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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면은 '중국' 음식? 짬뽕은 '일본'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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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면은 '중국' 음식? 짬뽕은 '일본' 음식?

[판다곰의 음식 여행·24] 자장면, 그 달콤한 유혹

자장면은 지금의 노년층과 중장년층에게는 아주 대표적인 외식음식이다. 어린 시절 그 자장면의 달콤한 맛을 기억하지 않는 어른이 거의 없을 성싶다.

외식이 흔치 않던 시절에 자장면 한 그릇은 정말로 큰 기쁨이었다. 그때만큼은 아닐지라도 지금도 아이들은 자장면을 좋아한다. 중국집 하면 자장면을 떠올릴 만큼 우리나라에서는 중국 음식의 대표가 바로 이 자장면이다.

하지만 정작 중국에는 자장면이 없다고 하는데 어찌 한국에 자장면이 있는가 하는 말이 많다. 심지어 어느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서 중국을 취재하며 자장면의 원류를 찾은 적도 있다.

하지만 중국에도 분명히 자장면은 있다. 다만 우리 자장면과는 맛이 전혀 다를 뿐이다. 그렇다면 자장면은 중국 음식인가, 아니면 한국 음식인가?

'중국집'은 어떻게 우리나라에 생겼을까

우리 자장면의 역사를 향해 떠나가는 여행은 우리나라 화교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다. 19세기 말 조선에서 열강의 침탈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무렵, 청은 임오군란으로 조선이 어수선한 틈을 타서 군대를 파병할 기회를 얻었고 원세개는 청의 군대를 이끌고 조선으로 온다.

이때 군대만 온 게 아니라 일꾼들도 대거 동원해 제물포로 들어온다. 군대야 북경에서 왔지만 일꾼은 배를 타는 현지에서 조달하는 수밖에 없었다. 산동반도에서 청나라 군대가 출발했기 때문에 일꾼 대부분이 산동 지역의 양민이었다.

원세개가 조선에서 만행을 부리는 동안 이들에게는 청의 군대라는 안정된 직장이 있었다. 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에 진 청나라는 군대를 이끌고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군대도 도망가기에 바쁜 그 황급한 시기에, 함께 데리고 온 일꾼까지 챙길 만한 여력은 되지 않았다. 그 일꾼은 졸지에 직장을 잃은 채로 조선 땅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남은 화교는 일본인이 몰려든 조선 땅에서 따로 생업을 모색하는 수밖에 없었다. 일부는 땅을 빌려 소작농이 되었는데 이들이 가장 특별한 장점을 보인 것은 배추 농사였다. 그때까지는 배추 종자가 중국에서 들어왔고 배추가 추운 기후에서도 잘 자랐으며 일찍 농사가 끝난 밭을 손쉽게 빌릴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이것도 수월치 않은 사람들은 봇짐을 지고 양국을 오가는 보따리장수가 되었다. 우리가 흔히 "비단이 장사 왕 서방"이라고 중국 사람을 부르는데, 이는 그들이 조선의 특산품인 고려 인삼을 가져다 중국에 비싸게 팔고 중국의 특산품인 항주 비단을 조선에 들여다 양반네에게 판 데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리고 남은 것이 바로 음식 장사였다. 물론 그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중국 음식이었다.

자장면의 원류로 불리는 인천 선린동의 '공화춘(共和春)'이라는 음식점은 1905년에 세워진 것으로 되어 있으니 청일전쟁이 끝난 시점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 그만큼 자본을 축적하고 여건을 갖추는 데에 시간이 걸렸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중국인의 왕래가 끊긴 중국 음식점의 손님은 자연히, 뻔질나게 조선을 드나들기 시작한 일본 사람과 그들에게 잘 보이려는 조선 사람뿐이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조선에 등장한 중국 음식점은 태생적 한계에 따라 자신들이 할 줄 아는 요리, 곧 북경 요리 권역의 산동 음식과, 손님으로서는 일본인과 조선의 부유층을 기반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북경식을 한국식으로 바꾼 산동 화교

그러면 자장면은 과연 어떤 음식이었는데 갑자기 새로운 형태로 조선 땅에 나타난 것일까? 북경 지방에서 먹는 자장면은 정식 식사가 아닌 길거리 음식이나 새참 정도의 음식이었다. 요리법으로 보면 간단하기 짝이 없다.

오늘날 마파두부라는 요리에 들어가는 두판장(豆瓣醬)이라는 된장이 있다. 북경 지방도 콩의 원산지인 만주에 가까운 지역이라 콩의 단백질을 이용해 장을 담갔으니 두판장도 흔히 쓰이는 음식재료 가운데 하나였다.

