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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Factory. 2010서울연극제-6] 오뉴월의 서리 같은 연극 '홍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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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Factory. 2010서울연극제-6] 오뉴월의 서리 같은 연극 '홍어'

[공연리뷰&프리뷰] 홍어 맛과 연극 맛의 그럴듯한 조화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고, 차라리 서리가 내릴 것이지 한 품은 여자가 귀신이 돼 나타났다. 시작부터 분위기를 압도하는 음산한 음악과 연순의 울음소리는 침대 위의 미경을 몸서리치게 만든다. 시퍼렇게 살아있는 본처 놔두고 첩질이나 하는 남편이 야속해 악을 쓰는 연순이 제 죽은 줄도 모르고 버티고 섰다. 하늘 아래 부끄러운 짓 한적 없는데 세상은 모질기만하다. '차라리 구천을 떠도는 잡귀가 될 것이지 뭐한다고 이 지긋지긋한 집에 머물러 있을까.' 그러나 연극 '홍어'는 연순만을 감싸고돌지 않는다. 이 연극에는 피해자도 가해자도 없다.

▲ ⓒ프레시안

연순을 찾아온 어머니 말석은 기가 찬다. 흑산도 영험한 무녀 말석은 같은 운명을 타고난 딸의 기구한 팔자를 예상했지만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다. 30년 만의 겸상에 억장이 무너진다. 흑산도 앞바다에 떠내려 온 철규를 구한 후 말석의 말을 무시한 채 서울로 훌쩍 떠났던 딸이다. 생전 그토록 좋아했으나 남편의 등살에 마음 놓고 먹어보지 못한 홍어를 가득 들고 찾았다. 삭힐수록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홍어처럼 세월이 흐를수록 인생은 구린내로 가득하다.

입 안에 퍼지는 강한 홍어의 향이 사람들을 자극한다. 역한 것 같지만 사실 그것이 진가인 연순의 삶. 연극 '홍어'는 그 골골함에 콧구멍에서 불이 날 지경이지만 어쩔 수 없는 정이 있다. 연극은 마지막까지 홍어 냄새로 진동한다. 운명을 어쩌지 못한 말석과 연순, 그리고 그 누구도 '못되지'못한 주변 인물들에 대한 애석함이 코끝을 건드린다. 연극 '홍어'는 날것 그대로의 매력과 바닷바람을 머금은 해초 향, 비리고 역겨운 홍어 냄새 모두를 풍긴다.

▲ ⓒ프레시안
'지랄 맞던' 연순의 인생은 아무 말이 없는 흑산도 바다에서야 비로소 평온해진다. 저 시퍼런 물속으로 떨어지면 아플 것 같다. 바다는 절대로 사람을 내치지 않는다는 말석의 당부에 연순은 오랫동안 참아왔던 응어리를 내뱉는다. '그것이 아니라 가슴이 아프요.' 13층에서 뛰어내렸던 2년 전, 꿈같던 생을 뒤로하고 다시 바다에 뛰어들며 질펀한 생이 마감한다. 그리고 암전과 함께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이 찰나의 교차가 생의 순환을 알린다.

2010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 '홍어'는 무대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으로 옮겼다. 역시 대극장 무대는 시선을 분산시켰다. 감정은 한 곳에 모여 응축되지 못하고 무대의 빈 공간을 향해 퍼져나갔다. 그러나 배우의 힘은 언제나 대단한 것, 곧 삶의 냄새를 진하게 풍기며 관객을 취하게 만든다. 스토리 자체의 기본적 감성 또한 만만치 않다. 죽어서도 떠나지 못하는 자의 한이 오죽하랴. 가장 아쉬운 것은 설명하려 드는 직설적 대사들이다. 연극의 냄새만으로도 관객은 그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삶이 압축된 언어 속에서 간간히 등장하는 설명적 대사들은 부딪히는 파도처럼 부드러운 흐름을 끊고 사라질 포말만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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