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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 숟가락도…

[판다곰의 음식 여행·26] 한·중·일의 밥상

요즘 우리네 가족은 서양식 식탁에 둘러앉아 한국식 음식을 놓고 젓가락과 숟가락을 이용해 밥을 먹는다. 만일 온돌방만이 있고 따로 식탁이 없는 집이라면 방에 앉은뱅이 밥상을 놓고 식구들끼리 둘러앉아 밥을 먹는다.

상 위에 놓이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보더라도 지금은 보통 재질이 예전의 놋쇠나 은에서 편리성을 강조한 스테인리스로 바뀌었지만, 그 형태는 쇠로 만든 전형적인 한국의 수저다.

식당에 가더라도 이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의자에 앉는 식탁이 있거나 아니면 방바닥에 양반다리로 앉아 먹을 수 있는 식탁을 중심으로 해서 배열되어 있다. 어떤 집들은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어 의자가 편한 사람은 입식 밥상에, 양반다리가 편한 사람은 좌식 밥상에 앉는다.

보통은 혼자 오는 사람이면 입식에 앉아 빨리 밥을 먹고 가려고 하고, 여럿이서 모인다면 좌식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하려 한다. 요즘은 입식 생활이 익은 젊은 사람들이 의자에 앉고 나이 든 사람이면 좌식을 선호하는 편이다.

한솥밥도 각상으로

언제부터 우리는 가족이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을까? 기억을 더듬어보면 글쓴이가 어릴 적에는 둥그런 좌식 탁자에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하지만 어쩌다 친구네 집에 가서 밥을 먹을 때에는 따로 소반에 친구와 먹을 겸상을 차려주는 일도 있었다. 시골의 전통 있는 반가에서는 방에 친구와 둘만이 있음에도 따로 두 소반에 각상을 차려주는 집도 있었는데, 그럴 때는 왠지 어색하고 불편해 그냥 서로 말도 없이 밥만 먹었다.

그러다가 우리의 옛 그림을 보다가 확인하게 된 사실이 있는데 옛날에는, 적어도 양반집에서는 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법이 없었다는 점이다. 잔치를 하더라도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각자 한 상을 차려주는 것이 원칙이었고, 집이 좁아 차양을 치고 멍석을 깔아놓는다 해도 모든 손님에게 간소하나마 소반 하나에 개인상을 차려주는 것이 상례였다.

가령 회갑연을 생각해보면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근래에는 회갑연을 별로 하지 않으니 칠순의 고희연을 생각해도 좋다. 아무튼 요즘은 회갑을 맞은 분 앞에 여러 고임을 놓고 상을 차린다. 배우자가 살아 있으면 그 곁에 함께 앉는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 앞의 상에 모여앉아 연회를 한다.

하지만 예전에는 고임이 놓인 상을 주빈에게 하나 올리고 배우자가 있으면 또한 고임이 놓인 각상을 하나 더 차려주는 것이 보통이었다. 손님들에게도 주빈의 그것처럼 많은 고임과 음식이 놓인 것은 아니지만 각자 상을 하나씩 따로 주고 연회를 했다.

점차 사라져간 삼국의 각상 문화

보통 때의 밥상도 마찬가지였다. 집안의 제일 웃어른에게 먼저 한 상을 차려주는 것이 식사의 시작이다. 어른이 식사를 마치고 상을 물리면 집안에서 다음 서열의 사람에게 다시 밥과 국을 새로 차려 밥상을 올린다. 그런 순서로 식사를 마치는 것이 양반집의 식사 시간이었다.

물론 제일 높으신 웃어른이 가장 먼저 좋은 반찬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웃어른은 이 밥상 물림이 누구에게 갈 것인지를 안다. 아마도 맏아들이 있으면 그에게 이 밥상이 전해질 테다. 그렇기에 맛있는 반찬을 독점하는 법이 없다.

적당히 취하고 상을 물리면 사랑하는 아들이 맛있는 반찬을 먹을 수 있을 테다. 요즘은 밥상에서 부모가 맛있는 반찬을 아이들 밥 위에 얹어주는 것으로 사랑을 표시하지만 예전에는 물리는 밥상으로 표시했을 뿐이다. 방식만 다르지 내용이 바뀐 것은 없다.

그러면 각상을 받는 전통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각상의 전통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은 일본이다. 일본이 대체로 당나라 때부터, 한국을 통하지 않고 중국의 문물을 직접 전수받았기에 그런 듯하다.

이제는 서구의 영향으로 변해가는 중이지만 그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요즘은 일본도 밥상에 둘러앉아 먹긴 하지만 상차림만큼은 반드시 한 사람 한 사람의 것을 쟁반 위에 구분해서 낸다. 전골처럼 함께 먹어야 할 음식이 상 위에서 조리되고 있다면 이 또한 조리가 다 되고 나서는 각자의 그릇에 덜어 먹는다.

