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친지 중 생산현장에서 일하는 이를 두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이들이 공장에서 만들어낸 물건이 대기업에 납품되지 않을 가능성이 얼마나 낮을까? 한국인들 대부분은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대기업에 묶여 있다. 언론을 장식하는 많은 재벌 문제는 한국인들의 문제로 치환 가능하다.
반올림에서 활동하는 정애정 씨는 "이제 국민들도 반도체 공장 노동자의 문제에 목소리를 함께 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도체 공장에서 백혈병 등 암으로 죽어나간 이들의 문제는 이미 온 사회적 이슈가 됐다는 얘기다.
정 씨는 21일 인터넷방송 칼라TV의 고정 프로그램 <정태인의 호시탐탐>에 출연해 이같이 말했다. 이 프로그램은 지난 7일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 펴냄)의 저자 김용철 변호사와의 인터뷰, 삼성에 맞서 노조 결성을 추진해온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 등과의 대담을 방영한 바 있다.
정 씨는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11년간 일하다 지난 2007년 초 퇴사했다. 남편이었던 고(故) 황민웅 씨의 죽음 이후였다. 지난 1997년 8월 입사한 황 씨는 정 씨가 일하던 기흥공장에 설비 엔지니어로 근무하던 중 급성 백혈병을 얻어 9개월의 사투 끝에 2005년 7월 사망했다. 정 씨를 비롯한 반올림 회원들은 황 씨처럼 죽어간 이들의 산업재해 처리를 요구하고 있다.
"황민웅 씨도 삼성반도체 다니셨어요?"
황 씨가 이상 증세를 자각한 건 2004년 가을 즈음이었다. 잔병 치레도 않던 사람이 심한 감기에 걸린 줄만 알았다. 한 달 동안 약을 먹어도 낫지 않아 동네 병원을 찾아갔다. 수원아주대병원을 찾아간 당일, 곧바로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이날 오후 곧바로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도저히 사실을 믿지 못한 황 씨가 다른 병원에 가보겠다고 했으나 병원에서는 "너무 위급하니 당장 치료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정 씨는 그의 직장동료이자 아내였음에도 남편의 몸이 이토록 망가진 줄을 몰랐었다.
"아기 아빠와 제가 교대근무를 하니까, 붙어있을 시간이 별로 없어요. 그냥 '감기가 오래 가네?' 이런 안부만 물었죠. 병원에 가서도 모든 게 얼떨떨했어요. 그러면서 9개월 동안 항암치료받고 했는데, 골수이식수술을 못 받았죠. 날짜를 잡아두긴 했는데 그 날짜를 못 채우고 돌아가셨어요."
정 씨는 회사에는 그저 착한 노동자였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병을 얻었으리라는 상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산업재해는 팔다리가 부러지거나 손가락이 잘려야 받는 것인 줄만 알았다. 회사도, 학교도 노동자들에게 산업재해가 무엇인지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았다.
병원도 산재 가능성이 있으니 신청해보라고 가르쳐주지 않았다. 故 황유미 씨(2007년 백혈병으로 사망한 삼성 노동자, 반올림 출범의 계기가 됨) 문제로 아주대병원을 다시 찾아 주치의를 만나서야 이상한 말을 듣게 됐다.
"황민웅 씨도 삼성반도체에 다녔었어요?"
황 씨의 사망 2년이 지나서야 산재 신청을 하게 됐다. 삼성과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리고 정 씨와 반올림이 걸어온 2년, 그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던 삼성은 결국 반도체공장을 언론에 공개하고, 사후 대책 마련을 위해 힘쓰겠다는 입장까지 밝혀냈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처음 언론은 반올림에 관심도 두지 않았다. 산재 신청 당시 보도자료를 뿌려도 큰 언론사는 현장을 찾지 않았다. 정 씨는 삼성이 본격적으로 힘을 쓰고 있다고 믿는다.
"처음에는 '언론이 삼성을 무서워하는구나'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최근에 보면 본격적으로 촬영을 다 해갔는데도 방송이 안 되더라고요. '아, 삼성이 힘을 쓰고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죠."