여기에 중국 사람들이 즐겨 먹는 돼지고기가 있다. 지방이 풍부한 비계와 거기에 붙은 살을 다지듯 잘게 썰고 두판장과 함께 볶아서 국수에 얹고 약간의 채소를 얹어 먹는 것이 바로 자장면이었다.

자장면(炸醬麵)의 자(우리 한자 발음으로는 '작'이고 중국어 발음으로는 '짜'다)는 기름을 흠뻑 두른 냄비에 튀기듯 볶는다는 의미니, 자장면은 곧 된장을 돼지기름에 볶아 국수와 비벼 먹는다는 뜻이다.

된장은 본디 간이 센 편이어서 좋아하는 돼지기름과 어울려 북경 사람들의 입맛에는 아주 잘 맞았을 것이다. 국수야 원래 중국 사람은 손으로 뽑아 먹는 수타국수가 대세니 지금 잘 나가는 자장면집에서 먹는 국수와 다름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북경식 자장면을 일본 사람이나 한국 사람이 먹는다고 치면 오만상을 찌푸릴 것이다. 두판장의 향미가 우리 된장과 같지 않아 그럴뿐더러, 돼지기름 범벅이니 느끼한 것을 잘 먹지 않아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너무 기름지다는 생각이 드는 음식이다.

처음에 북경식 자장면을 우리에게 소개했으면 아마 조선의 자장면 역사는 거기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산동에서 건너온 화교의 독창성은 남달랐다.

산동 음식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물만두, 대파와 마늘, 밀전병을 들 수 있다. 산동이라는 지역이 거의 한반도만 한 넓은 땅이니 산동 안에서도 음식의 지역성을 따지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위에 든 것이 대체로 산동 음식을 대변한다고 할 만하다.

어떤 지역에서는 밀전병에 대파를 얹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춘장에 찍어 싸 먹는다. 그냥 먹는 것도 아니고 사시사철 주식처럼 먹는다.

이 춘장이라는 된장은 사실 중국에서는 톈몐장(甛麵醬)이라 부른다(사실 지금 시중에서 파는 춘장과는 다르다). 이 톈몐장은 두판장처럼 여러 향미를 넣은 된장이 아니라 우리 된장처럼 콩으로만 만드는데, 산동 사람들에게는 이를테면 걸쭉한 간장과도 같은 것이다.

콩으로 만든 메주에 소금을 뿌려 된장독에 넣고 뒤적여 햇볕을 쏘이며 숙성시켜 만든다. 색깔이 검어서 우리 된장과 다른 것으로 여기는 사람도 많지만 실제로는 그다지 다르지 않다. 우리 된장도 햇볕에 많이 쐬면 검어진다.

산동 음식의 또 한 가지 특징은 파와 마늘이다. 산동 사람도 마늘과 파를 즐긴다. 물만두를 먹을 때도 생마늘을 까서 먹으며 매운맛으로 식욕을 증진한다. 파는 우리 쪽파보다 훨씬 굵은 대파를 주로 먹는다. 파는 날로 먹을 때에는 조금은 아린 매운맛이 있지만 익혀서 먹을 때에는 아주 달콤한 맛을 낸다. 산동의 대파는 오히려 우리 파보다 단맛이 강하다.

그러면 이제 준비가 된 것이다. 자신들에게도 익숙한 재료인 파와, 순순한 된장 맛에 가까운 톈몐장으로 북경식 자장면 재료를 대체하여, 느끼한 것을 잘 먹지 못하는 일본인과 조선 사람의 입맛에 맞췄다.

그 효과는 놀라웠다. 일단 된장 맛은 미소된장이나 콩된장에 익숙한 일본인과 조선 사람의 입맛에 맞았으며, 파는 돼지비계의 느끼한 맛을 중화하며 단맛을 추가했다. 고기와 기름의 고소하면서도 느끼하지 않은 맛, 된장의 구수한 풍미, 단맛,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아주 독특한 맛으로 일본 사람과 조선 사람의 입맛에 다가왔으리라. 정말 새로운 위대한 발명품이 등장한 순간이었다.

세월은 흘러 자장면의 파는 손쉬운 양파로 대체되고 다시 한국 사람의 입맛에 맞게 감자도 추가되었으며, 그래도 느끼함을 싫어하는 사람은 고춧가루를 넣어 먹게 되었다. 요즘 우리는 감자가 들어간 자장면을 옛날 자장이라 부른다. 이제 이런 자장면은 한국에 있는 중국 음식점에서 빠질 수 없는 음식이 되었고 전 세계 어느 중국 음식점에도 없는, 대한민국의 음식이다.