요즘은 중국도 보통 둥그런 원탁에 둘러앉아 먹고 음식은 자신의 접시 위에 덜어 먹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중국의 은주 시대를 보면 각상의 전통이 나타난다. 은주 시대에는 연회에 참석한 사람이 한국의 그것처럼 모두 각자 한 상을 받아들고 있다. 이처럼 각상을 차리는 풍속은 중국이 유목 민족인 이민족의 침입을 받으면서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나라는 조선 시대 성리학의 영향으로 <주례(周禮)>가 모든 풍속과 예의의 기준이 되었으니 조선 시대까지는 각상의 전통이 지켜졌다. 우리에게 소반과 밥상의 종류가 여러 가지 크기와 형태로 다양한 것은 그만큼 각상의 전통이 잘 지켜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식민지 시대와 전쟁, 근대화 과정에서 각상의 전통은 급격히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동북아 삼국의 밥상은 각각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우선 삼국의 식사 예절 가운데 차이점을 하나 들자면 밥상 앞에 앉는 법이다.

중국은 의자에, 한국은 바닥에 앉는다. 일본의 경우 요즘은 그렇게 엄격하게 지켜지지는 않지만 예전에는 꿇어앉았다. 앉는 방법이 무슨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냐고 따져 물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시대에 따라 다르다.

현재 남아 있는 은주 시대 조형물을 볼 때 모든 기본 자세가 꿇어앉는 것이었다. 중국에 불교가 들어오고 유행하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의자에 앉아서 한쪽 다리를 다른 다리 위에 걸쳐 앉는 자세나 가부좌는 불교와 함께 들어왔는데, 중국의 당대까지는 아직 이 자세가 고정되지 않았기에 밥상 앞에 꿇어앉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일본의 자세도 여기서 비롯되었다.

중국은 여러 번에 걸친 북방 민족의 침략을 받으며 변모하다가 청대에는 여진족의 풍습으로 식탁 의자가 고정되었다. 한국의 양반다리나 가부좌 자세는 우리 온돌의 가옥 구조와 맞물려 고려시대에 정착되었다. 밥상 앞에 앉는 자세 하나도 이렇게 장구한 세월을 거쳐 변모한 것이다.

또 하나 삼국 밥상의 차이점을 찾자면 수저를 들 수 있다. 특히 젓가락은 지금도 삼국이 공통으로 쓰지만 그 모양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중국의 것이 가장 크고 길쭉하고 보통은 대나무로 된 것을 쓰지만, 좋은 것은 상아로 만들었다. 요즘은 플라스틱으로 된 것도 쓰인다. 일본의 것은 중국 것보다는 짧고 끝을 뾰족하게 깎았으며 역시 대나무나 칠기로 만든 것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의 것이 가장 짧고 가늘며 보통은 놋쇠나 은으로 만들어 썼지만 요즘은 '스텐'으로 만든 것이 대종이다.

중국과 일본의 젓가락에 무거운 금속제가 없는 것은 그만한 크기의 것을 금속으로 만들었다면 무거워서 쓰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거꾸로, 우리 젓가락을 가벼운 재질로 만든다면 무게감이 없어 역시 사용하기 불편할 것이다.

ⓒ프레시안(손문상)

음식에 따라 달라진 숟가락의 형태

숟가락은 중국과 일본에서도 희미하게 남아 있다. 중국의 숟가락은 국을 먹는 데에만 쓴다. 요즘 쓰는 것은 아예 도자기로 만들어 국물을 떠먹는 일에만 적합하다.

일본은 중국보다 더 숟가락을 쓰지 않는다. 국은 그릇을 입에 대고 마시며, 건더기는 잘게 썰어 젓가락으로 입에 넣는다. 숟가락 비슷한 것을 쓰더라도, 우동이나 라면을 먹을 때 국수에서 흐르는 국물을 막는 받침 정도의 용도다. 우리처럼 식사할 때 숟가락과 젓가락을 동시에 쓰는 경우는 없다.

예전에는 밥을 숟가락으로 먹지 않으면 어른에게 야단을 맞기도 했다. 그렇다면 숟가락을 쓰는 풍습은 우리만의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중국도 신석기시대 이후에는 숟가락이 존재했으며 모양이 변하기는 했지만 숟가락도 식탁에서 자주 사용된 도구였다. 당, 송, 명초까지만 하더라도 중국 숟가락 모양은 우리와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중국은 명의 중기 이후 숟가락 사용이 점차 퇴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한국은 이와는 반대로 오히려 강화되는 듯하다. 주영하 교수는 중국의 숟가락 사용이 줄어들게 된 이유로, 식용유의 사용이 증가하면서 반찬을 숟가락으로 먹을 경우 입을 데기 쉽고 차의 발달로 국물이 있는 음식이 차츰 드물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까 하고 분석한다. 일본에서는 숟가락 사용이 일부 귀족 계층에만 있었던 것 같고 젓가락만 사용한 시기가 세 나라 가운데에서 가장 오래된 듯하다.