산재신청이 불승인 받은 건 당연했다. 국가도 유가족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삼성반도체 공장 문제를 개선하겠다던 싸움이 어느새 국가와 싸움이 됐다. 삼성은 단 한 번도 반올림 회원들과 직접 대면하지 않았다. 언론의 무관심과 국가의 냉대를 넘어서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었다.
"삼성이 사람을 참 독하게 만들어요"
예전 정 씨는 삼성에 아무런 불만을 갖지 않았었다. 오히려 삼성의 직원임을 자랑스러워했다. 노동조합을 만드는 일 따위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노조를 만들려고 하다가 징계를 먹었다던 엔지니어가 우리 쪽에서 일했었어요. 당시에야 속으로 '왜 저렇게 노조를 만들려고 하나…' 이해가 안 갔죠. 월급 나오고, 이익도 낸 만큼 돌려준다고 하는데 뭣하러 회사에 찍힐 짓을 하나 싶었죠. 삼성에 들어왔다는 것도 만족이고, 일 배워가는 것도 성취감이고. 삼성 사람들은 다 그럴 거예요. 작업장의 열악한 환경도 노조가 신청하면 변화시킬 수 있다, 이런 걸 전혀 몰랐죠."
정 씨의, 황 씨의 작업 환경은 그러나 그리 만족할만한 수준이 못 됐다. '또 하나의 가족'이라던 삼성에서 생산직 노동자는 그만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일단 라인에 들어가면 독한 냄새가 나요. 특정 물질을 쓰는 룸에 들어가면 냄새가 더 나요. 대기상태랑 압력이 다르기 때문에 작업자들이 피로도 많아요. 회사에서는 어떤 화학물질을 쓰는지 정확히 말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런 물질의 위험을 경고하는 교육 같은 건 받은 적이 없어요. 그저 일할 때는 얼마나 많이 생산하느냐만 중요하죠. 여사원들에게 생리불순은 정말 너무 흔했어요. 코피며 하혈도 있었고요. 그런데도 여사원들 모두 그냥 자기 탓만 했죠. '한 달 거를 수도 있지' 이렇게 스스로 합리화시켰어요. 이게 작업환경 문제인 줄은 전혀 몰랐죠."
반올림의 활동이 마이너 매체를 통해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하고, 반도체 공장 노동자의 건강권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자 삼성도 대응을 시작했다. 돈을 이용했다고 정 씨는 주장했다.
정 씨에 따르면 삼성은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에게 '돈을 줄 테니 포기하라'고 회유했다. 그러나 모든 유가족에게 같은 대우를 하진 않았다. 시끄러워지게 문제삼지 말고, 돈만 받고 조용히 입을 다물라는 얘기다. 삼성 노동조합을 만들려던 이들 역시 삼성이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 한다는 증언을 여러 차례 언론에 한 바 있다.
가족을 잃은 슬픔은 돈 몇 푼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 5명 희생자의 유가족들이 모여 반올림을 만들었다. 2008년 이후 접수받은 제보는 총 50여건, 이 중 백혈병으로 사망한 이가 13명이다. 반올림은 비단 삼성 반도체 공장의 문제만을 밝히려 하지 않는다. 다른 반도체 공장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아직은 삼성반도체 공장에서만 접수가 신청되는 게 현실이다.
정태인 교수는 방송 대담 도중 여러 차례 '순하게 보이시는데 대단하다'고 감탄했다. 정 씨 역시 이번 사태로 삼성과 맞서 싸우기 전까진 그랬다고 인정했다.
"삼성이 사람을 참 독하게 만들어요. 저도 제가 이 문제를 직접 겪기 전에는 저 먹고 사는데 바빴어요. 그런데,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우리나라 사람들 식구 중 한 명이라도 공장에서 일 안하는 사람 없을 거예요. 삼성이 이 정도면 다른 기업들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거예요. 이건 삼성 문제가 아니고 노동자들 문제예요. 이 점을 국민들에게도 얘기하고 싶어요. 국민들이 같이 소리내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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