챰퐁, 차오마몐, 짬뽕

자장면이 나왔으니 짬뽕이 빠질 수 없다. 중국 음식점의 대표적인 메뉴로 자장면과 쌍벽을 이루는 것이 짬뽕이라는 국적불명의 음식이다. 이 이름이 기묘한 것이, 일본어사전을 뒤져보면 외래어를 나타내는 가타카나로 '챰퐁'이라 기재되어 있고 우리 국어사전에는 이 짬뽕이라는 항목에 음식을 소개하고서 이름이 께름칙했던지 '초마면'으로 순화하는 게 좋다고 밝혀놓았다.

초마면이라는 음식은 원래 요리를 만들고 남은 부스러기 재료를 한데 모아 볶고 물을 부어 국물을 내고 거기에다 국수를 말아 먹는 '차오마몐(炒碼麵)'이다. 밥으로 치면 부스러기 재료와 찬밥을 맛있게 먹는 방법으로 개발된 볶음밥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국물을 맛있게 하려고 닭이나 돼지의 뼈, 마른새우로 국물을 우려내기도 한다. 음식을 하다 남은 부스러기니 고기나 해산물, 채소 그 무엇이 들어가든지 볶아서 국물을 우려내면 그뿐이다. 그런데 초마면은 원래 매운맛이 나는 음식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입맛에 맞게 '차오마몐'에 고춧가루를 풀어 얼큰하게 했고, 이것이 바로 '짬뽕'이다.

'짬뽕'이라는 말은 일본 나가사키 지방에서 유래했다. 지금도 일본 라멘을 파는 음식점에서는 나가사키 짬뽕을 판다. 나가사키가 짬뽕이라는 단어의 원조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하지만 나가사키 짬뽕과 한국의 중국 음식점에서 파는 짬뽕은 조금 다르다.

재료는 대체로 비슷하지만 나가사키 짬뽕은 돼지고기 육수를 쓰고 한국식 짬뽕은 주로 마른새우 국물을 육수로 쓴다. 고춧가루를 풀어 매운맛을 낸다는 것도 차이가 있다. 그리고 가장 다른 것은 면의 식감이다. 나가사키 짬뽕은 국수 반죽에 탄산나트륨을 넣어 부드럽지만 한국식 짬뽕은 자장면과 면발이 같다.

짬뽕의 유래에 대한 추론

그렇다면 이 짬뽕이 과연 나가사키에서 수입된 것이냐, 아니면 초마면에서 유래한 것이냐가 문제다. 주영하 교수는 <차폰, 잔폰, 짬뽕>(사계절 펴냄)이라는 책에서 한국식 짬뽕이 나가사키의 중국 남방계 화교의 음식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짬뽕이 초마면의 변용이기에는 해산물의 비중이 높고, 나가사키에 있던 남방계 화교와 조선의 남방계 화교 사이에 끈끈한 유대 관계가 있었다는 점 등을 그 이유로 꼽으며, 나가사키에도 한국식 자장면이 존재하는 것이 그런 유대 관계의 방증이라고 보는 것이다.

또 '짬뽕'의 어원도 나가사키 화교의 복건성 사투리로 '밥을 먹다'라는 뜻의 '차폰'에서 유래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담고 있다(복건 방언으로는 '차폰'보다 '잡반'에 더 가깝다).

하지만 이 어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짬뽕의 유래에는 몇 가지 문제가 남는다. 첫째로 꼽을 수 있는 문제는 남방계 화교 간에 끈끈한 유대관계가 있었다 하더라도 한국의 화교 사회에서 남방계는 지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고 대다수가 거의 산동 출신이라는 점이다.

대부분 중국 음식점에서 다루는 메뉴는 산동이 속한 음식권역인 북경 요리가 주축이다. 이런 사실을 고려하면 오로지 짬뽕만이 나가사키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기기에는 어딘지 이상한 점이 있다. 만일 이런 교류를 통해 중국 음식이 전파된 게 사실이라면, 적어도 남방계인 복건이나 광동 음식이 한국의 중국 음식점에도 얼마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 한국식 중국 음식점에는 산동의 음식인 북경 요리가 주류를 이루지, 복건이나 광동식의 요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또 한 가지는, 대개 남방계 화교는 재력가여서 음식점 경영을 맡았던 반면, 산동계 화교는 주인이 직접 요리를 하는 생계형이 더 많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을 헤아려보면 남방계 간의 교류가 실제 빈번했다 할지라도 그것이 음식 조리 방법의 직접적인 전파로 이어지기에는 적지 않은 걸림돌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자장면과 짬뽕은 국적이 다르다

짬뽕은 초마면을 원래 모델로 삼아 약간의 변형을 통해 이루어진 음식이라고 본다. 물론 해물이 중심이 된 것은 원래 초마면과는 조금 다른 양상이지만, 한국의 중국 음식점들이 새우나 오징어, 말린 해삼과 같은 해산물 요리를 풍부하게 갖추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짬뽕이 점진적으로 해산물 중심의 면요리가 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물론 고춧가루나 고추기름을 풀어 맵게 한 것은 훨씬 뒤에 매운 것을 좋아하는 한국인 입맛에 맞추려는 변용일 것이다.

