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임기 중반에 치러지는 선거인만큼 '안정론'과 '심판론' 등 정치적 의미부여가 관심사이지만, 지방 일꾼을 뽑는 지방선거 본래의 의미에 주안점을 둔 기획입니다. 민주주의의 도약을 위해서도 6.2 지방선거는 생활정치의 원년으로 기록돼야 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
지방자치단체장의 공약이 지방행정과 관련되지 않은 것은 거의 없겠지만, 지방행정이 결국 지방자치단체장의 비전, 철학, 공약을 실현하는 틀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강조할 필요가 있다. 지방차원에서도 다양하고 복잡하고 역동적인 사회문제들이 산재해 있고, 지방의 어느 한 부문이 단독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점차 그다지 많지 않게 될 것이라 주민참여에 바탕을 둔 문제해결 노력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그런데 생활정치와 생활정책이 강조되면서 많은 후보들이 복지, 교육, 환경 등을 더 많이 구체적으로 내놓고 있지만, 지방행정시스템이나 주민참여와 관련된 공약은 눈에 띄게 줄었다. 하지만 지방행정, 특히 적극적인 주민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지방행정이 생활정책을 이행하기 위한 인프라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공약을 잘 준비한 후보들이 생활정책의 중요성과 그 실현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판단해도 좋을 것이다.
▲ 생활정책이 강조되면서 복지, 교육, 환경 관련 공약이 많아졌으나 지방행정시스템이나 주민참여와 관련된 공약은 눈에 띄게 줄었다. |
종로구 김영종 후보(민주당)는 '주민이 주인 되는 거버넌스 종로'를 주창하며, 재개발 및 재건축, 육아 및 보육시설, 예산, 공무원인사위원회 등의 운영을 모두 주민참여방식에 의해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공무원 승진심사 때 주민의견을 반영한 안산시의 '시승제'가 공무원 사회의 각성과 민관협력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음을 고려해 볼 때 김영종 후보의 '주민참여 공무원인사위원회'는 주목할 만한 공약이라 할 수 있다.
성북구 김영배 후보(민주당)는 주민과 가까운 지방자치단체가 되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호화청사라고 비판받았던 구청 청사의 3분의 1 이상을 주민들의 편의시설로 돌리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지하1층에서 지상3층까지의 공간을 생활체육, 문화교육, 컨벤션, 여성 및 유아복지 공간으로 활용하고, 성북구내 공공기관의 회의실을 주민에게 개방하여 주민들의 회의나 독서모임 공간으로 활용할 것이며, 주민자치위원회의 활동내용을 주민센터와 주요 지점에 지속적으로 알리겠다는 공약이다. 구청 자체가 주민들의 생활공간이 될 수 있다면 생활정치의 실현은 분명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다.
강동구 이해식 후보(민주당) 역시 주민센터의 새마을문고를 테마형 작은 도서관으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기존의 새마을문고가 다소간의 전시성으로 인해 문고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평가와 함께 동 단위에서 주민들이 더욱 밀접한 생활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바짝 다가서겠다는 것을 공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구청 청사를 주민들의 평생교육 요람으로 활용하겠다고 한 금천구 차성수 후보(민주당)의 공약도 주민들과 가까워지려는 의지와 방도를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차성수 후보는 또한 민원실을 24시간 개방하기로 했는데, 실제 시행과정에서 상당한 시행착오를 겪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긴 하지만 생활정책의 실현에 일선행정이 가장 중요함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앱(App)과 모바일 홈페이지를 제작, 보급하여 젊은 세대의 주민참여를 촉진하기 위한 모바일 창구를 개설하겠다는 관악구 이봉화 후보(진보신당)의 공약은 젊은층이 많다는 지역 특성을 반영한 참신한 공약으로 주목할 만하다. 나아가 주민자치위원을 위촉할 때 성, 연령, 출신국, 신체능력 등에 따른 대표성을 반영하겠다는 공약 역시 마찬가지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브라질 뽀르뚜 알레그리 시에서 비롯된 '주민참여예산제'가 광주광역시 북구청에서부터 도입되어 일부 지자체에서 실험된 이후 우리 실정과 안 맞는 부분에 대한 조정이 필요하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주민참여에 바탕을 둔 지방행정의 대표적인 제도는 역시 주민참여예산제라 할 수 있다. 도봉구 이백만 후보(국민참여당), 서대문구 문석진 후보(민주당), 성북구 김영배 후보(민주당) 등이 주민참여예산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백만 후보는 특히 단기 중점과제를 선정하여 이 과제를 위한 예산편성과정에 주민참여를 보장하기로 했다.
