이 필요하다. 이 음반이 문화산업 관계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9세기말~20세기 초를 풍미했던 프랑스의 천재음악가 에릭 사티의 곡을 피아니스트 김석란이 녹음했다. 각종 CF 등을 통해 국내 음악팬들에게도 친숙한 에릭 사티의 곡이 가진 우울함과 고독을 잘 표현해냈다는 평가다. 2003년부터 '프랑스 음악이 어려우세요?'라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인 김석란은 두툼한 앨범 해설지를 직접 쓰는 정성을 보였다. 김석란은 서울대 음대 졸업 후 프랑스 파리 에콜 노르말, 파리 스콜라 칸토룸, 파리 국제 콘서버토리 등 각종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음반 배급사인 뮤직콤파스 관계자는 이 음반을 두고 "에릭 사티를 녹음한 어떤 음악가보다 뛰어난 수준으로 곡을 해석했다"고 강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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