짬뽕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아마 초기 중국 음식점의 주된 손님이 한국을 지배하던 일본인이나 돈 있고 힘 있는 한국 사람들이었던 탓에 많은 음식이 일본식 이름으로 불렸기 때문일 것이다.

늘 자장면과 함께 나오는 '다쿠앙'만 하더라도 일본 손님들의 비위를 맞추고자 올렸을 테고, 군만두를 '야끼만두'라 부른 것이나 가락국수를 '우동'으로 표현한 것 등을 보더라도 한국식 중국 음식점에는 일본의 잔재가 무척 많다.

아마도 일본 손님이 오면 '차오마몐'이라는 거추장스러운 이름을 쓰기보다는 나가사키의 중국 음식점에서 팔던 비슷한 음식의 이름인 짬뽕을 차용한 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자장면과 고춧가루를 푼 매운 짬뽕을 중국 음식으로 보아야 할지 한국 음식으로 보아야 할지가 의문으로 남는다. 굳이 정의를 내리자면 자장면은 한국 음식으로 보아야 한다. 중국 음식에 원류를 두었지만 한국식 자장면은 다른 나라에 없다. 그리고 한국 사람의 입맛이 자장면의 탄생에 공헌한 바도 크다. 짬뽕은 고춧가루의 첨가 말고는 혁신적인 내용이 없으니 그래도 중국 음식으로 보아야 하지 않나 싶다.

ⓒ프레시안(손문상)

싸구려 맛으로 변한 요즘 자장면

자장면과 짬뽕이 보여주는 음식의 변용은 각별하다. 처음 보는 음식이 빠른 시간에 다른 입맛을 지닌 사람에게 수용되기는 쉽지 않다.

우유나 치즈를 봐도 그렇다. 불과 30년 전만 하더라도 우유를 마시거나 치즈를 먹는 그 자체가 고역인 사람들이 많았다. 유당분해효소가 없어 배앓이를 하는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그 맛이 익숙지 않아 그랬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 시골에서는 된장찌개에 우유를 넣어 함께 끓이는 일도 있었다.

이제 우유와 치즈는 아주 흔한 음식에 속한다. 자장면도 파와 톈몐장의 추가로, 그 뒤로는 감자와 고춧가루로 우리 입맛에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하지만 요즘 이 자장면에 일어난 변혁은 지극히 실망스럽다.

톈몐장이 공장 생산으로 바뀌면서 된장의 구수함은 사라지고 캐러멜 소스로 검은색을 내게 되었고, 양파의 단맛에 질척한 화학조미료 맛이 더해져 더욱 달고 느끼해졌으며, 돼지비계의 구수한 기름은 값싼 경화유로 바뀌니 건강에도 좋지 않고 입맛에도 불쾌한 음식이 되어버렸다.

어릴 적 인사동에서 맛본 '천향각' 자장면의 깊숙한 맛은 이제 어디에 가서도 찾기 어렵게 되었다. 다만 국수의 면발이 수타면으로 되돌아가는 풍조만이 위안을 준다.

라면이 곧 수타면

수타면은 손으로 뽑은 국수라는 뜻인데 밀가루를 반죽하고 양손으로 점차 늘여서 국수를 만드는 방법이다. 이 방법으로 국수를 뽑았을 때에 좋은 점은, 양손으로 반죽을 늘일 때에 끈기가 없으면 국수를 뽑기 어렵기 때문에 국수가 쫄깃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이 수타면과 일본의 라면을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라면의 '라'는 잡아 늘인다는 '랍'(拉)의 중국어 발음이다. 잡아 늘인 국수라는 뜻이니 수타면과 다를 바가 없다. 결국은 중국의 국수 뽑는 기술이 일본에 전해져 라면이 탄생한 것이다.

지금 라면이 꼬불꼬불하게 변한 것은 국수 뽑기가 기계화되면서 작은 공간에서 많은 국수를 삶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이 꼬불꼬불한 국수가 모델이 되어 결국은 인스턴트 라면이 되고 이제는 가장 대중적인 인스턴트 음식이 되었다. 하지만 수타면과 인스턴트 라면의 '원뜻은 같으나 본질이 다른 것'을 생각하면 역사의 아이러니를 깊이 느끼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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