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리뷰Factory. 2010서울연극제-8] 몽환의 숲, 연극 '옥수수 밭에 누워있는 연인'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리뷰Factory. 2010서울연극제-8] 몽환의 숲, 연극 '옥수수 밭에 누워있는 연인'

[공연리뷰&프리뷰] 나비가 가진 비밀의 언어

아직은 어두운 숲 속의 새벽, 유일하게 부유한 안개를 만지는 느낌이다. 시야를 가리는 안개는 분명 눈에 보이나 손에 잡히지는 않는다. 그 무엇과도 상관없이 모습을 드러내다가 밝은 햇살이 비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뿐이다.

▲ ⓒ프레시안
연극 '옥수수 밭에 누워있는 연인'은 그 새벽 안개와 닮았다. 인물과 사건, 배경은 있으나 우리는 절대로 그것을 잡을 수 없다. 연극은 인물들의 언어로 채워져 있다. 그들의 언어는 관객에게 이해 혹은 납득을 요구하지 않는다. 철저히 상징적이며 시적이다. 대사는 이미지로만 다가온다. 춥고 어두우며 텅 빈 무대를 메운 것은 오직 언어의 이미지다. 그 언어에서 나비가 탄생, 사막으로 날아오른다. 관객은 그 나비의 황홀한 날갯짓에 취해 혼미하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야한다. 나비는 사막의 주인, 그곳에서 태어났으며 그곳에서 죽어간다. 그렇기에 우리가 촉촉한 풀과 나무의 환상에 따라 나비를 쫓아가다간, 결국 모래 위에서 길을 잃고 나비의 밥이 되고 말 것이다. 사실, 연극이 시작됨과 동시에 관객은 완벽히 제압당했다.

도시와 도시의 경계에 선 어느 허름한 집, 여명이 어슴푸레한 새벽의 그 집에는 이선과 한보가 있다. 그들은 무언가로부터 도망친 듯 불안하고 초조하다. 거인의 발걸음과도 같은 파열음이 들리고 한보는 이선을 남겨둔 채 밖으로 뛰쳐나간다. 그리고 얼마 뒤 낯선 부자(父子)가 들어온다. 이들 역시 평범한 일상의 인물들과는 거리가 멀다. 곧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다. 이제 이선과 아들만 남았다. 이들은 얼핏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듯하다. 조각으로 모자이크 것처럼 그들의 정신은 파편화돼있다. 이선은 아들을 만났을 때 자신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모든 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거울처럼 스스로를 나타낼 수 있는 무언가를 찾으려한다. 철저하게 비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공허는 타인으로 인해 채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영원히 비어 어두움으로 남아있다. 원초적이고 잔혹하다. 어둠의 미학이다. 연극은 그러한 세계를 갈망한다.

연극 '옥수수 밭에 누워있는 연인'에서 선명한 것은 거인의 발자국 소리와도 같은 울림과 자유로 상징된 나비다. 나비는 작은 핀으로 박제돼 있다. "그래, 작은 핀을 잘 꽂으면 한동안 나비는 죽지 않아. 하지만 그 핀을 빼고 나면 곧 죽어버리지. 상자 밖으로 나오려고 날갯짓을 계속하다간 몸뚱이가 다 찢겨져 버릴 거야." 핀이 너무도 가늘고 날카로워 눈치 채지도 못한 나비는 이선을 닮았다. 더불어 한보, 그리고 자유를 꿈꾸는 모두를 닮았다. 이선이 끝없이 무언가로부터 탈출하려는 지점마다 나비의 거대한 날개가 일으키는 바람이 분다. 붉은 피가 흐른다. 핏방울은 공간을 울리는 공포의 소리로 극대화된다. 모두를 두렵게 하는 그 소리는 아마도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일 것. 숲을 지탱하는 나무가 단번에 넘어지듯, 자유를 꿈꾸는 인간의 무엇이 힘없이 꺾인다. 그 소리가 공포다.

사막 한 가운데서도 살아 버티는 나비를 꿈꾸는 이 연극은 '2010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 마지막 작품이다. 그 마지막 장식이 나비의 날개처럼 매혹적이다. 연극 '옥수수 밭에 누워있는 연인'은, 창작초연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촘촘히 짜여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는 짜릿하다. 어지러운 연극을 미동도 없이 지탱하고 있는 배우들 남명렬, 김호정, 민경진, 이명호의 이름이 숲 속의 안개보다 아름답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