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레시안 |
연순을 찾아온 어머니 말석은 기가 찬다. 흑산도 영험한 무녀 말석은 같은 운명을 타고난 딸의 기구한 팔자를 예상했지만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다. 30년 만의 겸상에 억장이 무너진다. 흑산도 앞바다에 떠내려 온 철규를 구한 후 말석의 말을 무시한 채 서울로 훌쩍 떠났던 딸이다. 생전 그토록 좋아했으나 남편의 등살에 마음 놓고 먹어보지 못한 홍어를 가득 들고 찾았다. 삭힐수록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홍어처럼 세월이 흐를수록 인생은 구린내로 가득하다.
입 안에 퍼지는 강한 홍어의 향이 사람들을 자극한다. 역한 것 같지만 사실 그것이 진가인 연순의 삶. 연극 '홍어'는 그 골골함에 콧구멍에서 불이 날 지경이지만 어쩔 수 없는 정이 있다. 연극은 마지막까지 홍어 냄새로 진동한다. 운명을 어쩌지 못한 말석과 연순, 그리고 그 누구도 '못되지'못한 주변 인물들에 대한 애석함이 코끝을 건드린다. 연극 '홍어'는 날것 그대로의 매력과 바닷바람을 머금은 해초 향, 비리고 역겨운 홍어 냄새 모두를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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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 '홍어'는 무대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으로 옮겼다. 역시 대극장 무대는 시선을 분산시켰다. 감정은 한 곳에 모여 응축되지 못하고 무대의 빈 공간을 향해 퍼져나갔다. 그러나 배우의 힘은 언제나 대단한 것, 곧 삶의 냄새를 진하게 풍기며 관객을 취하게 만든다. 스토리 자체의 기본적 감성 또한 만만치 않다. 죽어서도 떠나지 못하는 자의 한이 오죽하랴. 가장 아쉬운 것은 설명하려 드는 직설적 대사들이다. 연극의 냄새만으로도 관객은 그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삶이 압축된 언어 속에서 간간히 등장하는 설명적 대사들은 부딪히는 파도처럼 부드러운 흐름을 끊고 사라질 포말만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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