구청의 재정자립도를 고려해보면 실제로 구청 단위에서 주민들이 참여하여 예산 항목을 정하는 일이 지방행정을 전면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생활정책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자신의 생활과 직결된 정책에 투입되는 예산항목을 주민 스스로 정할 수 있다는 것은 예산 규모의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지방자치의 본질적인 의의를 충분히 살릴 수 있는 것이다. 선행 실험을 바탕으로 더욱 정교한 설계와 적용이 뒷받침 한다면 많은 주민들의 공감대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맥락에서 서대문구 문석진 후보(민주당)의 '1% 주민 할당제'는 주민참여 예산제의 실현가능성을 고려하고 실천 의지를 구체적으로 천명한 공약이라 할 것이다.
주민참여 예산제가 자치단체의 살림살이에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지자체의 예산을 제대로 쓰자는 공약과 제도라고 한다면, 예산낭비를 감시하겠다는 공약들은 살림살이의 허점을 막아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강남구 이판국 후보(민주당)는 예산편성과정에 주민참여를 보장하겠다고 밝히면서 예산낭비신고센터를 운영하기로 했다. 강서구 노현송 후보(민주당)는 예산정보를 적극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물론 예산청문회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서대문구 문석진 후보(민주당)도 예산의 집행과 사용내역, 절차, 주민의견 등을 홈페이지에 상세하게 공개하기로 했다. 양천구 권택상 후보(한나라당)는 감사원이나 검찰출신, 공인회계사, 시민단체 등 전문가 중심의 시민감사위원회를 구성하여 독립적인 감사 활동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밖에 색다른 아이디어를 제시함으로써 생활정치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보여준 공약들을 들 수 있다. '공동주택분쟁조정위원회 운영을 통한 주민갈등 최소화'를 내세운 노원구 김성환 후보(민주당)의 공약은 위원회를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여 갈등을 줄일 것인지에 대한 추가 설명을 들어볼 필요가 있지만, 공동주택과 관련된 생활세계를 면밀히 들여다본 정성을 드러내고 있고 주민참여에 의한 사회문제 해결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구로구 이성 후보(민주당)가 내건 '부패영향평가제' 공약은 구체적인 방법론이 개발된다면 정책과정 일반과 다른 지방자치단체에 확산되어 활용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점에서 신선하다. 역대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정책과정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고 정책과정 자체를 모니터링 하고자 했지만, 일상적인 과정으로 표준화되어 있는 지방행정의 틀을 유지하는 한 부패구조를 깨뜨리지 못한다는 데 착안한 것으로 판단된다.
강북구 박겸수 후보(민주당)의 공약에서도 정책과정 전반에 대한 종합적인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정책집행 결과에 대한 주민만족도 조사를 실시하고, 주민참여에 의한 정책평가를 조례제정으로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정책의제설정과 정책결정 단계에서의 주민참여를 강조한 것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정책집행과 평가 등 정책과정의 종결 시점에까지 시각을 확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제출된 구청장 후보들의 공약을 보니 열린행정, 투명행정, 행정의 효율성 확보, 행정조직 개편, 행정의 투명성 확대, 공직청렴도 강화 등 어쩌면 당연하면서도 당위적인 구호 차원으로만 머물 뿐이었던 과거 지자체 선거 때와는 달리 원론이나마 지방행정의 관리 방침과 제도를 전혀 제시하고 있지 않은 후보가 많았다.
이것이 생활정치에 대한 강조에 따라 많은 생활정책 공약들에게 그 우선순위를 양보했기 때문인 것인지 직접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규범적인 차원에서라도 제시하지 않은 것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오히려 관급 토목 및 건축공사를 10월 말 안에 마무리함으로써 연말에 보도블록을 파헤치는 관행을 없애겠다고 약속한 종로구 정창희 후보(한나라당)의 공약은 다른 여러 변수를 고려하지 못한 것으로 비판받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주민들의 생활세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지방행정에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지방행정과 주민참여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이상의 공약들이 당장의 가시적인 결과물과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정교한 설계와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의지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이러한 공약을 유권자들에게 내세운 그 약속 자체가 소중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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