여하튼 고려 시대 말부터 조선 시대 초까지의 우리 숟가락은 모양이 요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숟가락의 끝이 뾰족하고 손잡이가 굽어 있어, 국물을 먹기에는 괜찮지만 밥은 어떻게 먹었을지 궁금할 정도다. 그러던 것이 조선 중기부터는 지금의 형태처럼 모양이 달걀형으로 둥글어지고 손잡이는 가늘게 길어졌다.

사실 이 형태는 국물만을 대상으로 한다면 조금 부적합한 형태다. 한 숟가락에 올려놓을 수 있는 국물의 양이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뜨거운 국물을 먹을 때에는 입으로 후후 불어 식혀 먹기에 편리하다.

이 형태의 가장 유용한 면은 밥과 국을 같이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서양의 숟가락처럼 너무 오목하면 국물을 담기에는 편리하겠지만 밥을 먹을 때에는 차진 밥이 숟가락 안쪽에 들러붙을 수가 있다. 여기에는 조치나 국을 필수로 하는 한국식 밥상의 특징과도 잘 맞아떨어지는 형태의 합리성이 숨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숟가락을 즐겨 쓴 이유

우리가 수저를 동시에 활용하는 식사법을 지니게 된 것은 식기하고도 연관이 있다. 중국의 식기는 도자기가 주로 쓰였고 일본은 도자기나 나무로 만든 칠기가 주였다. 도자기나 칠기는 비교적 무게가 가벼워서 손으로 들기가 편하다.

하지만 우리는 주로 겨울철에는 놋쇠그릇을, 여름철에는 도자기를 식기로 사용했다. 겨울철에 유기그릇을 쓴 것은 음식을 담은 채로 보온하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가장의 귀가가 늦을 때에는 밥주발을 아랫목 이부자리에 넣어 온기를 유지하던 풍경이 생각날 것이다. 아무튼 무거운 유기그릇이 식기라면 손으로 들고 먹기는 어려우니 자연히 숟가락으로 밥과 국을, 젓가락으로 반찬을 먹는 습속이 정착된 것이 아닌가 한다.

더군다나 우리는 식사에서 밥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척 컸다. 그렇기에 밥주발이 상당히 컸으며 우람하기까지 했다. 여기에 밥을 가득 담는다면 일본이나 중국처럼 밥그릇을 들고 먹기에는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일본이나 중국처럼 밥을 덜어 먹는 작은 밥그릇을 쓰는 게 아니라 밥이 수북이 담긴 밥그릇을 주고 혹 양이 많으면 남기는 것이 예절이다.

그리고 또 하나, 조선조에 숟가락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중국 고대의 <주례>에 나오는 식사법이 바로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하는 것이라는 점에 있다. <주례>에 나오는 식사법이란 바로 공자가 하던 식사법이니, 유교가 국교인 조선의 식사 예절에서는 숟가락을 결코 포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직은 찌개와 국이 많은 우리 밥상에서 숟가락의 존재감이 크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우리의 밥주발도 크기가 많이 줄어들었고,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밥그릇을 들고 먹는다거나 숟가락으로 밥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예전처럼 심각하게 야단치는 경우도 거의 없다. 그렇기에 요즘 젊은이들의 식사 습관을 보면 밥을 먹을 때 젓가락만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젊을수록 찌개와 국에 대한 의존도가 덜하기에 우리도 언젠가는 일본이나 중국처럼 젓가락만 주로 사용하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식생활의 변화가 그리 급격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변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각상 문화가 까마득한 옛날의 일로 기억될지 몰라도, 따지고 보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밥상으로 보는 문화의 진화

옛날 사람들이 요즘과 같은 것을 먹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옳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밥상 위에 올라오는 반찬들도 변했거니와 많은 재료가 추가되거나 사라졌다. 또한 밥상에 앉거나 밥을 먹는 방식도 세태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 숟가락과 젓가락도 그렇고 밥상의 모양과 형식도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다만 그 변화가 눈에 띄지 않을 정도라서 우리가 미처 눈치를 채지 못할 뿐이다.

아마도 지금 우리가 고려 시대 중기의 밥상을 받는다면 이것이 과연 우리 음식이었나 하는 의심이 들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찬찬히 살펴본다면, 비록 재료나 식기는 다를지 몰라도 그 오랜 전통이 여전히 전해져 내려온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밥상은 어제의 것이 오늘의 것과 다를 정도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기에 50년 전의 밥상도, 100년 전의 밥상도 오늘과 같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느린 변화는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큰 변화로 이어지는 것이 마치 생물의 진화와도 같은 '문화의 진화'다. 어느 긴 세월을 놓고 보면 마치 전혀 생뚱맞은 밥상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밥상도, 밥을 먹는 습속도, 밥을 먹는 식기도 많이 달라졌다. 연회와 제례의 고임은 차츰 희미해지는 징조를 보이고 밥상은 식탁과 의자, 접시들로 차츰 서양화되고 있으며 젓가락질이 서투른 아이에게는 포크를 쥐여 주고 있다.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던 풍습도 차츰 젓가락 중심으로 이전하는 듯하다. 이 모든 변화의 물결은 어느 때보다 힘찬 것 같다. 본디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언제 어느 순간에는 지금의 풍습도 낯선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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