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래, 박정현, 정인 이을 새 '디바', 보니

[김봉현의 블랙비트] 2010 한국 알앤비 중간점검 : 대략 순위권 앨범①

디즈(Deez), 정엽, 라.디(Ra.D), 올댓(All That), 김신일.

올 봄에 열렸던 제7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알앤비&소울 음반부문 후보 명단이다. 결과적으로 수상은 라.디가 했지만 어느 후보가 상을 받았어도 크게 어색하지 않을 리스트다. 이른바 '상향평준화'다. 또 후보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휘성 등도 준수한 앨범을 발표했다. 확실히 2009년은 한국 알앤비에 있어 예전보다 더 풍성해진 한 해였다.

올해 들어 그 기세를 이어받은 인물은 진보였다. 올 초 그가 근 5년 만에 발표한 [Afterwork]는 놀라운 작품이었다. 디트로이트(detroit) 사운드를 바탕으로 한 네오 소울, 다시 말해 드웰르(Dwele)의 조금 더 투박한 버전이라 할만 했다. [Afterwork]를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아뿔싸, 올 것이 왔구나. 올해 알앤비는 이게 킹왕짱인 것이야! 올해가 10개월이나 남았다는 사실은 이제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구!'

▲보니 [Nu One]. ⓒCJ뮤직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제 2010년은 절반이 조금 더 남았다. 아직도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가? 다시 말해 진보가 아직도 2010년 한국 알앤비 짱인가? 흐음. 일단 답을 보류한다. 역시 사람은 항상 빠져나갈 구멍 하나쯤은 만들어놓을 필요가 있다. 물론 앞으로 어떤 앨범이 나와도 진보의 [Afterwork]가 최상위권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겠지만 나는 섣불리 '확언'하지는 않기로 결심했다. 미래를 예상할 것도 없다. 이미 발매된, 진보의 [Afterwork]를 열심히 위협하고 있는 두 앨범을 2주에 걸쳐 소개한다. 첫 타자는 보니(Boni)의 [Nu One EP]다.

015B의 일곱 번째 앨범 [Lucky 7]의 수록곡 <잠시 길을 잃다>에서 보니의 노래를 처음 들었다. 당시는 보니가 아니라 신보경이었다. 하지만 딱히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015B의 전통적인 팬이자 국가대표 찌질이었던 나에게는 현 천안함 관련 남북 국면보다 더 불안한 음정을 자랑하는 두 '보컬리스트' 유희열과 정석원의 <모르는 게 많았어요>만이 진리였기 때문이다.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던 그녀는 보니라는 이름으로 돌아와 [Nu One]이라는 EP를 발표했다. 신보경일 때는 몰랐는데 앨범을 들어보니 그녀가 흑인음악을 본격적으로 추구하며 알앤비 디바를 목표로 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엠브리카(Mbrica)가 프로듀싱을 맡은 이 앨범은 역시나 KS마크를 찍을 만하다. 소울사이어티(Soulciety)의 어중간함을 거쳐 프로젝트 듀오 러브 티케이오(Love TKO)로 실력을 증명했던 그는 [Nu One]을 통해 드디어 왕관을 거머쥐는 데에 성공한다. 실제로 엠브리카는 90년대 알앤비 거장들의 소리(<너를 보내도>, <ResQ Me>)에서부터 2000년대 초중반 메인스트림 알앤비(<Nu One>)와 최근의 힙합(<BONI Get Started>), 그리고 하이브리드(<Hot Soup>)에 이르는 다채로운 콘셉트를 자신의 스타일로 소화해 충실하게 창조해낸다.

▲홍보지는 보니를 두고 '인순이, 윤미래, 박정현, 정인의 뒤를 이을 차세대 디바'로 표현한다. ⓒinplanet

(7곡이 수록된 EP를 두고 이런 표현을 쓰기가 좀 그렇지만) 그런 맥락에서 이 앨범은 엄밀히 따지면 '백화점 구성'을 취하고 있다. 흑인음악과 알앤비&소울이라는 틀 안에서의 다양한 변주다. 물론 1번은 발라드, 2번은 댄스, 3번은 록, 4번은 힙합...식으로 구성된 진정한 종합선물세트 앨범도 적지 않은 현실 속에서 본작을 가리켜 이렇게 평하는 것은 부당한 면이 있다. 그럼에도 굳이 딴죽을 걸자면 듣는 입장에서는 이러한 앨범 구성이 일종의 강박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최대한 다양한 모습, 다양한 매력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 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보기에 따라 부정적으로도 보일 수 있는 이러한 구성이 이 앨범에서는 전혀 나쁘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왜일까? 간단하다. 음악이 좋기 때문이다. 잘 만든 음악이고 잘 부른 노래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앨범이 백화점 구성에 대한 강박 때문에 적당한 곡들을 모양새 좋게 끼워 맞추기에 급급했다면 평가는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 앨범은 각 콘셉트 내에서 구현할 수 있는 최상위 품질의 곡들이 모여 있다. 어느 한 곡도 몰이해를 기반으로 하거나 단순히 클리셰를 재현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말하자면 알앤비-올스타인 셈이다.

자,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앨범의 프로듀서 엠브리카를 국회로 보내는 일…이 아니라 엠브리카가 토스한 음악을 받아 그것을 더욱 품격 있게 끌어올린 보니의 보컬을 칭찬하는 일이다. <잠시 길을 잃다> 한 곡만을 가지고 비교하기가 좀 뭐하지만 확실히 보니는 신보경 때보다 발전했다. 성량이 풍부해졌고 더 완숙해졌다. 무엇보다 곡을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나 어떤 스타일이든 곡과 한 몸이 된다. 지고지순한 슬로우 잼에서도, 도발적인 클럽 트랙에서도 그녀는 완벽하게 배역을 소화한다. 그리고 그중 가장 뭉클한 순간은 <너를 보내도>에 있다. 정확히 3분 8초에서 곡의 끝까지 숨죽이고 듣고 있자면, 역시 가장 훌륭한 악기는 인간의 목소리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앞서 강박이니 뭐니 언급했지만 글 쓰는 사람에게도 강박이 있다. 칭찬을 늘어놓은 만큼 왠지 그에 상응하는 단점 역시 지적해야할 것 같은 강박 말이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관점으로 보았을 때, <Hot Soup> 중 '여자가 있다 해도' 부분에서 '여자가' 부분이 경상도 사투리처럼 들린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이 앨범에 꼭 짚고 넘어가야할 결점 같은 것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드립을 쳐야 될 만큼 좋은 작품이라는 이야기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요 드립은 드립일 뿐. 보니의 앞날은 창창하다. 나는 한국의 디바 리스트에 기꺼이 그녀의 이름을 올려놓겠다. 정규 앨범을 기다린다.

▲ ⓒinpl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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